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은 소유를 가진 가난한 자도 그 적은 가운데서 구제를 해야한다 (막12:42). 우리는 많은 경우에 있어서 우리 자신을 절제하여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공급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이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가진 것을 요구하시지, 가지지 못한 것을 요구하시지 않으시는 것이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경건과 자선을 위해 사용할 수있도록 무엇을 드리나를 보고 계시는 것이다. 우리가 가벼운 마음으로 드리나,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나, 아까운 마음으로 드리나, 인색한 마음으로 드리나를 보시는 <주님>이시다. 곧 <주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보시는 것이다> 누구를 위하여 <안식일>이 있는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막 2:27). 그러므로 우리는 <안식일>을 하나의 과제나 고역으로가 아니라 하나의 <특권>이나 <은총>으로서 영접하고 환영해야만 할것이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사람이 <안식일>이 제정되기 하루 전에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즉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창조 되었다. 즉 주 하나님께 영광과 섬김을 위해 창조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그의 생활에 필요한 보급을 받는 일조차 <안식일>의 율법에 의하여 제지를 받도록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창조된 것이 아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은 그들의 신앙초기에 부담이 되었던 경건 생활과 헌금 강요에 대해서 어두운 선입감을 가진다. 교회는 연약한 그리스도인들에게 과중한 부담을 갖지 않도록 주의하는 교회의 치리가 있어야 된다. 즉 주님의 영예가 그 본래의 목적대로 쉽고 즐거웁고 유쾌하게 하여야 된다. 그리고 우리 크리스천들은 <안식일-주의날>에 대해서 분명한 주 하나님의 뜻을 살펴 보아야 한다. 즉 주 하나님은 안식일이 우리에게 유익이 되도록 계획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안식일이 우리에게 유익이 되게하고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다. <주 하나님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도록 만드신 것이다>. 즉 우리의 심신도 힘들고 고달픔에서 자유케 하신 것이다(신5:14). <우리의 육체의 휴식을 위해서>. 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필요한 경우 몸을 위해 필요한 일용할 양식을 취하는 것을 <안식일> 규례(법령)가 억제케 하는 것을 확실히 의도 하시지 않으셨을 것이다.

<안식일>제도는 인간의 교화를 위함이지 인간의 파멸을 위함이 아닌, 그 자체 의도에 모순이 되게 해석 되어서는 <결코>안 된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다만 거룩한 일을 위한 날과, 주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기 위한 날이 되게 하기 위해 쉬는 날로 제정하시었다. “인자는 인식일에도 주인 이니라”. 안식일들(주일)은 인자의 날들 임을 주의하자! 주님은 그 안식일의 주인이시다. 그러므로 크리스천들의 안식일은 주의 날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계1:10). 그러므로 인자, 그리스도, 중보자는 언제나 <안식일>의 주인으로서 공경 받아야 한다. 모든 크리스천들은 그들이 받은 은사나 은혜를 받을 때에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활용하고 섬겨야 한다. 은사나 은혜는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등불>과 같이 되게하고 “여호와의 등불”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등불과 같이 빛을 받은 자들은 자기 자신들을 <등경>위에 놓아 빛을 잘 비추게 해야 한다. 이런 것들이 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잘 포착해서 활용해야 함으로, 우리들이 소속해 있는 공동체(교회)를 섬길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알자! 우리는 우리 자신들만을 위해서 빛을 내어서는 안 된다. <만일 내가 주 하나님께 진실한 종이 된다면, 주 하나님께서도 나에게 진실하신 <주>가 되어주실 것이다>.

좋은 땅에 심겨진 씨처럼, 주 하나님 나라와, <복음>도 인간의 마음에 뿌려지고 받아들여질 때에 그와 같이 말없이 큰 성과를 내게 된다. 우리는 <복음>이 우리의 심령 속에 자리를 잡고 있게 하여 “위로부터 난 지혜”와 같이 “선한 말을” 하여 우리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나타내 보여 주어야 한다. 정당한 <복음>의 원리를 따라서 솔직한 마음으로 주예수 그리스도를 섬길 때에 “주님”은 이를 달게 받아주시며, 인간의 심령에 자리를 잡고 역사하시며 무르 익어가는 복음의 열매를,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러운 추수때에 <주님>에게로 거두어들이는 것이다(요4:35). <복음>을 올바로 받아들이고 그 과정을 올바로 거쳐 완전히 성숙하였을 때에 추수가 이루어지는 것이며, 그때에 그들은 익은 곡식과 같이 주 하나님의 곡간에 모아 들여지게 되는 것이다.(마13:30).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이(딤후3:5) 흔히 형식에 대하여는 세심하며, 그들의 형식을 따르지 않는 자들에게 대해서는 극히 비판적이었다.

만일 우리가 <복음(성서)>에서 읽은 말씀을 회상하게 된다면 우리의 많은 잘못이나, 올바른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그릇된 비난들이 고쳐지게 될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에 의한 호소는 가장 설득력이 있게 된다. <사역자>가 되고져 주 예수님께 나오기를 원하는 자들은 자기들 자신의 만족의 겉옷을 내어 던지고 모든 자만의 옷을 벗어버려야 한다. 목회와 사역위에 가장 달리기에 간편하도록, 즉 거추장스런 겉옷이나 자신들을 넘어지게 할 만한 것들이나 주님께 나아오는데 방해가 되는 것이나 자기의 행동을 둔하게 할 만한 것들을 집어 던져 버려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기도하시기 위하여 조용한 곳에 계셨다>. <복음> <사역자>들은 교회가 졸고 있지 않도록 골방에서 <기도>의 본을 보여야 한다. 할렐루야! 아멘.

< 김진규 - 밀알교회 장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