베네치아 영화제 황금사자상「피에타」까지…그의 삶과 작품들


초졸·청계천·구로공단 생활‥서른 파리유학 
비주류 도발에 영화계 논쟁, 작품‘극과 극’평가
상영관 배제 소외·무시…작은 영화 좌초 개탄 
외국선 상 휩쓸어,제작비 2억‘피에타’로 재 조명 

김기덕(52) 감독은 최근 몇년째 강원도 홍천 인근 산골에서 나무와 흙으로 직접 움막 같은 집을 지어 살아왔다. 그는 “태양전지를 설치해 최소한의 전기를 쓰고 있고, 밭에서 내가 먹을 만큼만 채소를 키우고 있다”고 한다. 화장실도 없다. 배설물은 고스란히 자신이 먹을 것들의 거름이 된다. 
우리 사회 주류 시스템이 그를 밀쳐내곤 했지만, ‘비주류 아웃사이더’라고 불린 그는 사회 바깥 구석에서 자기 스스로 ‘김기덕’을 키워왔다. 9일 폐막한 이탈리아 베네치아(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은 <피에타>는 서울 청계천 공장들이 배경이다. 이곳은 15살 때부터 ‘기계밥’을 먹으며 삶을 버텨낸 어린 김기덕의 터전이었다. 
1960년 경상북도 봉화에서 태어난 그는 공식 학력을 초등학교 졸업으로 끝내고 만다. 비인가 농업학교에 들어가기도 했던 그는 청계천, 구로공단에서 단추공장·폐차장·전자공장들을 다니며 교과서 밖 세상을 배워갔다. 그의 가슴에 아버지는 폭력을 행사하던 ‘폭압적 가장’으로 남아 있고 이런 잔상은 그의 영화 세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지만, 그는 아버지 역시 계급화된 사회가 만든 “또 한 명의 피해자”라고 여기곤 했다. 
방위병으로 입대가 가능했는데도, 그는 5년여 복무하는 해병대 하사관을 지원했다. 제대 뒤 2년 동안 시각장애인교회에서 허드렛일을 돕던 그는 서른에 프랑스 파리로 미술 유학을 떠났다. 그는 느닷없는 이 결단을 “그 시절 나의 마지막 발버둥”이었다고 떠올린다. 최근 방송에 출연해 또래와 다른 길을 걸어야 했던 자신을 “열등감을 먹고 자란 괴물”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말이 유학이지, 길 위에서 전전하는 거리의 화가였다. 야외에 텐트를 치고 지내던 그는 특히 삶에 지친 이들의 인물화에 빠졌다. 그는 거리를 떠도는 집시들, 얼굴색이 검은 아프리카 이주민 청소부들의 얼굴을 그리며 그들과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내 영화의 시작은 그림”이라고 말했는데, “그림이 나의 삶과, 사람들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파리에서 <퐁네프의 연인들> <양들의 침묵>이란 영화를 접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영화로 표현하는 ‘영상화법’의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1993년 귀국한 그는 1995년 <무단횡단>이란 시나리오로 영화진흥위원회의 공모에 당선되고, <악어>를 통해 1996년 감독으로 데뷔한다. 어떤 감독 밑에서 연출부 생활을 했다는 둥의 경력조차 없는 ‘별종 감독의 출현’이었다. 
학력이 변변치 않고 정식 영화 교육도 받지 않은 그의 작품은 철저히 무시받거나 극단의 논쟁을 낳았다. 그의 작품에 대해선 “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식의 어정쩡한 반응이 아니라, 강력한 지지자와 혹독한 비판자들로 엇갈렸다. 그의 영화에 잔인한 폭력, 여성을 학대하는 성적 묘사들이 등장하자 “정신병적으로 문제가 있는 감독”이란 악평도 나왔다. 상업자본의 자금을 받지 못한 그의 영화는 저예산 탓에 영화적 만듦새가 헐겁다는 평도 따라붙었다. 작품 속 남자주인공도 부랑아(<악어>), 살인자(<섬>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혼혈아(<수취인불명>), 포주(<나쁜 남자>), 사채업자 하수꾼(<피에타>) 등 ‘포악한 놈’들로 채워졌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암울한 구석과 절망적인 인물들을 비추며 비극적인 사회에 대한 구원을 바라는 김 감독의 영화세계를 옹호하는 마니아층도 두터워졌다. 그의 작품에 오히려 “휴머니티가 짙게 담겨 있다”는 반응이었다. 
특히 외국 영화계가 그를 주목했다. 국내에서 그를 밀어내면, 외국 영화제가 그를 껴안고, 다시 국내 언론이 그를 쳐다보는 식이 반복됐다. 그는 “국내에선 내 영화를 외설로 보고, 외국에선 내 영화를 대중적인 영화로 보더라”고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의 세 번째 연출작 <파란 대문>이 독일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파노라마 부문 개막작으로 상영된 이후 <섬>이 2000년 베네치아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며 세계적 영화제가 초청하는 감독 반열에 올랐다. 김 감독은 국내 대종상과 청룡영화상에서 작품상을 받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을 기점으로 해 억압과 폭력의 문제를 종교적 메시지로 풀어내며 대중과의 접점을 좁혀가는 변화를 보였다는 평이 많았다. 
2004년엔 세계 3대 영화제 중 두 곳에서 감독상을 타는 기염을 토했다. <사마리아>로 베를린영화제, <빈집>으로 베네치아영화제에서 각각 감독상을 받은 것이다. 그는 2011년 자신의 자전적 다큐멘터리 <아리랑>으로 프랑스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상’을 거머쥐며 세계 3대 영화제에서 모두 수상하는 첫 한국 감독이란 기록도 세웠다. “외국에서 상을 많이 받아서 집에 진열하지 못하고 자루에 담아두고 있다”는 말은 그가 얼마나 국제영화제에서 많은 상을 받았는지를 느끼게 한다.
외국에서 낭보를 전해오는 와중에 그는 국내 영화 시스템과 곧잘 부닥쳤다. 한 편의 영화가 전국 상영관의 절반 이상을 싹쓸이하는 독과점 탓에 작은 영화들이 상영 기회를 잃고 좌초되는 현실을 개탄했다. 그는 자신이 제작한 <영화는 영화다>(2008)의 흥행수익 배분이 부당하다며 대기업 투자·배급사와 소송전을 벌이는 곡절을 겪으며 은둔생활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순제작비 2억원에 못 미치고, 3주 동안 촬영한 <피에타>로 세계의 거장 감독으로 다시 우뚝 섰다. 국내 상업자본이 외면하고, 국내 영화계 인맥의 끈이 없던 그가 올해 베네치아의 황금사자상을 들어올린 것이다. 베네치아영화제 심사위원단과 외신들은 “<피에타>가 잔인한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들에 대한 자비와 구원을 얘기하는 감동적이고 뭉클한 영화”라고 호평했다.
그는 최근 기자들과 만나 “이제 나의 생각을 100% 동의받으려 하지 않겠다”며 삶의 태도가 바뀌고 있음을 내비쳤다. 그러면서 “과거로 돌아가지 않고, 미래를 기다리지 않으며, 현재를 놓치지 않고 살아가려 한다”고 했다. 
<피에타>는 좀더 유연해진 김기덕이 지금 놓치고 싶지 않은 우리 사회 ‘현재의 비극’을 비추는 작품이다.

< 송호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