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정부가 지난 30일 17기의 원전을 2022년까지 완전히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이미 가동이 중단된 7기 등 총 8기를 즉각 폐쇄하고, 2021년까지 대부분의 원전을 폐쇄한 뒤 비상사태용으로 3기만 1년간 더 연장가동한다고 한다. 이로 인한 전력 부족분은 풍력 등 재생에너지, 가스 등 화석연료, 그리고 장차 지금의 절반으로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에너지 효율 향상 등으로 보완할 방침이다.
독일의 이번 결정은 세계 원전산업의 장래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며칠 전 원전 의존율이 40%에 이르는 스위스도 2034년까지 단계적으로 원전을 폐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독일의 이번 결정에 대해 독일 산업계가 반발하고, 일부에선 후쿠시마 원전사고 후폭풍을 피해 가려는 정치적 결정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하지만 이틀 전 정부 에너지정책 자문위원회도 “탈원전은 10년 내에 가능하다”는 최종결론을 내렸고, 그에 앞서 열린 16개 주정부 환경장관회의에서도 결론은 같았다.

독일은 이미 오래전부터 탈원전 장기계획을 수립하고 치밀하게 대비해왔다. 1998년 출범한 게르하르트 슈뢰더의 사민당·녹색당 적록 연립정부 때 이미 “원자력 사용을 최대한 조속히 종료한다”는 원전 포기 방침을 정하고 그것을 자연친화적 에너지로 대체하기 위해 재생에너지법까지 제정했다. 이에 따라 전력생산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1999년까지 5%대에서 2009년에는 16.4%까지 올라갔다. 그 뒤 기민련 주도의 연립정부도 원전 가동 기한을 8~14년 더 늘리는 등 계획을 일부 수정했으나 원전 포기라는 큰 틀은 유지했다. 지난해 수립된 기민련·자민당 연립정부의 원전 가동 12년 연장 조처도 원전 포기 틀 자체를 부수진 않았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며칠 뒤 메르켈 정부는 부랴부랴 가동 연장 철회를 선언했지만 뒤이은 지방선거에서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총리 자리를 58년 만에 녹색당에 내주는 등 참패를 당했다. 시민들이 원한 것은 후퇴 없는 탈원전이었음이 확인된 것이다.

이번 결정에는 물론 메르켈 정부의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 하지만 독일의 탈원전 정책은 이미 1990년대부터 치밀하게 준비돼온 것이다. 그것을 실현 가능하게 만든 것은 결국 깨어 있는 시민의 힘이었다. 에너지 전략에 대한 장기전망 수립과 시민적 논의가 우리에게도 시급한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