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구태에 젖어있는 외교관들

● 칼럼 2017. 7. 26. 17:45 Posted by SisaHan

한민족은 5천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조선왕조만의 연륜도 5백년이다. 그 유구한 역사가 물론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고 깊이 상처난 굴곡도 있었고 숱한 외침도 받아왔다. 하지만 백의민족의 명맥은 이어져 왔다. 홍익인간의 얼과 DNA는 죽지않고 살아서 민초들의 숨결과 혈관에 연면히 흘러왔다.
그 명맥이 위태로웠던 게 말까지 잃어버린 일제 36년이다. 36년은 오랜 역사에 비해 참 짧은 기간이다. 4백30년을 타국노예로 산 이스라엘 민족에 비하면 얼마나 짧은가. 그런데 그 역사의 짧은 단절과 외세 오염의 시기가, 이제 그 보다 두 배나 더 긴 세월을 지나오면서도 말끔하게 ‘정화’되지 않고 혼탁한 본류로 흘러내리고 있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일제 잔재 친일 본색과 군국주의에 물든 독재 망령의 무리들이 단 36년으로 그쳤어야 할 오욕의 시대를 엿가락처럼 늘려서 위세를 떨져 왔고, 여전히 쉽게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 잔재 위력도 얼마간은 계속될 전망이니 참 질기고 독한 오염물질의 폐해가 아닐 수 없다.


그 실상은 현대사를 간단히 복기해 보면 명확하게 이해가 된다.
광복 후 분기충천했던 자주독립의 민족적 여망이 반민특위를 무력화 시킨 이승만 독재로 무산되어 버렸고, 4.19 혁명으로 되돌리려던 시도 역시 일본 천황에게 충성혈서를 썼다는 박정희 쿠데타로 무참히 짓밟혀 버렸다. 독재자가 총탄에 쓰러진 뒤 찾아 온 1980년 민주의 봄은 전두환의 군홧발이 깔아 뭉갰다. 6월 항쟁으로 쟁취한 민주화 진전은 독재군부 후계자와 그에 결탁한 변절 민주세력에 의해 도루묵이 됐다. 그리고 나서야 등장한 민주정부 10년의 성과는 다시 득세한 독재 잔존 수구세력에 의해 어이없이 후퇴해 원점으로 되돌려졌다.
국정원의 정치공작 국기문란과 일본군 위안부 협상의 몰상식 외교, 반인권과 불의한 역사의식, 거기에 국방을 위태롭게 하는 방산비리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적폐들에서 일제 36년의 지독한 잔상들을 본다.


무려 1700만이 들고나온 촛불이 그 잔재와 악습을 불태우기 시작하며 새로운 희망의 시대를 연 것이 두 달 전이다. 그런데 여태껏 크게 달라진 것이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수구 잔당들은 이번에도 다시 되돌려보려, 사사건건 반대하고 발목을 걸어 역사 퇴행과 불의한 기득권 유지의 검은 속셈을 노골화하고 있다. 친일성향 이사장 때문에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한국방송의 구성원들이 ‘친일’과 ‘민주’ ‘세월호’ ‘탄핵’ 등의 단어를 금기시 한다는 놀라운 증언이 나왔다. 지난 10년 망가질대로 망가진 문화방송은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을 ‘빨갱이, 공산주의자’라고 주장하는 인물과 ‘탄핵은 잘못된 것’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자들이 ‘지푸라기 권세’를 잡고있다. 질긴 친일독재 세력의 회귀본능을 가장 극명히 증언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런 적폐의 얼굴들이 어디 국내 뿐이겠는가. 새 시대의 도래를 거부하며 수구적 향수에 젖어 비정상의 정상화를 거북해 하는 세력들이 해외 이민사회라고 없을 리가 없다. 탄핵을 불법이라고 주장하고 수감된 전 대통령을 석방하라며 국제 인권기구에 청원한다는 몰상식의 당당함에는 연민이 인다. 그저 그들은 민간인이고 이민자들이니 감(感)이 무디다고 치부한다손 치자. 정부의 관료로 국록을 먹고사는 외교관들은 어떻게 봐야 하나. 행정부의 수장이 바뀌고 국정철학과 지표가 쇄신됐는데도, 여전히 구태에 젖어 구 정권적인 사고와 행동에 머무는 공무원이라면 도태의 대상임을 잘 알텐데 말이다.


대사는 대통령을 대신해 국가를 대외적으로 대표하는 고위공직자이기에 특명전권대사라 한다. 나라의 정체성에 투철하여 정부간 교류와 교섭은 물론 재외국민 뒷바라지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외교관이다. 그런데 새 정부가 들어선 중요한 시기에 부임한 캐나다 대사는 토론토를 첫 방문하면서 누구를 만나고 갔는가. ‘한인사회와의 소통과 열린 마음 다가가는 공관, 서비스 공관을 다짐했다’ 운운하는 입발린 보도자료에는 참 어이가 없다. 간담회에서 ‘새 대통령의 동포사회에 대한 관심’을 언급했다는 그가 만나고 간 인사들이 과연 새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반길 부류였을까. 대사와 총영사가 은밀히 연락해 만난 연줄인사들이 과연 새 정부 새 시대를 이해하고 수렴할 만한 사람들이라고 믿고 만난 것인지, 아니면 시대와 정신이 바뀐 것을 거북해 하거나 애써 외면한 구습의 연장선에서 의례적인 ‘자기들만의 리그’ 이벤트 쇼를 재연했을 뿐인가.


친위그룹을 앞잡이로 사주하고 그들만을 상대하며 반대세력은 철저 배제·탄압한 불통 수구정권은 압도적으로 탄핵당했다. 그런데 그 단절돼야 할 악행이 아직도 횡행하고 거기에 외교의 첨병들이 젖어있는 현실은 이미 과도기라 변명할 때도 지났다. 적폐청산과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국가적 과제와 국정철학을 잘 모르거나 거부하는 공직자, 신선한 새 공기를 외면하고 탁한 옛 공기에서 계속 숨 쉬겠다는 외교관이라면 곧 호흡곤란이 올테고, 당연히 도태되어야 마땅하다.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