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자 칼럼] 아바(ABBA)의 존재

● 칼럼 2011. 8. 14. 14:11 Posted by Zig
책꽂이에서 몇 년 동안 잠자던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제목이 영 낯설어 선듯 읽고 싶다는 생각이 나지 않았던 책이다. 홍성사란 출판사와 믿음의 글들 130 131편으로 나왔다는 소개로 사두었던 책이다.  
정진호 교수는 토론토에도 다녀간 분이다. 연변과기대교수요 평양과기대 부총장 되고 난 후인가 설립 모금 차 내가 출석하는 교회에서 뵙던 분이다. 나와 친분이 전혀 없는 그가 작가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정문영을 2권 저자로 쓴 수수께끼 같은 의구가 문영이 곧 그분의 아들 이름인 것을 알게 되자 의문이 풀리는 것 같았다.  2권 끝말에 문영이 정진호라 밝혔다.  한번 손에 들고 읽기 시작하니 놓을 수가 없었다. 주인공 강형수의 처절한 삶과 그의 고뇌와 저항의식은 그 시대를 살았던 젊은이들의 형틀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1,2권 합하여 600쪽 가까이 되는 이 소설을 일주일 동안 씹어가며 읽었다. 이제나 저제나 믿음의 글로 올라와있는 진의를 파악하기 까지는 상당한 인내가 필요했다. 답답하리 만치 강형수의 방황과 욕망 그리고 기독교에 대한 끊임없는 거부감은 지독했다. 강형수가 완전히 파멸되고 더 밑바닥까지 내려 갈수 없는 처절한 상황에 이르자 비로소 ‘아바’의 존재를 찾는다.
 
‘아바’란 보화를 만나기 위해 소설의 3/2는 칠흑 같은 어두움 속 과정을 거쳐가야 했던가. 완전한 실패자, 모든 것을 상실한 그가 아바를 만나는 그 길목에서 조금씩 회복되어가는 과정은 처절한 비극을 극명하게 드러내면서도 실낱같은 빛 미세한 아바의 음성을 들려주고 있다. 
주인공 강형수는 서울공대 금속학과 출신이며 미국 MIT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작가 정진호 역시 서울공대 재료공학과 출신이며 MIT에서 공학박사를 취득했다.  자전적 구도소설이라 밝혔지만 어디까지가 실화요 어디까지가 허구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의 아내 최문선과 어떻게 만났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없다. 이 소설에선 다만 첫 번 결혼한 아내 민희와 아들 윤석이 이야기가 극적인 효과를 내며 펼쳐지고 있다.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고 아내와의 이별이 강형수로 하여금 영적인 wake up call에 결정적인 역활을 해주고 있다.
주인공을 의도적인 기독교인으로 만들기 위한 설정은 처음부터 없는 듯 싶었다. 아니 고백적인 이야기가 철저하게 진솔하다. 강형수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공감대가 이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으며 그가 그토록 경멸했던 ‘예수쟁이’에 대한 거부감이 내 속에서도 꿈틀거리고 있다는 자각에 나도 놀랐다. 그러면서도 위선과 교만이 묘하게 크리스천이란 명패로 포장되었다는 자신을 보며 아연해지는 것이다. 믿음은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요 떠드는 것이 아니라는 이 간단한 이치를 여기서도 발견하게 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란 서울 대학교 입학식 날 만났던 이 구절이 강형수를 황홀하게 해주었지만 그 참 뜻을 알게 되기까지는 그가 완전히 부서지고 난 다음이었다.

친구 박병훈의 입을 빌어 고백하고 있는 저자의 말에 눈이 고정되었다. 
“세상은 수많은 지혜서와 철학서와 종교의 경전들이 있어 왔지만 ,성경은 그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한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세상의 지혜서들이 모두 한결같이 깨달음을 얻고자 노력하는 지혜로운 자들을 위해서만 열려있는데 반하여 성경은 스스로 지혜롭다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철저히 닫혀있으며 자신의 어리석음과 절대 무능을 인정하고 두 손 들고 다가오는 사람에게만 비로소 그 놀라운 신비의 문을 조금씩 열어주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2권 236쪽)
강형수씨가 만난 예수라는 그 생명의 강을 체험하지 않는 한 그가 비록 신학박사라 할지라도 참 진리를 알 수 없도록 되어 있는 신비가 이 책 속에 있다는 거다.   저자 정진호와 나는 20년 차이다. 38년생인 나와 58년생인 그와 이 소설 속에서 만남이 신기로울 만큼 호흡을 함께 하고 있다는 것에 나는 스스로 놀라고 있다. 
평양과기대가 도마 위에 올라와 있다. 철저하게 북한의 정치꾼의 이용물로 전락되었다는 위기에 달하고 있다했다. 잘나가는 공학도가 모든 영화를 뒤로하고 그 험난한 길을 택한 것이 예수의 사랑 때문이었음을 이 소설은 간접적으로 저자를 대변해 주고 있다.
(필자 주: 아바는 하나님 아버지를 뜻하며 이 작품에서는 ‘아빠’로의 의미도 있다.) 

<민혜기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전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