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고 지은 죄와 알고 지은 죄는 어느 쪽이 더 나쁠까?
우리는 흔히 모르고 지은 죄는 용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르고 지었기에 고의성이 없으니 처벌은 가벼울 수 밖에 없고, 알고 지은 죄는 양심과 도덕 윤리를 어긴 죄질이 나쁘니 무겁게 벌해야 한다는 통념에서다.
성경의 디모데(전)서를 보면 바울 사도의 이런 고백이 나온다.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기독교인들을 심하게 핍박하는 죄를 지었으나 ‘모르고 지은 죄’였기에 용서를 받았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모르고 지은 죄가 더 중하다는 견해도 있다. 바로 ‘깨달음이 없어서 저질렀기에’ 나쁘다는 불교의 결과론적인 설법이다. 죄라고 생각하면 죗값이 두려워 조심하게 되지만 죄를 모르거나 죄가 아니라고 여기면 망설임이나 주저함이 없이 막무가내로 저지르기에 더 큰 악행에 이른다는 것이다. 쉬운 예로 벌건 쇠막대기를 보고 뜨겁게 달아오른 줄 아는 사람은 아무리 불가피해도 잡는 걸 주저하거나 조심하지만, 벌건 것을 금막대기로 오인한 사람은 덥썩 쥐었다가 큰 화상을 입는 것과 같다는 이야기다.
헌법위반으로 탄핵을 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을 계속 지켜보며 헷갈렸던 것은, 과연 알고 지은 죄인지, 모르고 지은 죄인지 종잡을 수 없을 때가 많았다는 사실이다. 그를 이용한 최순실은 알고 지은 죄라고 단정해도 틀린 말이 아니겠지만, 마치 로봇처럼 움직인 박근혜는 어떻게 보면 모르고 끌려다닌 것만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알고도 습관처럼, 혹은 아예 초법적 존재인양 대놓고 위법을 행한 것 같기도 하니 말이다.


탄핵소추와 검찰수사가 자신을 엮어도 너무 엮은 것이라고 억울해 하는 것이나, 탄핵반대 집회가 더 많았다고 주장한 것, 탄핵이 안될 것이라고 믿은 것 등 그간의 태도를 보면 자신이 무엇을 잘못한 것인지, 거의 인식하지 못한 자기중심적 사고에만 빠져있다는 의심을 준다. 탄핵 이후 승복이 아니라 긴 침묵 끝에 뱉은 한마디가 “진실이 반드시 밝혀질 것”이라는 걸 보면 또한 그렇다. 왜 죄없는 자신을 괴롭히느냐 두고 보자는 것이다. ‘죄의식 없는 확신범’이라는 말이 실감나기도 한다. 그렇다면 지난해 3차례에 걸쳐 사과 담화를 발표한 것은 무엇이며, 잘못이 없다면 왜 검찰과 특검수사를 보이콧하고 압수수색도 거부했던 것인가?. 처음엔 사퇴할 듯 하다가 아예 버티기로 돌더니 결국 파면까지 간 고집은 인지부조화(認知不調和) 탓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미필적고의(未必的故意)라고 설명해야 할까?


어떻든 그의 그런 기묘한 성정(性情)과 갈팡질팡 행보 때문에 국내외 동포 1700만여 명이 광장과 거리에서 4개월이 넘도록 생고생을 했고,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포함해 온 국민이 속을 끓이는 고통 속에 나라는 휘청대고 망신을 당했다. 그러니 더더욱 검찰의 철저하고도 강력한 수사로 진실을 밝혀줘야 한다. 죄를 모른 죄, 알고도 지은 죄, 참회조차 걷어차는 죄… 그 걸 샅샅이 판별해서 댓가도 분명히 치러야 함은 물론이다.
탄핵으로 끝난 박근혜 게이트 와중에는 ‘알고도 지은’ 죄값을 받아 마땅할 인물들이 수두룩하다. 몰염치·몰상식과 유아독존의 막가파식인 박근혜라는 인물과 그 일파의 수준, 속성을 여실히 보여준 스캔들이었기에 그럴 것이다. 그 중에도 압권은 최고학부를 나온 율사(律士) 출신 몇몇이다.


해외에까지 발을 뻗쳐 순진한 동포들을 오도한 김진태 의원은 아예 제쳐 놓는다 지차. 헌법재판관들과 80%의 국민을 무시하고 한줌 친박 세력만을 향해 광대처럼 쇼를 벌인 법률가들 말이다. 심지어 서울법대 수석에 명문 하버드 로스쿨을 나왔다는 변협회장 출신 거물 변호사의 법정모욕과 헌법절차 무시는 틀림없이 ‘알고 있을 죄를 알고 지은, 죄의식 있는 확신의 망동’이라고 할 텐데, 그 값을 국민 앞에 어찌 다 치룰 것인지 모르겠다.
실정법을 어긴 죄라고 할 수는 없을지 모르나, 그들의 선동에 솔깃해 ‘모르고 지은 죄, 부화뇌동의 죄’에 빠져든 무고한 사람들도 많았다.


스스로가 나라와 민족의 주인인 사실을 잊은 채 박근혜를 나랏님으로 여겨 무조건 따라나선 추종자들이 있었고, 그런 주군이 법을 좀 무시하고 비선 도움 받은 게 무슨 죄냐는 조선시대 사고방식의 백성들도 보였다. 동원책에게 여비를 받고 나가, 쥐어 준 태극기를 흔든 품꾼들도 드러났고, ‘태극기 집회’라니 이게 진짜 애국자들인가 보다고 발을 헛디딘 선량한 군중들도 많았다. 그들 중에는 민주제도가 정착된 해외 선진국 거주 동포들도 제법 있었으니, 과연 ‘모르고 지은 죄’에 해당할까, 아니면 ‘알고도 지은 죄’라는 뒤늦은 깨달음이라도 얻었을까?
어느  쪽이든, 누구에게나 또 다른 어느 경우든 보편적인 인간사회의 가치는 ‘배운 것, 익힌 것, 보고 들은 지식과 지성의 수준’을 가진 사람들의 ‘알고도 지은’ 죄가 훨씬 무겁다는 것이 통용되는 상식아닌가.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