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영혼이 없는 방송들

● 칼럼 2011. 8. 29. 09:36 Posted by SisaHan
<문화방송>의 최승호 피디. <피디수첩> 하면 그의 이름이 떠오를 정도로 눈부신 프로그램들을 만들었다. ‘스폰서 검사’의 실상을 폭로한 ‘검사와 스폰서’, 불방 사태 등 우여곡절 뒤 방송된 ‘4대강, 수심 6m의 비밀’은 침묵과 왜곡, 정권 홍보 방송이 되어버린 환경에서도 치열하게 진실을 전한 작품이었다. 그런 노력을 인정받아 동아일보사 해직언론인 모임인 ‘동아투위’에서 주는 ‘안종필 자유언론상’을 받았고, 한국피디연합회가 주는 최고의 상인 ‘한국 피디 대상’도 받았다. 
그가 얼마 전 <한겨레>에 ‘김재철 사장 사표 파동이 남긴 교훈’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실었다. 이 글에서 그는 “김 사장이 지배하는 문화방송에서는 땡전뉴스 시대 뺨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한 뒤 그 사례들을 하나하나 적었다. 그 사례들을 보면 참 엽기적인 일들이 21세기 대명천지에 공영방송이라는 조직 안에서 일어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가령 한상대 검찰총장 후보 아이템에 대해 담당 부장이 ‘불가’라고 했는데, ‘청문회 이후에나 해야지 전에는 절대 안 된다’고 했단다. 4대강 아이템은 너무 자주 해서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담당 부장이 피디들 책상을 뒤지는 이른바 ‘사찰 논란’까지 일어난 모양이다. <개그콘서트>의 ‘9시쯤 뉴스’에나 나옴직한 풍경들이다.
 
<한겨레>에 기고한 글 때문에 최승호 피디는 ‘회사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경위서 제출을 요구받았다고 한다. 서천 소가 웃을 일이다. 신문에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언론행위를 한 것을 두고, 명색이 언론기관이 이를 문제 삼다니, 참으로 괴이한 자기부정이다. 
최승호 피디는 이번 기고문 사건 이전에 이미 혹독한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다. 지난 3월, 이명박 대통령이 다니는 소망교회를 취재하던 중 <피디수첩>에서 쫓겨나 비제작부서로 발령받았다. 야구장에서 펄펄 뛰는 4번 타자를 어느 날 아침 사무실 직원으로 앉혀버린 꼴이다. 최 피디 외에도 여러 피디들이 그렇게 제작 일선을 떠났다. 
이런 일들은 <한국방송>에서도 이미 있었다. 김용진 기자는 지난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국방송의 과다한 홍보 방송을 비판한 글을 외부에 발표했는데, 그것이 취업규칙의 ‘성실과 품위 유지’ 조항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중징계를 받았다. 그러자 그는 “나치방송 또는 조선중앙방송에나 나올 법한 유형의 선전들이 국민의 소중한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에 버젓이 방송되는 것을 보면서, 이런 것들에 대해 아무런 말도 않고 지나가는 것이야말로 취업규칙의 ‘성실’과 ‘품위 유지’ 조항을 어기는 행위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국방송의 탐사보도 팀장을 하면서 탐사보도 영역을 개척한 그는 이에 앞서 정권이 바뀌자마자 부산총국으로, 다시 1주일 뒤 울산국으로 유배를 당했다. 이런저런 사유로 징계와 지방 유배를 떠난 직원이 김용진 기자만이 아니다.
 
올해 초, 한국방송의 젊은 기자·피디들이 주축이 된 한국방송 새노조에서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망가져버린 방송의 현주소가 확연하게 보인다. 이명박 정권 이후 ‘한국방송의 공정성이 악화되었다’는 답이 무려 94%에 이르고, ‘제작 자율성이 침해당했다’는 응답이 61%나 되었다. 제작 자율성 침해 유형으로는 ‘특정 아이템 취재·제작 강요’가 37.2%, ‘특정 아이템 배제 강요’가 33.1%, ‘특정 인물의 인터뷰·출연 강요’가 17.8%였다. 
더욱 끔찍한 것은 언론인 영혼의 죽음을 뜻하는 ‘자기검열’을 경험했다는 응답이 79.6%나 되었다는 점이다. 
최일선에서 취재하고 프로그램 만드는 젊은 기자·피디들의 가슴 아픈 자기고백이다. <피디수첩>의 경우에서 보듯 특정 아이템에 대한 강요와 지시는 매우 구체적이다. 군부독재 시절 ‘땡전 뉴스’ 만들 때 일상적으로 있었던 일인데, 그 암흑시대의 망령들이 다시 살아나 방송가를 뒤덮고 있다. 
이렇게 한국방송과 문화방송이 망가지기 경쟁을 하는 동안, 조·중·동 종합편성 채널은 온갖 특혜 속에서 프로그램, 광고시장, 방송인력시장을 황폐화시키는 과정에 이미 들어섰다. 민주주의의 토양인 언론은 이렇게 초토화되어 가고 있다.

< 정연주: 언론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