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소권은 사법체계 훼손…대통령이 결단할 일 아냐”
2차합의안 ‘마지노선’ 제시…국무회의 빌어 유족요구 거부
‘민생법안 처리 못하면 세비 반납’ 국회 강도높은 비난도

세월호 참사 5개월을 맞은 16일,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특별법을 통해 설치될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달라는 세월호 유가족의 요구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또 세월호 특별법과 관련해서도 ‘특별검사 추천위원회의 여당 몫 추천위원을 야당과 유가족의 동의를 거쳐 추천한다’는 여야의 2차 합의안이 “마지막 결단이었다”며 추가 협상 불가 방침을 분명히 했다. 세월호 특별법에 대해 ‘국회가 알아서 할 일’이라며 3개월여 침묵하던 박 대통령이 결국 유가족들의 요청을 모질게 거절한 것이어서, 세월호 특별법으로 교착상태에 빠진 정국은 더 극심한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박 대통령 발언에 대해 “유가족·국민들과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쳤다”며 “청와대 앞에서 (농성을 하며) 대통령의 답을 기다린 지 26일째인데, 정작 돌아온 대답은 여야가 유가족과 국민의 뜻을 무시한 ‘2차 합의안이 마지막 결단’이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유족들이 요구하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자는 주장은 삼권분립과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일로, 대통령으로서 할 수 없고 결단을 내릴 사안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지금의 세월호 특별법과 특검 논의는 본질을 벗어났다. 세월호 특별법은 ‘순수한 유가족’들의 마음을 담아야 하고, ‘외부 세력’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족들의 요구를 ‘외부 세력의 정치적 이용’이라고 규정하며 향후 타협과 절충의 여지를 없애버린 것이다.
박 대통령은 회의에서 세월호 참사 사후처리에 관한 자신의 인식도 분명히 드러냈다. 그는 “(참사와 관련해) 그동안 대부분 문제점이 드러났고, 이제 국가혁신 추진해야 할 때”라며 “하루빨리 특별법을 통과시키고 유가족 피해보상 처리를 위한 논의에 시급히 나서달라”고 주문했다. 유족들은 세월호 참사 및 구조 과정에서 빚어진 정부의 부실 대응이 명백히 밝혀져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지만, 박 대통령은 ‘진상이 대부분 규명됐다’고 보고 보상문제를 언급한 것이다. 박 대통령이 이날 “(미국에서 구속된) 유병언 측근인 김혜경씨가 속히 국내에 들어와서 진실을 밝힐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법무부에 지시한 것도, 박 대통령이 참사 원인과 관련해 ‘유병언 책임론’에 무게를 두고 있음을 내비친 것으로 분석된다.
 
박 대통령은 ‘민생법안 처리’를 앞세워 국회에 대한 비판 수위도 끌어올렸다. 박 대통령은 “시급한 민생법안이 전혀 심의되지 않고 묶여 있으며, 민생도 경제도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며 “국회가 국민에 대한 의무를 행하지 못할 경우 (국회의원은) 그 의무를 반납하고 세비도 돌려드려야 한다”고 말했다. 행정부 수장이 입법부의 자율성을 침해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운 발언이다.
박 대통령은 최근 국회에서 사고 당일 자신의 행적을 둘러싼 의혹 제기가 계속되는 것에 대해 날 선 발언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박 대통령은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도 그 도를 넘고 있다”며 “이는 국민에 대한 모독이기도 하고 국가위상 추락, 외교관계에도 악영향을 준다”고 비판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후 김무성 대표와 이완구 원내대표 등 새누리당 지도부를 청와대로 불러 여당의 강경 대응을 주문했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국회에 계류 중인 정부조직법 개정안 등을 언급하며 “국회도 마비되고 야당도 파행을 겪는 상황까지 됐는데, 여당이라도 나서서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앞장서야 하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석진환 서보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