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봄으로 기억한다. 원주에서 같이 온 친구와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한 기념으로 경복궁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버스를 잘못 내려서인지 경복궁 매표소 가는 지름길을 놓치고 반대 방향으로 길을 잡았고, 청와대 정문으로 향하는 경복궁 옆길을 따라서 경복궁 담을 쭉 돌아 한참을 걷게 되었다. 군사도시인 원주에서 무장한 군인도 늘 보고 자랐지만 그때만큼 무서운 순간은 없었지 싶다. 꽤 넓은 길 곳곳에 보초를 서고 있는 군인들 외에는 지나다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금지구역에 발을 들인 느낌이었고, 무서운 냉기와 체포당할 것 같은 공포에 친구와 벌벌 떨면서 그곳을 지났다. 경복궁을 본 기억은 전혀 없고 친구와 떨었던 느낌만 진하게 남아 있다.


2003년 미국에서 돌아와 정착한 곳이 우연히 청와대 뒤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다. 그때 경험한 무지막지한 공포는 없지만 이제는 검문과 시위 진압에 시달리고 있다. 검문 방식은 대통령에 따라 달랐다. 노무현 대통령 때는 청와대 옆이라는 것을 거의 의식하지 않고 살았다. 검문도 별로 없고 백악산(북악산)을 열어주어 산책길도 좋아졌다. 이명박 대통령 때부터 다시 검문이 강화되었고, 박근혜 대통령 시절이 가장 심했다. 골목골목 경찰이나 의경이 늘 배치되어 있고, 탄핵정국 때는 가방까지 열게 하고 차 뒷좌석까지 확인하는 상세검문을 하기도 했다. 느낌이지만 검문자들의 말투나 표정도 박 대통령 시절이 가장 권위적이었다. 박 대통령이 삼성동으로 돌아간 다음날 이제는 검문을 안 하려니 기대를 했다가 실망만 했다. “이제 없잖아요?”라고 약하게 항변을 하였지만 검문자들은 들은 척도 안 했다.


시위도 그렇다. 노 대통령 때는 시위 진압이 거의 없어 별 불편함이 없었다. 광우병 촛불시위부터 시위 진압의 강도가 세지면서 이후 계속 불편하다. 시위가 있는 날은 모든 길을 의경버스가 미리 메워버린다. 경복궁역에는 지하철이 안 서고 주변 대중교통도 다 차단되고 검문도 심해져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보통 힘들지 않다. 지난 촛불시위는 박원순 서울시장 덕분인지 경복궁역에도 지하철이 서고 청와대 근처 길도 법원 판결로 덜 막아서 나아졌지만 힘든 경우가 많은 것은 여전하다.
최근에는 청와대 밑 경복궁역 가까이 영추문 앞에 있는 작은 동네공원이 박 대통령 때문에 사라질 상황이다. 작년 말 청와대가 삼청동 쪽 경호시설 확보를 위해 주택을 취득하면서 이 작은 동네공원을 주택 소유자에게 대신 주었다는 것이다. 공원이 있는 그 거리는 4·19 때 21명이 사망한 역사적인 곳이기도 하다. 수년 동안 늘 엔진을 끄지 않은 채 대기하는 수많은 시위 진압용 버스의 소음과 매연에 시달려 온 경복궁역 주변 주민들에게 박 대통령이 남긴 마지막 선물(?)이 무척 고약하다.


앞으로 선거 결과에 따라 청와대의 운명도 달라질 것 같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청와대와 관련한 변화는 있을 것 같다.
이번에는 대통령의 공간과 삶의 기획 속에 이곳에 살고 있는 주민도 포함되었으면 좋겠다. 주민이 검문당하지 않을 자유도 고려사항이 되었으면 한다. 대통령 때문에 주민이 힘든 일은 많았지만 지역공간을 함께 나누는 주민들에 대한 배려 혹은 미안함 등을 느낄 기회는 전혀 없었다. 대통령과 그 가족에게서 이곳에 살고 있는 주민다움이 드러난 경우는 그나마 음식점이나 이발소 에피소드가 있는 노 대통령 외에는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가깝게 지내는 이웃인 건축가 황두진씨는 이렇게 말한다. 취임식 첫날 대통령이 청와대로 가기 전 통의동 마을마당에 들러, 주민이 건네주는 빗자루로 딱 1분만 공원을 쓸고 휴지도 줍고 나서 주민들에게 박수받으면서 가셨으면 한다고. 그래서 ‘이 동네의 새 주민’이 되셨으면 한다고. 일주일 뒤에는 ‘주민의 삶에 대한 배려’, ‘대통령의 지역 주민성 획득’을 인정하는 ‘일상이 있는 소탈한 대통령’을 맞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 권인숙 - 명지대 교수, 여성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