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학개혁은 사회개혁의 출발점

● 칼럼 2017. 7. 26. 17:42 Posted by SisaHan

문재인 정부는 재벌개혁, 검찰개혁 등 사회개혁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대학개혁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그것이 대학개혁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대학개혁에 대한 의지가 없기 때문은 아니리라 믿고 싶다.
오늘날 한국 대학은 사회의 모든 모순이 집적된 적폐의 하치장이 되었다. 대학은 기회의 평등을 확대하기보다는 부와 신분의 세습을 정당화하는 통로로 변질되었고, 사회적 정의를 구현하기보다는 기득권의 이해를 대변하는 기관으로 전락했으며, 진리보다는 영리를 추구하는 조직으로 타락했다. 오죽하면 “한국 대학은 민주주의 적”(김종영)이라는 비판까지 나오겠는가.
이 지경이 된 대학을 방치한 채 사회개혁을 운위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대학은 모름지기 최고학문기관으로서 국가의 정체성과 사회의 지향성을 규정하는 담론을 생산하는 기관이기에 ‘새로운 나라’를 만들라는 혁명적 시대정신에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대학개혁을 사회개혁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마땅하다.


독일 현대사는 대학개혁이 사회개혁의 토대이자 원동력이 될 수 있음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프로이센 군국주의와 나치즘의 비극적 역사에서 보듯이 유럽에서 민주주의와 시민사회 전통이 가장 빈약했던 독일이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인 정치제도와 복지체계, 사회의식을 갖춘 나라가 된 것은 무엇보다도 대학개혁의 성공에 힘입은 바 크다.
오늘날의 독일은 68혁명의 여파로 이루어진 대학개혁의 산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개혁의 결과 독일 대학은 완전히 새로운 기관으로 탈바꿈했고, 그 새로운 대학이 새로운 독일을 만들어냈다. 대학은 사회의 다양한 조직 중에서 가장 민주적인 조직으로 바뀌었고, 사회적 정의가 가장 잘 구현된 기관으로 변했으며, 부당한 권력을 비판하는 도덕적 권위의 중심이 되었다.
부연하면, 대학개혁을 통해 독일 대학은 ‘학문공동체’의 3주체인 교수, 학생, 강사/조교가 권리를 똑같이 나누어 갖는 ‘3분할원칙’에 입각하여 가장 민주적인 공동체가 되었으며, 학생의 등록금과 생활비를 국가가 떠맡아 모든 사회계층이 차별 없이 교육받을 수 있는 사회정의의 실현 공간이 되었고, 진리와 정의의 이름으로 권력을 비판하고 이상사회를 기획하는 사회 변혁의 거점이 될 수 있었다. 대학은 “미래의 유토피아를 선취하는 소우주”여야 한다는 훔볼트의 염원이 마침내 현실이 된 것이다. 오늘의 독일은 이렇게 개혁된 대학에서 성장한 젊은 세대가 ‘제도 속으로의 행진’(루디 두치케)을 감행하여 만들어낸 신독일이다.


독일과 비교해 보면 우리의 현실은 실로 참담하다. 한국에서 대학은 미래의 유토피아를 선취하는 공간은커녕 가장 후진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사회기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초등학교 반장도 선거로 뽑는 시대에 지성인을 자처하는 구성원들이 자신의 대표를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는 비민주적인 조직이 한국 대학이고,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과 착취가 가장 자심하게 자행되는 곳이 한국 대학이며, 자본과 국가 권력에 굴종하며 일체의 비판정신과 변혁의식을 거세당한 곳이 한국 대학이다. 대학이 이처럼 남루한 흉물로 퇴락한 결과 한국 사회는 비판의 정신도, 정의의 언어도, 변혁의 전망도 상실한 절망사회로 추락했다.
문재인 정부가 진정한 사회개혁을 바란다면 대학개혁에 더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개혁의 장애물로 전락한 대학을 이제 개혁의 동반자로 변화시켜야 한다. 대학이 진보의 길잡이가 되지 못하고 퇴보의 앞잡이가 되어버린 사회에 미래는 없다.

< 김누리 - 중앙대 교수, 독문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