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인물 뒤엔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미국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은 말하기를 “나는 어머니의 기도를 기억한다. 그 기도가 항상 나를 따라 다녔고 평생 나와 함께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비록 링컨 대통령처럼 큰 업적을 세우거나 유명 인사는 아니지만 그러나 나의 인생에 엄청난 힘을 미쳤던, 제 어머니의 눈물을 항상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눈물의 기도가 지금까지도 나의 길을 지켜 주었으며 헛된 길로 가지 않도록 나를 인도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의 일입니다. 연말에 중학교 입학시험을 치루고 나면 3월에 중학교 개교하기까지 2개월 이상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졸업시험도 끝났고 또 중학교 입학도 결정이 되고 나니 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친구들과 어울려 시간 보내는 것이 일과가 되었습니다. 그것도 좋은 친구라면 좋겠지만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려 밤늦게 까지 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부모님도 그동안 수고했으니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도 좋다고 생각하셨는지 별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계속 새벽에야 들어오는 큰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걱정을 하시고 또 책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친구들하고 노는 재미에 빠졌습니다. 만나면 좋은 놀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좋지 않은 것들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화투놀이를 처음 배웠는데 그렇게 재미가 있는 것입니다. 목회자 가정에서 자라나 교회와 집 밖에 몰랐던 저로서는 친구들과 밤새 어울려 화투놀이를 하곤 하는 것이 스릴이 있고 흥분되고 재미가 있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계속되는 저의 일탈 행위에 드디어 아버지는 큰 소리로 야단을 치기 시작하셨습니다. 야단맞을 때만 잠시 집에 있으면서 책을 읽는 척 하다가 또 유혹에 밀려 뛰쳐나가곤 했습니다. 그 유혹을 끊을 수가 없었습니다. 안 나가면 친구들이 집 밖에 와서 고양이 소리를 내며 불러댑니다. 그러면 살그머니 또 나가서 새벽에야 들어오는 것입니다. 도저히 내 스스로 그 유혹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친구들과 못된 놀이를 하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벌써 몇 번째 아버지로부터 경고의 메시지를 받았던 터라 혹시 주무시지 않고 기다렸다가 매를 드시는 것이 아닐까 두려움 속에서 조용히 문을 열고 마루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어두움 속에 누군가 그 마루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깜짝 놀란 저는 “드디어 오늘은 큰 일이 나겠구나!”라는 생각에 긴장을 하고 있는데 “이제야 오니? 피곤하겠다. 어서 가서 자라”고 하시는데 어머니가 앉아 계셨던 것입니다. 그 순간 긴장이 풀리면서 “아, 다행이다. 매를 맞지는 않겠구나! 그런데 왜 어머니가 아직도 안 주무시고 앉아 계시지..?” 라고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제 방으로 들어와 잠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부터 마루에 앉아 계시던 어머니가 흐느끼면서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세히 그 기도의 내용은 안 들렸지만 그러나 눈물로 기도하시는 어머니의 그 소리가 얼마나 내 마음을 찔러대는지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도 펑펑 울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소리가 천둥처럼 제 양심을 울려대는데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저도 통곡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 이후로 놀랍게도 더 이상 밤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친구들이 아무리 유혹을 해도, 고양이 소리를 내며 불러내어도 도저히 나가고 싶은 마음이 일지 않았던 것입니다. 저 자신이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내 마음이 얼마나 평안한지, 그 이후로 중학교 갈 준비를 해야겠다 싶어서 대학생 형들이 영어, 수학을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하는 곳에 가서 열심히 공부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제 가정의 달, 5월이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눈물이 생각나는 시기입니다. 예수님은 눅 23:28절에서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하였습니다. 정말 자녀들을 위하여 울며 기도해야 할 때인 것입니다. 책망보다, 회초리보다,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가 강력한 힘이 되어 우리 자녀들을 변화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 강성철 목사 - 우리장로교회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