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자 칼럼] 사랑이란 그놈

● 칼럼 2017. 5. 2. 19:11 Posted by SisaHan
미나가 행복 바이러스를 뿌리고 또 다녀갔다.
첫 만남이 있기 전 손편지를 보내와 나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던 아이, 보면 볼수록 정감이 가는 웃음기 많은 아이는 하루하루 피붙이처럼 편안함으로 다가온다. 늘 큰아들 옆이 허전해서 마음이 짠했는데 미나가 그 자리를 채우고 나니 뿌듯함과 함께 날아 갈 듯 어깨가 가볍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쉽게 오는 그놈의 사랑이 녀석에게는 왜 이렇게 더디게 와서 우리의 속을 태웠는지, 아마 이런 아이를 찾느라 그랬었나 보다.
 
녀석이 십여 년간 모국 생활을 청산하고 집으로 돌아오고부터 안도감과 함께 근심거리도 붙어 다녔다. 서울 체류 중에는 설마 누가 있겠거니 했고 그곳에서 철수한다는 전언이 있고 부턴 누군가 함께 오겠지 하는 바램을 가졌었는데 막상 기대가 무너지니 본인은 태연한데 부모인 우리가 더 조바심을 냈다.
배우자감을 만날 기회가 많은 그곳에서도 맺지 못한 인연을 좁은 바닥에서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 날이 갈수록 난감했다. 이런 때 어미가 나서야 한다는 지인의 충고가 있어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번번이 허사였다. 한계에 부딪혀 고심하고 있을 즈음, 무념무상의 녀석 얼굴에서 작은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마치 얼었던 땅이 풀리며 새싹이 움트는 느낌이랄까. 결혼 적령기를 훌쩍 넘긴 그에게도 사랑이란 놈은 늘 처음처럼 수줍게 그리고 아련하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말을 할 듯 말 듯, 그러면서 하루 이틀, 그는 그대로 우린 우리대로 서로 밀고 당기며 기분 좋은 줄다리기를 하는 동안 쌓였던 고뇌의 시간들이 저만치 멀어져 갔다.

아들과 미나가 가꾸어 가는 사랑 나무엔 지금 꽃이 피어 만발하다. 시시때때 나누는 전화 통화는 웃음으로 넘쳐나며 두 가지 일을 하느라 늘 피곤 해 하는 녀석이 일주일에 두 차례씩 토론토 행 장거리 드라이브는 기를 쓰고 한다. 사흘이 멀다 하고 입술이 부풀어 올라도 사랑의 힘은 그런 것쯤이야 하며 가볍게 날려버리기 일쑤다. 늦게 찾아 온 녀석의 사랑을 지켜보며 어미는 또 하나의 간절함을 보탠다. ‘더도 덜도 말고 부모처럼만 살아다오.’ 하고.
우리는 부부 싸움을 아직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결혼 38년 차 부부이다. 오죽하면 친정 조카딸이 ‘이모, 이모부는 아직도 눈에 콩깍지가 끼었다.’ 며 놀리기도 한다. 그때마다 ‘사랑하기도 바쁜데 싸울 시간이 어디 있냐.’ 고 얼버무리지만 긴긴 세월동안 우린들 왜 감정 대립이 없었을까. 크고 작은 일에 이견(異見)이 있을 때마다 서로 조금씩 양보했고 상호 신뢰와 존중이 바탕 된 대립은 금방 이해와 화해로 돌아섰다. 이렇게 결혼초기부터 자신들의 감정을 조금씩 억제하다보니 지금처럼 싱거운 부부가 되었다.
 
흔히 연애와 결혼은 꿈과 현실만큼이나 간극이 크다고들 한다. 하지만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 중간 선 쯤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노력을 해 온 듯하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나고 자란 성인들이 사랑 하나로 엮어져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사유로 그 사랑을 송두리째 뽑아버린다면 삶이 얼마나 고루하고 삭막할까.
남편은 나를 볼 때마다 가슴이 짜릿하다고 가끔 이야기한다. 젊거나 그렇다고 미모도 아닌 나에게서 아직도 그런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한 때 절절이 사랑했던 감성이 가슴 한편에 애틋함으로 남아 표출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나 또한 순간순간 그런 마음으로 그를 훔쳐보고 있으니…….
늘 숨을 쉬면서도 공기의 소중함을 모르듯, 곁에 있는 남편이 항상 그 자리에 있으려니 생각하다가 가끔 그의 부재를 떠 올리면 아득 해 질 때가 많다. 이 세상에서 오직 한사람, 그래서 더 없이 소중한 사람임을 서로 확인하며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남은 여정 계속하려 한다.
 큰 며느릿감 미나가 뿌리고 간 행복 바이러스는 내내 여운으로 남아 미소 짓게 한다.
‘어머니, 오빠가 파인애플을 하도 좋아해서 결혼하면 파인애플 나무를 심으려고 찾아봤더니 이곳과는 기후가 안 맞는다고 해요.’

애써 키운 아들을 며느리에게 빼앗겨도 아깝지 않은 멘트, 백 번 들어도 기분 좋은 말이다.

< 임순숙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에세이스트’로 등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