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9일 베를린에서 “북한이 핵 포기를 확고하게 하겠다고 국제사회와 합의하면 내년 봄 서울에서 열리는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초청할 의사가 있다”고 제안했다. 독일을 방문중인 이 대통령이 내놓을 대북제의를 놓고는 그 어느 때보다 기대가 높았다. 발표 장소가 분단국가 통일의 상징인 베를린인데다 최근 남북대화 및 6자회담 재개를 놓고 나라 안팎의 움직임도 활발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연 이 대통령의 제안은 한마디로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다.
우선 실현 가능성이 너무나 희박하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제1차 워싱턴 핵안보정상회의 뒤에도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 이전에 북한이 핵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보이면 김 위원장을 서울로 초대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북은 “미국의 핵정책이 변하지 않는 한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며 거부했다. 그때 이후 상황이 바뀐 게 없는데도 똑같은 제안을 재탕한 것은 애초에 성사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은 ‘정치적 쇼’라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김정일 위원장이 그동안 다자 정상회담에 한차례도 참석한 적이 없다는 점에서도 그가 50여개국 정상이 참석하는 서울회의에 오리라고는 기대하기 어렵다. 게다가 핵안보정상회의는 핵개발 잠재력을 가지고 있거나 핵물질을 보유한 나라들에 대한 미국의 관리를 강화하고 핵 비확산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자는 성격을 갖고 있어 북한으로서는 가뜩이나 껄끄러운 회의다. 그런 회의에 백기를 들고 투항하라고 하는 셈이니 북한의 거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피격 사태 등에 대한 북한의 사과를 사실상 전제로 내건 것도 이번 제의의 실효성을 더욱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물론 이번 제의는 비핵화 문제에 집중하겠다는 이 대통령의 정치적 의지를 표명했다는 의미는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지금의 남북 상황은 대화를 하자는 시늉이나 내고 명분 쌓기에만 머물 때가 결코 아니다. 북한과 대화를 통해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생각이라면 상대방을 끌어들일 실질적 조건을 만들고 신뢰를 형성해나가야 한다. 이 대통령은 이제 임기말이 가까워오고 있다. 진정성을 발휘해도 시간이 별로 없는데 자꾸 다른 쪽만 바라보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