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 6일 이어 지난달 18일 대구 동성로에 그래피티 그려져
“젊은 예술가들이 지금 사회를 비정상·비상식이라고 느끼는 방증”


지난해 말부터 대구에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하는 그래피티가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에도 대통령을 풍자하는 그래피티가 그려진 적은 없었다.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강한 대구에서 박 대통령을 풍자하는 그래피티가 계속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대구에서 대통령 풍자 그래피티가 처음 등장한 것은 지난해 11월6일이었다. 박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을 풍자하는 그래피티 5개가 대구 중구 동성로에 그려졌다. 닭 부리를 달고 있는 박 전 대통령 얼굴 그림 아래에는 ‘PAPA CHICKEN’(아빠 닭)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 그래피티가 그려진 5곳 가운데 1곳은 대구 중구가 관리하는 박 대통령 생가 터(대구 중구 동성로5길 25)의 안내 표지판이었다. 대구 중구 동성로 야외무대에도 같은 그래피티가 그려졌다. 대구 중구 공무원이 이를 보고 경찰에 알렸고, 수사가 시작됐다.

이 그래피티를 그린 사람은 ‘푸가지’라는 이름을 쓰고 있던 대학생 김아무개(21)씨였다. 사건을 송치받은 검찰은 김씨에게 재물손괴죄를 적용해 벌금 100만원의 약식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김씨는 이 그래피티가 예술과 표현의 자유라고 주장하면서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지난 4월8일 대구지역의 문화예술단체와 시민사회단체, 인권단체들은 대구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표현의 자유 보장을 요구하며 무죄 판결을 촉구했다. 하지만 지난 5월15일 대구지법 형사7단독 김도형 판사는 김씨에게 재물손괴죄를 인정해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2015년 6월 18일 대구 동성로 그래피티


하지만 한 달 뒤인 지난달 18일 대구 중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주변 건물 벽에 또다시 박 대통령을 풍자하는 그래피티 6개가 그려졌다. 박 대통령이 왕관을 쓰고 있고, 눈과 입에는 각각 ‘PLEASE’(제발)와 ‘GRIND’(갈다)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영국의 남성 록밴드 그룹인 ‘섹스 피스톨스’가 2012년 6월 내놓은 앨범 표지 그림을 흉내낸 것이다. 이 앨범의 주제곡은 ‘갓 세이브 더 퀸’(신이 여왕을 구해주시기를)이다.

길을 가던 시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그래피티를 모두 지웠다. 법률 용어로 누군가가 타인의 재물을 ‘손괴’한 것인데, 경찰이 이를 ‘회복’시킨 것이다. 경찰은 주변에 설치돼 있는 폐회로텔레비전(CCTV)을 수거해 그래피티를 그린 사람을 찾고 있다.

보통 재물손괴죄는 민사사건으로 해결된다. 당사자가 경찰에 고소·고발을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실제 당사자가 고소·고발을 하더라도 경찰 쪽에서는 대부분 중간에서 민사합의를 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이 두 사건처럼 당사자가 고소·고발을 하거나 강하게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데도 경찰이 알아서 적극적으로 수사에 뛰어드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한상훈 대구민예총 사무처장은 “과거에 없었던 그래피티가 대구에서 계속 등장하는 것은 그만큼 젊은 예술가들이 지금의 사회를 본능적으로 비정상적이고 비상식적이라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느낌을 그래피티로 표현한 것인데 그때마다 이런 식으로 과도한 수사를 하면 예술과 표현의 자유는 위축되게 된다”고 말했다.
<김일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