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성경과 적반하장의 데자뷰

● 칼럼 2017. 7. 5. 13:47 Posted by SisaHan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로마서 2장 5절),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히브리서 12장 17절).


이들 성경구절은 죄를 짓고도 회개와 용서를 구하지 아니하는 자들에 대한 심판의 경고가 담겨있다. 즉 죄를 지었어도 제 때에 깨달아 진실로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교훈이다. 성경에는 이처럼 죄와 회개에 대한 언급이 무수히 나온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음에 이르는 장면이 묘사된 누가복음 23장에는 중죄를 지어 예수와 함께 십자가 참형을 앞둔 강도가 참회하여 용서받고 낙원에 이르게 되는 극적 반전이 기록돼 있다. 설령 살인 강도범일지라도 진심으로 사죄하면 단번에 죄 사함을 받아 천국 입장권도 얻는 행운을 누리게 된다는 강력한 희망의 메시지다.
그런데 이같은 죄의 고백과 회개를 통한 용서의 원리가 단지 신앙과 영성적인 측면에만 그치는가. 그렇지 않음은 누구나 잘 안다. 실제로 세상 법정에서 눈물로 후회하며 용서를 비는 피고인이 감형과 선처를 받는 사례는 흔하다. 인간사회의 도덕과 윤리 기준에서도 얼마든지 통용되는 정리(情理)이기도 하다.


좀 더 비약해보면, 가령 독일은 나치의 역사적 죄과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무릎꿇고 사죄하여 용서와 화해의 배려를 얻었을 뿐만아니라, 이제는 도덕적으로 수준높은 지도적 국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 이웃 일본은 전혀 그렇지 못해 경제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존경과는 거리가 먼 질 낮은 나라와 민족으로 인식되고 있다. 자의식도 책임감도 없는 도덕 불감의 뻔뻔한 국민, 국가철학의 수준이 형편없는 나라. 그러다 보니 정치수준도 민주주의도 후진을 벗어나지 못하는 ‘살찐 돼지’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애틀란타 인근에 ‘평화의 소녀상’이 6월30일 미국에서 세 번째로 제막될 예정인 가운데 일본의 그 지역 총영사가 ‘위안부는 매춘부’라고 저질 망언을 늘어놓아 공분을 샀다는 소식이다. “일본군이 성노예로 삼았다는 증거가 없고, 소녀상은 예술 조형물이 아니라 증오의 상징이며 일본에 대한 분노의 상징물”이라는 것이다. 아베 총리 조차 과거 일제의 군대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사과를 표명한다고 소위 ‘불가역적 최종적 위안부문제 정부간 합의’라는 것에 담아서 발표하고 지키라고 윽박지르면서도, 자기들끼리 앞뒤가 맞지 않은 망발을 일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도둑이 제발 저린다’고 했듯, 스스로 소녀상을 ‘증오와 분노의 상징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가 망언을 내뱉는 사이 일본 외무차관은 미국 국무부장관을 만나 “한일간 위안부 합의 이행이 중요하다”며 동의를 구걸했다니 정말 저급한 나라의 외교관들임을 입증해주고 있다.
마침 미국의 하원 외교위원장은 독일의 사례를 상기시키면서 “아베총리는 역사를 직면해야 하고 정직하게 대해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고 한다. 그는 “일본은 침략과 위안부와 같은 인권유린의 역사를 젊은이들이 배우는 역사에 집어넣는 것이 중요하다”고 훈계를 덧붙이며 “독도는 일본이 제국주의 시절에 자신들의 영토라고 지도에 기록했을 뿐 과거에도 한국의 영토였고, 지금도 한국의 영토”라고 강조, 우리가 할 말을 속시원히 대변해 주었다는 보도다.
‘이전에 언젠가 경험하였거나 보았던 것처럼 여겨지는 느낌 혹은 착각’을 프랑스어로 ‘데자뷰’라거나 ‘기시감(旣視感)’이라고 한다. 마치 일본이 과거사를 깔아뭉개며 적반하장인 것과 너무도 닮은 행태들을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특히 요즘 한국의 일부 야당에게서도 바로 그 억지의 기시감을 실감하곤 한다.


압도적인 국내·외 한인들의 선택으로 새 정부가 들어서 높은 지지율 속에 50일을 맞고 있다. 그런데 헌정유린과 국정농단으로 탄핵당한 전 대통령의 지지그룹인 한 야당은 여지껏 반성의 기미조차 없이 무조건적으로 국정을 걸고 넘어지는 후안무치를 뽑내고 있다. 그런가하면 법의 심판대에 선 탄핵대통령의 재판정에서는 “우리 대통령님”을 외치고 법관들에게 “예의를 갖추라”고 호통을 치는 막무가내 신봉자들의 허망한 목소리도 들린다. 토론토에서도 “탄핵은 무효다, 석방하라”고 열을 올리는 이들이 있다하니, 그들의 심중과 가치관은 과연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성경은 또 이렇게 말씀했다.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그리한즉 그것이 너희에게 죄악의 걸림돌이 되지 아니하리라.』(에스겔 18장 30절) 잘못을 회개하고 반성하면 결림돌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거듭된 가르침이다. 그런데도 스스로 깨닫지도 못하고 과오 덮어버리기와 변명에 급급한 모습은 마치 썩어 문드러진 우상을 붙잡고 구세주라고 외치며 매달리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어리석음이다.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십자가에서 극적으로 구원받은 강도의 깨달음이요, 깨닫지 못한 자들에 대한 징벌의 경고이며 지극히 합당한 지적이다.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