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달이었습니다. 개신교 신앙은 마틴 루터의 성경번역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종교개혁가들은 교회의 전통이나 의식이나 교황의 말이 신앙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되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신앙의 전통이 되어야 한다고 선언했습니다. 말씀을 붙잡고 씨름하고 공부하고 질문하는 사람이 개신교인입니다. 말씀을 읽을 때는 성령의 도움도 받아야 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성의 도움도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읽고 해석하고 묵상해야 맹목적인 신앙인이 아니라 성숙한 신앙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함석헌 선생님도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유명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말씀을 읽고 공부하고 기도하고 묵상하고 생각하고 질문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을 때는 역사와 함께 읽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경을 잘못되게 적용하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구약성경 여호수아를 읽으면 히브리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원주민들을 다 죽이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학자들은 히브리 백성들이 가나안 산악지대로 이주했다고 추측합니다. 하지만 여호수아서는 히브리 백성들이 가나안의 모든 생명들을 다 죽이고 그 땅을 차지한 것처럼 설명했습니다. 이런 말씀을 읽을 때는 여호수아서가 이스라엘 민족주의 관점에서 쓰여졌다는 것을 알고 읽어야 합니다. 인류 역사를 보면 여호수아서와 같은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유럽 개척자들이 북미에 도착해서 원주민들을 다 죽였는데, 그들은 여호수아서를 읽으면서 여호수아가 가나안 원주민들을 다 죽인 것처럼 자신들도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다 죽여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구약성경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를 읽으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히브리 백성들이 페르시아 제국이 들어서고 난 후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와서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면서 이스라엘을 다시 일으키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보니 고향에 사는 유대인 남자들이 다른 나라 부인들하고 결혼해서 살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칙령을 발표해서 민족을 다시 일으키려면 피가 섞이면 안 되니까 유대인 남편들에게 이방 부인들과 헤어지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강제로 가족을 해체시키고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을 쫓아내는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다른 민족 사람과 결혼했다면 그 사람을 나의 가족으로 여기면서 함께 살아야 합니다. 이런 말씀을 문자 그대로 적용하려고 하면 우리들도 배타주의/국수주의/민족우월주의에 빠질 수 있습니다. 또 요한복음에는 정통 유대인들을 저주하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유대인들을 가리켜서 “너희들은 악마의 자식이라” 고 표현을 했습니다. 당시 요한교회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유대회당에서 쫓겨났기 때문에 정통 유대인들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예수님도 유대인이고 제자들도 유대인입니다. 유대인이 예수님을 죽인 것이 아니라 부패하고 타락한 정치/종교 권력자들이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요한복음의 이런 말씀들이 인종차별/반유대주의의 근거가 되어서 히틀러 같은 사람은 유대인들을 수백만 명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는 반드시 역사와 상황과 배경을 알고 읽어야 합니다. 성령의 감동과 이성의 도움과 역사의 배경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성경말씀을 읽을 때, 우리들은 말씀 속에 숨겨진 깊은 영적인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옛날 신앙의 선배들이 무엇을 고민했는지,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찾고 고백했는지, 그들이 만난 시련은 무엇이었는지, 그들이 그 시련을 어떻게 신앙으로 극복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역사와 함께 읽을 때, 성경의 진리는 더 밝게 빛날 것입니다. 성경말씀의 핵심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성경말씀의 진리가 역사와 함께 우리들에게 전달되어 우리 삶의 빛과 소금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정해빈 목사 - 알파한인연합교회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