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행하며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은 하기 싫어도 합니다. 가족을 위해 누군가는 매일 밥을 짓고,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은 일하기 싫어도 일을 합니다. 대개 이 경우는 힘들고 싫어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희생을 감수하며 까지 그 일을 지속합니다. 또, 하고 싶은 것은 좋아하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합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은 저축을 하든 빚을 내어서도 가게 되고,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은 잠자는 시간을 아껴서라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만약 반드시 해야 할 것을 하지 않거나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고 살면 마음에 상함이 생길 것입니다.

신앙도 이와 비슷한데 반드시 해야 하는 것과 좋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세속적인 인생과 차이가 있다면 그것의 중심이 나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어야 한다는 것과 그래서 ‘믿는’ 우리는 그분께서 요구하시는 반드시 해야 하는 것과 그가 좋아하시는 것을 행해야 한다는 차이일 것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하고 그가 기뻐하시는 것은 예배입니다. 기도입니다. 찬양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그의 뜻을 따르고 순종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을 하지 않는다면 위기가 올 것이고 그 중 가장 큰 위기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점점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위와 같은 일들이 더 이상 내게 삶의 동기와 이유와 즐거움이 되지 않고 있다면 하나님의 뜻이나 믿음대로 살고 있지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래서 성도라면 반드시 해야 할 것에 대하여 실천할 수 있는 믿음과 능력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의 역할이 매우 크고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히 4:12) 이자 믿음(롬 10:17)의 근거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다면 엘리야가 로뎀나무에서 일어나 부르시는 자리인 호렙산으로 나아갈 수 없었을 것이며, 그곳에서 들은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이 없었다면 다시 험난한 사명의 자리로 돌아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명의 자리를 지킨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며 인간적인 면에서 그럴만한 이유도 참 많이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합당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그가 부르셨고 원하시고 좋아하시는 위와 같은 사명의 자리를 떠나지 마시길 권면합니다. 당장은 쉼이 되고 평안해 보일 수 있으나 그것이야 말로 차츰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는 함정이 되기도 하니까요.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을 좋아해야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끝없는 욕망은 몸과 마음과 영혼을 다치게 할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을 하게 되면 현재를 살면서도 하늘과 땅을 기업으로 받는 풍성한 심령이 되리라 믿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어느 한 쪽도 명쾌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 혼란스럽고 보고듣기만 하여도 고단하기 그지없습니다. 이 혼란함과 고단함을 벗을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좋아하시는 것에 반응하는 것이며 일상생활을 예배로 드릴 때 가장 잘 발견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런 거룩한 일상을 너무도 많은 성도들이 포기하며 살고 있습니다. 선택은 늘 여러분 앞에 매일 놓여져 있습니다. 마음이 무겁고 멀리 간 것이지 천국은 늘 가까이에 있었음을 기억하고 사시길 바랍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겔 36:26-27)

< 노득희 목사 - 벧엘성결교회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