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전 광주 북구 5·18 민주묘지 참배단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광주·전남 지역에서 유일하게 당선된 이개호 전남 담양·함평·영광·장성 지역구 당선자가 홀로 묵념하고 있다.


“선거철만 호남, 호남…이곳이 야당표의 화수분인가요?”


“아이고, 말할 것도 없이 심판한 것이지요.”

14일 오후 2시께 광주시 서구 치평동 무각사 인근 주차장에서 승용차 문을 열고 있던 정성철(45·회사원)씨에게 “총선 결과를 본 느낌이 어떠냐?”고 물었다. 정씨는 “(수도권에선)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했고, 우리는 더민주를 심판한 것”이라고 말했다. 왜 과거와 달리 더불어민주당을 응징하려고 한 것일까? “선거 때마다 밀어줬는데, 해준 것이 뭐 있어요? 뭔 말을 하더라도 선거철만 호남, 호남했잖아요. ”


많은 시민들은 광주에서 더민주의 참패를 “예고된 결과”로 받아들였다. 광산구 수완동에 사는 김수지(46·공인중개사)씨는 “여기가 (더민주의) 표가 솟아나오는 화수분인가요? 김종인 셀프공천을 보고 ‘아, 더 이상 기대할 것 없구나’ 했지요. 문재인은 ‘커버력’(정치력)이 없는 것 같더라”고 말했다. 국민의당과 지지격차가 벌어졌던 더민주가 호남 공천을 둘러싼 불협화음을 내자 유권자들이 조금 열었던 마음을 완전히 닫았다는 분석이 많다. 무각사 숲길에서 만난 김선미(45·보험회사)씨도 “더민주가 하는 것을 보고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총선 전 “광주가 국민의당을 지지하면 ‘호남 자민련’이 될 것”이라는 경고에 내심 찜찜해하던 시민들은 총선 결과에 대해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총선으로 박근혜 정권을 심판한 것이 가장 시원하고, 그 다음으로 더민주 혼낸 것이 후련하지요.” 광주 남구 양림동에 사는 박상현(52·자영업)씨는 “하지만 국민의당 광주 후보 면면이 이뻐서 찍은 것이 아니라는 말을 기사에 꼭 써 달라”고 말했다. 이상갑(49·변호사)씨는 “이번 총선은 기성정치를 심판한 것에선 일관성이 있다. 수도권에선 그 대상이 새누리당이었고, 호남에선 더민주였다. 광주에선 더민주 지도부가 당을 제대로 끌고 나가지 못한 무능을 국민의당 현역의원 심판보다 더 우선시 한 것”이라고 말했다.


“더민주 혼낸 것 마음 후련”

“국민의당 예뻐 찍은 거 아냐”

일부 “이렇게 표 쏠릴지 몰랐다”

문재인 거취엔 ‘관망’ 많아


그러나 일각에선 호남의 ‘나 홀로 선택’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날 아침 광주 동구에서 만난 정아무개(52)씨는 “나는 소신껏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결과가 한 쪽으로 쏠리니까, 조금 머쓱한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날 아침 광주지역 한 시민단체 운영회의에서 만난 노경수(54) 광주대 교수(부동산건축학과)는 “광주가 더민주에 대해 칼을 살짝 보여주기만 해야 하는데, 칼을 다 빼 들어 버린 것 같다. 다른 곳에서 이제 광주에 빚진 느낌이 없어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노 교수의 말을 듣던 최민석(54) 신부는 “더민주에 대해 영금(따끔한 곤욕)을 보인 것은 좋은데, 가치를 보고 투표해온 광주가 이젠 정치1번지라고 말을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광주 싹쓸이를 곧바로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에 대한 지지로 연결 지어서는 안 된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았다. 광주시 공무원 송아무개(56)씨는 “지역구는 국민의당을 찍고, 정당투표는 더민주에 줬다”고 했다. 김원영(54)씨는 “더민주의 무능과 선거전략이 주요 원인이다. 안철수가 좋아서 표를 몰아준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구용 전남대 교수(철학과)는 “당장 두 당이 기계적으로 통합하는 것보다 서로 경쟁하는 것을 보고 싶다. 앞으로 정치적 쟁점을 대하는 입장 한 두 가지만 보면 다시 여론은 요동칠 수 있다”고 말했다.



‘호남이 지지를 거두면 정계은퇴하겠다’며 배수진을 쳤던 문재인 전 대표를 보는 시선은 여전히 ‘흐림’이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40대 남성은 “문재인이 크게 거시기(던져) 해부러야지. 약속했응께.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더라도…”라고 말했다. 무각사 앞 벤치에 앉아 있던 허아무개(75)씨는 “호남에선 패했는디, 딴디(수도권)서 승리한 것을 빙자해 나올 것 같던디…”라고 말했다.

<정대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