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바닷가 도시에 갔다가 교통사고를 낸 적이 있다. 한가위 연휴가 시작되기 하루 전날이었는데 고속도로가 막히기 전에 빨리 돌아와야겠다고 서두르다 보니 정말로 눈에 뭐가 씌었는지 도심 한복판 비보호 교차로에서 좌회전을 할 때, 왼편에서 달려오는 차가 보이지 않았다. 정면충돌하는가 싶은 순간, 두 차 모두 급히 방향을 바꿔 꽁무니 부분이 서로 부딪치며 한 바퀴 돌았다. 길 건너편에 차를 세우고 달려가서 잘못했노라고, 모두 내 잘못이라고 백배사죄했다.


차 뒷좌석에 앉은 ‘대쪽 같은’ 인상의 남자가 분노한 얼굴로, 그러나 차분한 말투로 말했다. “내가 경찰서장이오.” 세상에… 하고많은 차들 중에서 그 도시 경찰서장의 차를 들이받은 것이다. “젊은 사람인 줄 알았더니, 나이가 꽤 드신 양반이네.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오?” 그렇게 통성명이 시작됐다.
알고 보니, 참여정부 시절 한국 경찰에 인권 개념을 확립하기 위해 온 힘을 쏟았고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당하다가 숨진 경찰청 건물을 경찰인권센터로 자리 잡게 하는 데에 지대한 공을 세운 사람이었다.
그 얼마 뒤 총경으로 퇴직하고 경찰 개혁을 강도 높게 주장하며 활동하는 모습이 언론에 간간이 보였다.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다시 경찰로 돌아가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엇입니까?”라는 진행자 질문에 “경찰노조를 만들고 싶습니다.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지만 많은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라고 답하는 것을 듣고 노동아카데미 강사로 초빙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인권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이 중간에서 다리를 놓아 강의가 성사된 날은 2016년 3월 말이었다. 경찰 총경 출신 강사가 강의 중에 타이타닉호 사건 영상들을 보여주며 말했다. “타이타닉호 사건입니다. 전세계 사람들이 이 사건에 대해 100년 넘도록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놀라울 정도로 닮은 세월호 사건 영상들을 보여주며 말했다. “세월호 사건입니다. 300명 넘는 사람들이 죽고 2년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얘기를 못 해야 합니까? 더 해야죠. 앞으로 100년 동안은 해야죠…” 마지막 말은 삼켜져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세월호가 인양돼 그 몸체를 서서히 드러내는 장면을 지켜보며 사람들마다 감회가 남달랐을 것이다. 나로서는 그 느낌을 적당한 언어로 표현할 자신이 없다. 다만 한 가지, 경찰 총경 출신인 시민도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세월호 사건이다.
서울대병원이 파업했을 때, 오랜만에 만난 간호사가 말했다. “어제 우리 남편이 하 선생님 만났다고 집에 와서 자랑하던데요.” 나는 ‘어제 만난 사람이 누구였더라…’ 잠시 생각을 해본 뒤 설마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혹시 남편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 활동을 하는….”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틀리지 않는다. “네, 맞아요.” 오랜만의 만남이 주는 즐거움은 이미 훌쩍 날아가 버리고,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가 금세 우리를 감쌌다. “그동안… 그런 일을 겪었군요.” “네, 그래서 휴직했던 거예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 나온 그이가 말했다. “제가 간호사라서요… 위생관념이 철저하니까…. 교대근무 마치고 집에 가면… 매일 가습기를 깨끗이 씻어서… 그걸 열심히 넣어 주었어요….” 마지막 말을 할 때쯤 얼굴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닫혀서 차라리 다행이었다. 그렇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들은 자신들이 가해자라는 생각 때문에 그동안 더욱 괴로웠던 거다.
장기 투쟁을 해온 노동자들이 높은 곳에 올라가 농성을 할 때가 있다. 언론이 ‘단독’ 표기를 붙여 특종 보도를 해 주기도 한다. 중요한 투쟁이고 힘을 모아 반드시 이겨야 하는 싸움이다.
그런데 그 소식을 들으며 “우리는 올라갈 굴뚝도 없어요”라고 말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그렇게 말하는 노동자도 길바닥에서 몇 년째 싸우고 있는 사람이다. 누군가 그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세월호 사건의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우리가 온 힘을 모아 반드시 규명해야 마땅한 일이다. 언론이 세월호 사건에 주목하고 있을 때, 행여 그것조차 부러워하는 사람은 없는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들이 혹시 그런 사람은 아닌지… 살펴보자. 누군가 그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 하종강 - 성공회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