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보수는 지금 사상 최대 위기를 겪는 중이다. 그런데 자신들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여전히 모르는 것 같다.
대표적인 사례가 요즘 적폐청산에 대해 보이는 그들의 태도다. 나라의 근간을 뒤흔드는 행위를 서슴없이 자행한 것도 모자라, 발각된 뒤에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 세금으로 대통령에게 뇌물 좀 줬다고 전 정권의 국가정보원장을 한꺼번에 세명씩이나 구속하겠다는 건 심하지 않냐고, 지금 혁명 중이냐고 투정 부린다. 나라 지키라고 만들어놓은 국정원과 군대가 국민을 편 갈라 이간질하고 심지어 선거에까지 개입했다가 걸렸는데 이런 위헌적 행위에 대한 검찰 수사를 정권의 하명수사이며 정치보복이라고 비난한다. 이게 과연 ‘법과 원칙’을 중시하고, (국가를) ‘보전하여 지킨다’는 보수가 할 짓인가. ‘피디수첩’이나 ‘미네르바’ 사건처럼 ‘없는 죄’도 만들어내던 사람들이 ‘있는 죄’를 모른 척하라고 강변하는 꼴이다.


‘하명수사’ 프레임은 ‘도둑이 제 발 저린’ 사고방식의 전형이다. 그런 식의 하명수사가 이 정부에선 통하지 않는다는 걸 정말 모르고 하는 소리일까. 현직 청와대 정무수석의 비리 혐의에 대한 수사를 법무부나 청와대에 사전 통보 없이 시작할 정도로 검찰의 중립성은 잘 지켜지고 있다. 전병헌 전 수석 본인은 억울하다고 하는데도 면직부터 시킬 정도로 지금 청와대는 결벽증이 있다.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자신에 대한 내사를 벌였다는 이유로 국정원을 동원해 사찰하고 내쫓았던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청와대와는 판이한 대응이다. 이제 우 전 수석 같은 독재적 발상은 꿈도 꾸지 못할 시스템이라는 걸 하명수사를 말하는 사람들 스스로 더 잘 알 것이다. ‘정치보복’ 주장도 마찬가지다. 정치보복이란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정연주 전 <한국방송>(KBS) 사장처럼 일부러 먼지를 털기 위해 국세청이나 감사원 등을 동원해 벌이는 표적 수사에나 해당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번엔 국정원의 천인공노할 불법행위가 먼저 있었고, 그걸 조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전 정권과 전전 정권의 비리를 흐름에 따라 수사하는 것이다. 애초부터 누굴 타깃으로 하는 보복 수사와는 거리가 멀다.


가장 한심한 것은 변창훈 검사의 죽음을 이용하는 이들의 행태다. 고작 한다는 얘기가 ‘같은 식구끼리 너무한 것 아니냐’는 논리인데, 그럼 검사라고 특별 대우해야 한다는 말인지 되묻고 싶다. 검찰이 전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됐던 이유가 바로 ‘제 식구 감싸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벌써 잊었는지 의문이다. 변 검사의 선택은 너무나 안타깝고 불행한 일이지만, 국정원이 법을 준수하는지 지켜보라고 파견한 검사가, 오히려 국정원의 불법행위를 수사하는 검찰을 속이고 따돌리는 불법행위에 앞장섰는데 그걸 봐주란 말인가.


보수세력이 여전히 잘 모르는 게 하나 더 있다. ‘박근혜 탄핵 촛불’ 이전의 대한민국과 이후의 대한민국은 거의 다른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점이다. 보수세력이 집권을 위해 불법과 탈법을 동원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그런 무리수를 동원해 지켜야 할 정권이 고작 박근혜 정권 수준이라면 더이상 지지하지 않겠다는 보수층이 생겨난 것이다. 촛불집회의 성격에 대해 여러 분석이 있었지만, ‘이게 나라냐’는 물음에는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고 지키려는 보수적 가치가 담겨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보수의 토양이 바뀐 것이다. 적폐청산을 지지하는 국민이 여전히 3분의 2나 되는 건 적지 않은 보수층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골방에서 정신승리에 열중하는 한 자칭 ‘보수’의 미래는 암담할 수밖에 없다.

< 이재성 - 한겨레신문 사회에디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