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아닌 ‘인재’
태풍대책 발표 이틀만에 광화문 등 도심 침수
수해방지 예산 5년만에 641억→66억으로 ‘싹둑’

서울지역에 시간당 100㎜가 넘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진 27일 근처 우면산의 토사가 밀려든 서울 서초구 방배동 삼성래미안 방배아트힐에서 소방대원과 주민들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한 주택가에서 빗물에 떠밀린 승용차가 축대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다.
이틀 동안 내린 비에 27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과 강남 일대 등 도심 핵심부가 물에 잠기고, 서초구 우면산에서 대규모 산사태까지 발생하자 서울시의 치수관리 능력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특히 지난해 추석 연휴 때 폭우로 침수됐던 광화문 광장이 이번에 또다시 물바다로 변하자, 서울시가 제대로 대비를 하지 않아 발생한 ‘인재’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 지난해 추석 연휴 수해 직후 전문가들이 서울시내 하수관의 구조적 문제와 빗물저류조 등의 물관리 시설 부족을 지적했지만, 서울시는 이러한 문제를 여전히 해결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27일 <한겨레>와 한 전화통화에서 “하수관 시설 확충 등을 위해 올해 285억원의 예산을 편성했고 하수도 설비에 대해서는 용역업체 선정 작업 단계”라며 “강서·양천·광진구와 강남역 일대 등 침수 지역에 빗물을 모아두는 빗물저류조를 5개 신설하고 빗물펌프장을 12개 증설하겠다는 계획 역시 추진중”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수해 이후 올해 장마철이 지나도록 침수 피해에 대한 실질적인 대비가 이뤄지지 않은 셈이다.

더욱이 서울시가 지난 25일 지하철역 침수 등을 막기 위한 ‘슈퍼태풍 대비 종합교통대책’을 발표한 지 이틀 만에 지하철 1호선 오류역과 도심 일대가 물에 잠기자, 서울시가 내놓은 수해 대책의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염형철 서울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지난해 수해가 난 뒤 전문가들이 모여 서울시에 원인 분석과 대책 마련을 위한 공동조사, 통합적 수방대책 마련 등을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서울시가 ‘2010년 풍수해대책 종합 결과보고’를 통해 ‘최악의 상황에서도 피해 내용이 경미했다’고 주장하는 등 수해 원인을 폭우 탓으로만 돌리고 주먹구구식 대책만 내놓은 결과 똑같은 피해가 반복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대한하천학회 등이 주최한 ‘서울 한가위 홍수 진단과 지속가능한 복구방향’ 토론회에서도 전문가들은 “서울시가 도시의 겉모습만 신경쓰는 정책 위주로 가다 보니 아주 기본적인 수해 방지 대책은 실종됐고 예산도 줄어들고 있다”고 성토했다. 실제 2005년 641억원이었던 서울시 수해방지 예산은 지난해 66억원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이마저도 대부분 서초동 하수관 신설 등 대규모 공사에 쓰여 체계적인 수방대책을 위한 예산은 사실상 전무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서울시가 그동안 한강 공원 조성 사업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 것과 대조적이다.

특히 서울시는 일상적인 하수관 관리를 위한 예산마저 충분히 책정하지 않아, 일선 구청에서는 수해 발생 때 응급복구 등을 위해 적립하도록 한 재난관리기금까지 끌어다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내 지역이 수해를 입은 한 구청 관계자는 “지난해 대대적인 조사를 통해 하수관 내의 병목 구간과 물흐름이 원활하지 않은 구간을 발견했지만 아직까지 예산 등의 문제로 보수를 하지 못했다”며 “장마철이 아니어도 집중호우가 내리는 경우가 많아 하수관 안 퇴적물을 전보다 자주 치워줘야 하는데 이 역시 예산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하수관 보수 등 일부 공사가 일정상 늦어지고 있긴 하지만 배수관 내 퇴적물 준설은 90% 이상 완료한 상태고, 여러 대책 마련에도 불구하고 100년 만의 최대 폭우가 쏟아져 침수 피해를 막지 못한 것”이라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