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7월 처가쪽 특혜로 첫 수사 대상…수뇌부 연루 밝혀질까 ‘적당수사’ 소문
박영수 특검 11개 혐의 영장, 검찰 특수본 2기 8개혐의 영장 모두 기각

불구속 재판서 우병우 “난 정치 희생양”, 세번째 영장심사서 결정적 진술 나와
국정원 사찰문건 나오면서 ‘외통수’… 혐의 줄었지만 ‘무조건 모르쇠’ 힘들듯

우병우 전 청와대민정수석비서관이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직권남용 혐의에 관한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15일 새벽 구속수감되면서, 검찰과 우 전 수석 사이에 이어졌던 질긴 ‘악연’이 일단락됐다.

검찰 출신으로서 한때 검찰 인사와 수사 등을 주무르며 막강한 ‘실세’로 꼽혔던 그였지만, 지난해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진 뒤 검찰에 우 전 수석은 뼈아픈 존재가 됐다. ‘법꾸라지’라는 별명이 회자될 정도로 우 전 수석은 번번이 검찰 수사를 빠져나갔다. 지난해 우 전 수석이 팔짱을 낀 채 조사받는 사진이 보도되고, 검찰 수사가 한창 진행될 때 우 전 수석이 당시 김수남 검찰총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 등과 통화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검찰에 대한 신뢰는 곤두박질쳤다.

그 사이 검찰 수뇌부가 모두 교체되고 새 수사팀의 거듭된 추가 수사 끝에 결국 우 전 수석이 구속되면서, 검찰은 그동안 제기됐던 ‘부실 수사, 봐주기 수사’ 논란을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잇따른 구속영장 기각으로 주춤했던 수사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예고됐던 두 번의 수사 실패


우 전 수석이 첫 수사 대상에 오른 건 지난해 7월 처가의 넥슨 부동산 특혜매매 의혹이 보도되면서다. 지난해 8월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의 수사의뢰로 검찰 특별수사팀(팀장 윤갑근)이 꾸려졌지만, 수사는 지지부진했다. 우 전 수석의 자택은 물론 휴대전화와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조차 이뤄지지 않았고, 의경인 아들이 좋은 보직을 받을 수 있도록 경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불거졌지만 수사가 끝날 때까지 통화내역조차 조회하지 않았다. 당시 검찰 안팎에선 수뇌부가 우 전 수석과 긴밀히 연결된 게 드러날까 봐 검찰이 압수수색을 꺼렸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었다.

잘못 끼운 첫 단추는 이후 우 전 수석 수사 때마다 ‘발목’을 잡았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꾸려진 뒤에도 우 전 수석 수사를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했고, 일부 검사들의 의지로 수사에 착수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당시 특검은 미르·케이스포츠재단의 불법을 알고도 묵인한 혐의(직무유기)와 가족기업 정강의 불법 행위를 감찰한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을 해임시킨 혐의(특별감찰관법 위반) 등 11개 범죄사실을 적용해 그의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지난 2월22일 이를 기각했다. 이후 특검에서 자료를 넘겨받은 검찰 특수본 2기가 다시 8개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올해 4월12일 이마저도 기각됐다. 우 전 수석은 국정농단 수사의 큰 벽으로 자리잡았다.


이번에는 혐의 부인 힘들 듯

결국 검찰은 영장이 기각된 지 닷새 만에 우 전 수석을 불구속 기소하며 재판에 넘겼다. 우 전 수석은 재판에서 관련 혐의를 줄곧 부인하고 있다. 지난 6월 열린 첫 재판에서 자신을 ‘정치적 희생양’이라고 주장하며 “제 공소사실은 역대 모든 민정수석 및 민정비서관들이 해오던 일”이라며 관련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우 전 수석이 예전과 같은 전면 부인 전략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우 전 수석은 지난 14일 열린 세 번째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예상치 못한 핵심 측근들의 ‘결정적 진술’에 크게 당황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우 전 수석의 불법사찰 지시가 담긴 국정원 문건이 확보되면서, 무작정 부인으로 일관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번엔 자신을 감찰하던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의 개인 성향은 물론 감찰반 감찰 방향까지 사찰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민정수석의 업무”라던 우 전 수석의 기존 주장도 설득력을 잃게 됐다.

박근혜 정부에서 ‘왕수석’으로 통했던 그는 2009년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 수사 때 대검 중수1과장으로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직접 조사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2013년 4월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하자 검찰을 떠났다가, 2014년 5월 청와대 민정비서관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우 전 수석은 세월호 침몰 사고와 정윤회 문건 유출 등 정부에 불리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이를 잘 대처한 공을 인정받아 이듬해 2월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승진’했다.

승승장구하던 그는 지난해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진 이후 정치권과 여론의 사퇴 압박을 받았지만 버티기로 일관했고, 당시 민정수석으로서 청와대의 ‘모르쇠’ 대응을 주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보수 몰락에 그가 끼친 영향이 결코 작지 않다는 평가도 있다.

< 서영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