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을 맞아 성묘 갔다가 문중 어르신들과 식사 자리를 가졌다. 박정희 대통령 덕에 보릿고개가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분들인지라 그 딸에게 투표하셨을 분들이다. 탄핵 이야기를 꺼내니 겸연쩍어하시며 아버지를 가까이서 보고 제대로 배웠을 거라 믿고 뽑아 줬는데 측근 관리도 제대로 못 하는 고집 센 여자였다며 혀를 차신다. 다음 대선에 누구를 뽑을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지만 한 특정 후보만은 뽑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유를 물으니 양반 동네 특유의 어법으로 “그 사람, 이미 대통령 행세한다잖나?”라신다. 누가 그러는데 탄핵 정국에 자신이 대통령이 다 된 듯 팽목항을 찾아갔고 이런저런 위세를 부렸다는 것이다. 세월호 희생자 참배를 가려면 천안함 희생자에 대해 충분히 추모해야 한다면서, 요즘 문제 되고 있는 북한 핵무기도 그 동네가 돈을 퍼주어 만들어진 것이라고, 근거없는 종북론까지 들먹이며 이야기 한다. 하지만 어르신들은 아무려나 누가 되든 선거를 할수록 노인들은 더 잘 먹고 잘 살게 될 것이라며 너털웃음을 웃으셨다.


어르신들 앞에서 말을 아끼던 문중 ‘청년’과 회식 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르신들이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이런저런 폭탄 정보를 받기도 하면서 요즘 들어 더 ‘빨갱이’ 운운하신다는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에 머물기로 한 이 ‘청년’은 실은 농업정책과 협동조합운동을 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것을 다 살피고 있는 40대 후반 장년인데 최근 노인들의 보수화와 인구 추이를 보면 선거제도에 의구심이 든다고 한다. 이 지역 인구 비율은 노인 일곱 명 사망에 아기 한 명이 태어나는 꼴이라고 했다. 투표일이면 양로원이나 요양원에 누군가가 모시러 갈 것이고 세상 돌아가는 것을 잘 모르는 분들은 투표장에 가면서 누구를 찍을지 물어보실 것이다. 이분들이 ‘신성한 국민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는 인구 불균형 상태에서 대의민주주의를 이야기하기란 힘들 것이다.
광화문의 시민혁명을 경험한 국민들 중에 이번 선거에 큰 기대를 거는 분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반공과 용공, 전라도와 경상도에 이어 세대 대립에 이른 선거판에 너무 안달복달하지 말자고 말하고 싶다. 선거라는 것이 직업전문인들이 주도하는 흥행쇼가 되어버린 지 꽤 되었고 이는 한국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2016년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와 트럼프를 당선시킨 미국 대통령 선거에 이어 현재 가장 드라마틱한 난장판을 벌이고 있는 프랑스 대선 정국을 보면 우리나라 상황은 실은 양호한 편에 속한다.


2002년 프랑스 대선 당시의 슬로건이 “파시스트에게 투표할 바에는 차라리 사기꾼에게 투표하라”였다는데 대의제로는 민주주의를 이루어낼 수 없다는 랑시에르의 선언은 이런 현실을 보면서 나온 결론일 것이다. 랑시에르는 애초부터 대의제는 과도제이지 민주제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대의제는 왕권을 붕괴시키고 새 질서를 만들고자 했던 ‘계몽된 지주’들이 뜻을 모으는 제도였다는 것이다. 이제 그들은 국경을 자유롭게 이동하는 글로벌 초국민이 되어 증발해버렸거나 선거 뒷돈을 댈 뿐이다. 선거 무대는 선거철에 잠시 1인 1표를 행사하는 국민으로서 자신의 화를 풀거나 취향을 확인하거나 위로를 받기 위한 자리가 되었다. 국민이라는 자부심 외에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이들이 브렉시트를 결정했고 트럼프를 지지했으며 현재의 프랑스 대선 정국을 스펙터클한 무대로 만들어내고 있다.
선거판에 너무 큰 기대를 걸면 안 된다. 광화문 광장에 울려 퍼진 콜드플레이의 ‘비바 라 비다’ 노래는 쫓겨난 왕의 독백이지만 실은 국민주권이 사라진 대의제의 붕괴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고민이 깊었던 랑시에르는 ‘위임’과 ‘대표’를 구분해야 한다면서 추첨제를 제안하였고 동시에 광범위한 광장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평소에 ‘시민’으로 불리지 못했던 이들이 스스로 시민권을 획득한 영토가 바로 광화문이었다는 이택광의 말처럼 광장의 영토는 새로운 국민들을 탄생시킨다.


강력한 광화문 광장 운동의 기억을 가진 시민들은 무혈혁명에 성공했다고 자화자찬할 때가 아니다. 광화문에 모이는 순간 새로 태어난 시민들은 그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정치시스템을 만들어내야 한다. 모욕과 배신의 정치판은 주로 강력한 중앙집권국가들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수평적 글로벌 연결망으로 이어진 지방분권의 역사를 써가야 할 때다. 그리고 언제든 다시 광장에 모여 시민의 힘으로 중앙집권 권력의 아우라를 벗겨낼 수 있기를 바란다.

< 조한혜정 - 문화인류학자, 연대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