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184, 보수 99, 신민 44석… 10.19 총선 보수당 정부 붕괴

10.19 총선에서 자유당이 의외로 압승, 보수당 정권 10년 아성이 무너지고 자유당이 정권을 재탈환했다. 젊은 패기의 43세 쥐스탱 트뤼도가 총리에 오르게 됨에 따라 47년 만에 캐나다에서 ‘트뤼도 마니아’도 재현됐다. 트뤼도 당선자는 11월4일 자유당 정권의 새 내각 조각을 마칠 것이라며 남녀 성비에 균형을 이룰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총선에서 중도좌파 성향의 자유당은 의석을 무려 150석이나 늘린 184석을 차지해 전체 338석중 단독 과반의석을 차지했다. 보수당은 의석을 67석이나 잃고 99석을 얻는 데 그쳤다. 신민당(NDP)도 59석이 줄어든 44석으로 쪼그라 들었다. 이로써 4연임에 도전한 스티븐 하퍼 총리는 총리직을 물러나게 됐으며, 당 대표직도 사임했다.
이번 총선 투표율은 71%로, 2011년 총선보다 10%p나 높았다. 개표결과 자유당은 거의 모든 지역구를 석권하다시피 했다.
GTA 지역의 경우 3곳을 제외하고 모두 자유당이 석권했다. 특히 보수당 정권의 장관이었던 조 올리버, 록산느 제임스, 크리스 알렉산더, 줄리앙 판티노와 전 재무장관 조 올리버 등이 모두 고배를 마셨다. 보수당은 포드네이션이라 불리는 에토비코-레이크쇼어와 에토비코 센터 지역구에서 포드형제의 지지를 받으면서도 패했다. 다만 전임 장관이자 현 보수당 의원인 리사 래잇과 에린 오툴은 자신의 자리를 지켜냈다.


온주에서 가장 치열했던 다운타운 스파다이나-포트 욕 선거구는 현직의원 아담 반(Adam Vaughan)이 신민당의 유력 후보였던 올리비아 차우를 누르고 자유당의 자리를 유지했다. 신민당은 전 신민당 당수 잭 레이톤의 지역구인 토론토-댄포스마져도 자유당에게 빼앗겼다. 자유당으로 출마한 전 경찰국장 빌 블레어는 스카보로에서 당선됐다.
정치전문가들은 집권 보수당이 소속 상원의원들의 세비 스캔들과 경기침체, 반테러 정책과 연금문제 및 난민정책 등에서 유권자를 실망시킨 것으로 보이며, 장기집권으로 방만해진 데 대한 국민적 염증도 패인이었다는 분석을 내놨다.


한인사회에서도 “상원 공금횡령 스캔들과 경제운용 실패, 미국 추종적 외교, 그리고 북한 억류 임현수 목사 사안 대처에서 보듯 자국민 보호 소홀과 무능, 인권·평화이미지 실추 등에서 실망감을 자아냈다”(김병권 전 평통회장) “집권기간의 업적이나 공약을 감안할 때 보수당이 이렇게 패할 선거가 아니었으나,장기집권에 따른 자만심이 좀 있었고 무엇보다 변화를 바라는 주민들의 욕구가 표출된 결과라고 본다.”(이경복 북한인권협회장) 는 등의 의견이 나왔다.
한편 트뤼도 총리 당선자는 승리가 확정된 직후 “오늘 캐나다인들은 이 나라에 변화, 진정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보냈다”고 강조했다. 트뤼도는 보수당과 확연히 다른 진보적 정책들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20만달러 이상 고소득자 증세, 과감한 적자 재정과 소비 진작을 통한 경기 부양책을 제시했다. 또 시리아 난민 2만5000명을 수용하고, 하퍼 정부가 추진하던 미국 F-35 스텔스 전투기 구매계약도 중단하겠다고 약속했다. 마리화나 합법화도 언급했다.


“우리가 이겼다!” - 쥐스탱 트뤼도 연방자유당 대표가 20일 오전 전날 치러진 총선에서 자유당의 압승이 확정 된 뒤 몬트리올에서 총선 승리를 선언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43세 ‘훈남 스타’ 트뤼도‥ 정치력은 미지수
부친 후광업고 정치입문 7년만에 총리… 보편복지 강조

19일 총선에서 10년 만의 정권교체에 성공, 차기 총리가 될 쥐스탱 트뤼도 자유당 당수는 캐나다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총리 피에르 트뤼도의 아들이다. 피에르(1919∼2000년)는 1968∼1979년, 1980∼1984년까지 무려 17년 동안 총리를 지낸 거목이다. 자유당을 이끈 그는 캐나다의 새 헌법을 제정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얻는 진보 가치를 정착시켜 ‘현대 캐나다의 아버지’, ‘캐나다의 케네디’로 불린다.
피에르 트뤼도는 총리 시절이던 51세에 당시 거의 30년 연하이던 22세 배우 마거릿 싱클레어와 결혼해 1971년에 맏아들 쥐스탱을 얻었다. 트뤼도는 6세이던 1984년부터 아버지와 어머니가 별거하자 줄곧 총리 아버지와 함께 생활했다.
그는 맥길대학에서 문학 학사학위, 브리티시컬럼비아대에서 교육학 학사학위를 받고서 밴쿠버에 있는 중등학교에서 프랑스어, 수학 교사로 일했다.
젊은 시절 그는 부친과는 달리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고 여행을 즐기거나 스노보드 강사, 바텐더 등으로 자유분방한 생활을 했다. 부친 피에르 트뤼도 총리 역시 평소 장남에게 정치에 뜻을 두지 말라고 말하곤 했다고 알려져있다.


그러다 3남 중 막내인 미셸이 스키 도중 눈사태로 사망하자 장남의 신분을 의식, 부친에게 정치를 할지 물었고, 당시 10분간 대화한 후 정계 진출의 결심을 굳혔다고 말한 바 있다. 파킨슨병을 앓던 부친이 전립선암까지 얻어 투병하다 2000년 사망하자 28세 때 읽었던 장례추도사로 정계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2008년 몬트리올지역에서 첫 출마, 하원으로 당선됐고, 2011년 재선했다. 정치 신인이었으나 부친의 후광, 사교적 성품, 진보 가치에 대한 신념을 앞세워 2013년에는 자유당 당수로 선출되는 이변을 일으켰다. 신선한 이미지를 지닌 트뤼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이번 총선 결과를 결정한 주요 요소 중 하나로 거론된다.
선거기간이 길어질수록 보수당의 10년간 집권에 대한 피로감이 커진 것과 대조적으로 트뤼도의 참신한 이미지가 대중에 더 많이 노출됐고 트뤼도가 대중스타처럼 돼버렸다. AP통신은 “키(185㎝)가 훤칠한 데다가 상큼한 43세 트뤼도가 1968년 ‘트뤼도 마니아’ 현상을 일으키며 집권한 부친 같은 스타파워를 발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뤼도는 매력적인 외모의 ‘훈남’인 데다가 대중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쾌활한 성품과 친화력까지 지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선거기간에도 조깅 등 아웃도어 스포츠를 즐기고, 매일 아침 6시30분이면 기상해 매주 한번은 측근이자 친구인 보좌관과 복싱 스파링을 한다는 사실이 전해지기도 했다.


부인은 막내동생의 같은 반 친구였던 소피 그레그와르로 어려서부터 알고 지내다 2003년 자선행사 공동진행자로 일하면서 본격적으로 교제했다. 2005년 가톨릭식으로 결혼했으며, 부인은 당시 퀘벡지역의 TV 방송진행자로 일했다. 두 사람은 슬하에 2남 1녀를 두고 있다. 앤토니아 마이오니 맥길대 정치학 교수는 “트뤼도는 연예인 같은 힘을 갖고 있다”며 “오죽하면 보수당에서 ‘총선은 인기투표가 아니다’라고 운동하고 다니겠느냐”고 말했다.
트뤼도가 많은 지지를 받고 있으나, 총리직의 무게를 고려하면 정치경력이 상당히 짧은 만큼 국가 지도자로서 국정운영력을 제대로 발휘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트뤼도는 최근 “피에르 트뤼도의 아들이란 사실이 자랑스럽다”며 부친이 캐나다에 남긴 유산인 다문화주의, 복수언어, 보편복지 등을 지켜가겠다고 선언했다.
지난 10년간 집권한 보수당은 이 같은 진보 가치보다 영국 왕실에 대한 전통적 충성이나 군사력 강화 등을 강조해왔다.
트뤼도는 이번 선거운동 기간에 중산층 감세, 부유층 증세, 재정적자를 통한 사회기반시설 확충, 올해 시리아 난민 2만5천명 수용, 마리화나 합법화 등의 공약을 내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