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놀랐다. 리영희 교수 책 제목을 자유한국당에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1월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박성중 홍보본부장은 “새는 좌우 날개가 균형점이 맞아야 오래 날 수 있다. 정치도 좌파와 우파가 균형되어야 한다. 너무 좌파로 기울어진 나라는 미래가 없다”고 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리영희 교수가 1994년에 내놓은 평론집 제목이다. ‘전환시대의 논리―그 후’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머리말에 이런 글이 나온다. “나는 좌·우의 어떤 정치·이데올로기적 권력이건 진실을 은폐·날조·왜곡하려는 흉계에 대항해서 진실을 찾아내고, 그것을 바른 모습대로 세상에 밝혀내는 것을 글 쓰는 목적으로 삼고 일관하였다. 광적인 반공·냉전·전쟁애호·반통일 세력이 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던 시기에 특히 그러했다.”


박성중 홍보본부장의 좌우 균형 논리는 리영희 교수의 인식을 정반대로 뒤집은 것이다. 대한민국의 현재 상황을 ‘좌파 과잉’으로 보고 있다. 홍준표 대표가 주장하는 ‘좌파 광풍’의 연장이다. ‘좌파 광풍’은 2017년 2월 홍준표 경남지사가 기자간담회에서 처음 말했다. “지금은 탄핵 국면 속의 좌파 광풍 시대다. 우파가 맘 둘 곳이 없다. 남미와 유럽 등 세계 좌파는 다 몰락했고, 우리를 둘러싼 미국·러시아·일본·중국은 모두 국수주의자다. 이런 세계적 흐름 속에 한국에서 좌파 정권이 탄생하면 한국이 살 수 있겠는가. 나는 안희정 충남지사가 주사파로부터 전향했다는 얘기를 못 들었다.”
홍준표 대표는 자신이 국적법, 반값아파트 등 좌파 정책을 쓴 일이 있다고 하면서도 자신을 좌파라고 하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이 남북대화를 지지하고 김정은 위원장과 통화할 수도 있다고 말해도 트럼프 대통령을 좌파라고 하지 않는다. 좌파라는 단어의 역사적 정치적 함의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에는 좌파 딱지를 서슴없이 붙인다. 장제원 자유한국당 수석대변인은 “문재인 정권은 아마도 대한민국을 사회주의 국가로 만드는 것이 5년 임기 동안의 목표인가 보다”라고 했다.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 초안을 ‘헌법도 좌향좌’로 보도한 <조선일보> 기사에 대한 논평이다. 왜들 이러는 것일까?


색깔론은 분단체제에 편승해 집권한 친일 독재 기득권 세력의 오래된 무기다. 이승만 정권은 통치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야당 의원들을 남로당 프락치나 국제공산당으로 몰았다. 1958년 진보당 사건을 조작해 조봉암 당수를 사형시켰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전두환 정권도 부실한 정통성을 메우려고 ‘빨갱이 사냥’을 일삼았다. 박정희 정권은 재일 유학생과 납북 어부들을 간첩으로 조작했다. 1974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조작해 1975년 4월9일 8명을 사형시켰다. 전두환 정권은 아예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을 발판으로 출범했다. 민주화운동 하는 사람들을 간첩으로 엮었다.
지난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은 좌파-우파, 보수-진보라는 이념이나 노선 갈등과 관련이 없었다. 대통령 자격이 없는 사람을 헌법이 정한 민주적 절차에 따라 쫓아냈다. 대통령 궐위에 의한 조기 대선에서 후임 대통령을 선출했다. 촛불집회에 참석하고 대선 투표장에서 유권자의 권리를 행사한 사람들은 좌파도 우파도 아니었다. 그냥 대한민국 국민이었다.


“좌파는커녕 중도에도 미치지 못하는 한국의 중도우파 노선 정치세력이 극우세력으로부터 종북좌파로 몰리는 건, 한국만의 후진적 정치 현실일 뿐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3년 12월 <1219 끝이 시작이다>라는 책에 쓴 대목이다. 현실 정치를 살펴보면 실제로 그렇다. 지금 진보 정당은 정의당과 민중당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중도쯤 되는 정당이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를 좌파나 진보로 몰아붙이는 집단이나 세력은 어떤 사람들일까? 독재에 법통이 닿아 있는 정당이다. 친일파의 후손이다. 이유가 뭘까? 독재와 친일의 피를 물타기 하기 위해서다. 아무나 멱살을 붙잡고 “이 새끼 너 빨갱이지”라고 흔들던 그 못된 버릇이 남아 있는 것이다. 하긴 오른쪽 끝에 서 있으면 세상이 온통 좌파로 보인다.

< 성한용 - 한겨레신문 정치팀 선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