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자 칼럼] 이열치열 민어탕

● 칼럼 2017. 8. 30. 12:57 Posted by SisaHan

팔월도 하순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여름은 푹푹 쪄야 제 맛이건만 올해는 유난히 잦은 비와 초가을 같은 선선한 날씨에 폭염의 계절이 꼬리를 내리는 듯하다. 올 들어 기껏 두어 차례 덮은 인조견 이불을 한직으로 돌려놓고 차렵이불로 삼복을 났더니 서걱거리는 인견의 차가운 감촉이 아쉬워 곁눈질만 하게 된다. 계절은 어쩌다 부족한 듯 다녀가도 우리의 생체 리듬은 그에 상관없이 예년과 똑 같은 반응을 보인다. 평소에는 음식 투정이라곤 않는 남편이 이것저것 색다른 메뉴를 들먹이고 같은 일을 하는데도 더 지쳐 보이는 가족들, 활동량에 비해 식욕이 부진한 계절이다. 문득 여름 보양식이 궁금해 인터넷을 뒤졌다. 대한민국 3대 여름 보양식은 민어탕, 도미탕, 보신탕 순 이라고 한다. 이곳 캐나다에선 이름뿐인 식자재들이다. 자칫하다간 가족의 건강까지 우려되는 요즘 같은 시기에 달아난 입맛을 찾아 올 예전의 그 복달임 음식이 부쩍 그립다. 늘 이맘때면 더욱 생각나는 여름 보양식, 시어머니의 구수하고 담백한 민어탕 생각이 간절하다.


 초복이 가까워지면 시어머니는 수산시장과 연이 닿은 이웃집에 전화를 하여 싱싱하고 큼직한 민어를 미리 수소문 하게했다. 민어는 무엇보다 커야 맛이 달다며 가격에 상관없이 큰 놈을 구해달라고 재차 신신당부의 말씀을 잊지 않으셨다. 백성의 고기라하여 민어(民魚)라는 이름이 붙은 생선이건만 결혼 초기인 그 옛날에도 여간 귀하지 않아 배달 전화가 오기까지 시어머니는 며칠 동안 노심초사 하셨다. 유난히 더위를 많이 타서 여름이면 늘 고생이 심하셨던 시어머니는 민어 배달이 오면 가족들 불러들이는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었다. 서울에서 대대로 살아온 시댁의 복 달임은 민어탕이었는데 바닷가에서 나고 자란 나에겐 이마저 생소한 풍경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시어머니의 뒷시중을 드는 동안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으로 가득했다. 어림잡아 열 댓 명이 모이게 될 답답한 집안에서 고작 생선 한 마리로 어떻게 한여름 더위를 다스릴까. 그리곤 내 어린 날 남해안 바닷가에서의 편린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온가족이 조그만 통통배를 타고 댓섬으로 해수욕 가던 때의 설렘,
아버지의 낚시 다래끼에서 펄떡이는 생선을 꺼내어 손질하시던 어머니 모습,
큰언니가 밀어주는 까만 튜브를 타고 처음으로 바다를 향해 나아갔던 아찔한 순간,
진종일 물속에 있는 우리를 향해 하나씩 던져 주던 시고 짠 풋사과의 아련한 맛, 등
삼복 더위하면 떠오르는 짙푸른 기억 위로 이열치열 민어 매운탕이 어떤 형태로 자리매김 될 지 궁금했다.
기본적인 손질을 마친 민어가 부엌으로 들여지면 시어머니는 부위별 해체를 서두르셨다. 살집이 가장 깊은 부분은 양념구이 용으로, 담백하고 차진 등살은 횟감으로 그리고 남은 살과 부레 껍질은 분리하여 따로 준비해 두셨다. 나머지 부산물은 토막을 쳐 미리 끓여 놓은 육수에 켜켜이 앉힌 다음 불을 켜고 나서야 겨우 한시름 놓는 과정들, 신선도 유지를 위해 안간힘을 쓰는 시어머니의 수작업을 지켜보는 내내 민어를 얼마나 신령스럽게 다루는지 감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온 식구가 둘러앉은 후끈한 열기 속에서 잘 끓인 민어탕을 한 사발씩 받으면 젓가락은 우선 민어회부터 집어 들었다. 싱싱하다 못해 은은한 무지갯빛 까지 감도는 흰 살 한 점을 겨자 장에 찍으면 부드러우면서도 졸깃한 식감, 고소함까지 겸비한 맛은 제주 앞바다 푸른 물이 입안에서 출렁이게 했다.
민어의 모든 것이 농축된 걸쭉한 국물에 기름기까지 어우러진 탕은 전혀 비리지 않고 담백하여 넋 놓고 먹다 보면 온몸에서 땀이 줄줄 흘러 내렸다. ‘열은 열로 다스린다’는 ‘이열치열’의 깊은 뜻을 헤아리며 언뜻 시어머니를 뵈니 윤기 흐르는 모습으로 탕에 밥을 말고 계셨다. 평소 생선 비린내를 체질적으로 싫어하는 당신이셨는데… 그리곤 그 여름은 온 집안이 평온했다.
‘밥이 곧 보약’ 이라는 선인들의 지혜를 새삼 상기하며 이 여름 다 가기 전에 입 맛 돌아 올 먹거리 마련에 힘써야 하겠다.

< 임순숙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에세이스트’로 등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