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레스트 정상 오른
대학생 전푸르나 씨

“밤새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남봉에 올랐어요. 새벽 여명을 뚫고 따뜻한 햇살이 비치기 시작했어요. 얼어붙었던 몸에 따스함이 스며들었어요. 그리고 한없이 펼쳐진 눈덮인 산들의 파노라마에 넋이 빠졌지요.”
한국 여성으로는 사상 9번째로, 지난 5월20일 해발 8848m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전푸르나(24·사진·서울시립대)씨는 이제야 그때의 감격을 이야기할 수 있다. 5명의 등반대 가운데 서성호 대원이 하산길에 숨지는 바람에 그동안 가신 이를 추모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랐다.
 
“제가 태어난 날 하늘이 유난히 푸르렀기 때문에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에요. 호호호.”
이름 때문일까? 표정과 말투가 푸른 하늘을 그대로 닮았다. 놀랍게도 전씨는 대학 입학하기 전엔 산에 오른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 시절 인라인스케이트 선수를 잠깐 했을 뿐 지극히 평범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대학에 가면 산악부에 들어가 암벽을 타는 것이 꿈이었다. 재학생 회원은 고작 4명, 그 가운데 여학생이 3명이다. 타고난 체력과 지구력에 자신감을 얻은 그는 지난해 말 대학 선배인 김창호 대장이 에베레스트를 해발 0m에서 정상까지 등정하는 계획을 밝혔을 때 선뜻 지원했다. “첫 해외원정에, 첫 거산 등정이었어요. 별로 실감이 나지 않았어요. 그런데 정상 공격을 하루 앞둔 전날 밤, 두려움이 마구 몰려들기 시작했어요. 죽을 수도 있고, 동상에 걸려 손가락, 발가락이 잘릴 수도 있는데….”
베이스캠프에서 캠프 1·2·3을 오르내리며 고소 적응을 끝낸 전씨는 5월19일 저녁 8시 해발 7950m의 캠프4에서 정상 공격을 시작해 밤새 산소마스크를 쓰고 등정했다. 영하 40도 이하의 혹한에 강풍이 불어 체감온도는 영하 50도. 장갑과 양말을 세겹 이상 두툼하게 껴입었지만 비수처럼 파고드는 추위는 오로지 체온으로 버텨야 했다. 마침내 이튿날 아침 8시 정상에 도착했다.


“에베레스트 정상은 그리 넓지 않았어요. 돌무더기에는 행운을 비는 각종 깃발과 국기가 꽂혀 있었어요. 많이 지저분했어요. 그다지 큰 감흥도 없었어요. 그런데 눈물이 흘렀어요.”
하산길은 더욱 고충이 심했다. 소변을 보고 싶었지만 옷을 벗기란 불가능했다. 참는 데까지 참다가 결국은 옷을 입은 채 해결했다. 하산 직후엔 설맹 증세로 눈을 못 떠 한동안 고생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이제는 에베레스트 정상 등정로에 밧줄도 설치돼 있고 셰르파가 도와주기 때문에 돈(수천만원대)과 체력, 날씨가 도와준다면 누구나 오를 수 있다”며 겸손해했다.
전씨는 에베레스트 정상 주변과 등하산길이 오물과 쓰레기로 심하게 오염된 것을 안타까워했다. “대부분 산악인들이 빈 산소통과 각종 쓰레기를 그냥 버리고 내려가는 겁니다. 셰르파들이 치운다고는 하지만 지구 최고봉은 계속 오염될 것 같아요.”
하산길 서 대원의 주검을 찾으려고 뒤처진 김 대장이 “너는 꼭 살아서 내려가라”고 당부했을 때 슬픔을 삼키며 큰 소리로 대답했다는 그는 이제 방송 프로듀서를 꿈꾸고 있다. “전문 산악인의 길은 가지 않을 거예요. 다만, 기회가 오면 다시 산에 오를 거예요.”
< 이길우 선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