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비주의자인 에크하르트(Meister J. Eckhart)는 “태양은 하늘의 눈이고 꽃은 땅 위의 태양이다. 꽃이 태양을 볼 때 사실은 태양이 태양을 보는 것이고 눈이 눈을 보는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참 재미있는 말이다. 공자 같은 분도 사람을 나무에 핀 꽃이라 했다. 이런 말을 들으면 하나님이 내 안에 있고 내가 하나님 안에 있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조금 짐작이 간다.
세상의 모든 초목은 태양을 향해 줄기를 뻗어 간다. 그것을 향일성(向日性)이라 하는데 기독교로 말하면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해 주셨으므로 인간은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 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제일 보고싶어 한다. 그런데 하나님을 보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그건 ‘나’라고 하는 풀에 꽃을 피우는 것이다. 나라고 하는 풀에 꽃을 피울 때만 꽃과 하늘의 태양이 마주보게 된다.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나라고 하는 풀에 꽃을 피우는 것이다. 예수라는 풀에 그리스도라는 꽃이 피었다. ‘내가 내가 된다’라는 뜻은 무슨 말인가? 나라고 하는 풀에 그리스도라는 꽃을 피우는 것이다. 결국 믿음이라는 것은 나라고 하는 풀에 꽃을 피운다는 것이다. 히브리서11장1절에 “믿음이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지못하는 것의 증거다”라고 했다. 바라는 것의 실상이 태양이라면 보지못하는 것의 증거는 꽃이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나라고 하는 풀에 꽃을 피울 수 있을까? 옛날부터 이 문제에 대해 많이 연구했다. 어떤 사람이 성 프란시스에게 가서 물었다. “선생님, 암만해도 내 속에는 믿음이 없는데 어떻게 하면 믿음이 생깁니까?” 그랬더니 성 프란스시는 옆에 있는 도끼로 나무를 절반 딱 쪼개더니 “이 나무 속에 꽃이 있느냐?”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선생님, 그 나무 속에는 꽃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성 프란시스는 그에게 “꽃을 나무 속에서 찾지 말라”고 말했다. 우리는 자칫 내 속에서 믿음을 찾으려고 한다. 아무리 뒤져보아도 내 속에는 믿음이 없다. 저 사람은 교회에 잘 다니고 봉사 잘하니까 믿음이 있겠지? 라고 생각을 한다. 그러나 내 속에도 저 사람 속에도 믿음은 없다. 꽃은 내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봄이 오면 꽂이 핀다. 즉 태양을 만나면 꽃이 핀다. 내 속에 꽃이 있는 것이 아니라 봄이 되어야 꽃이 피는 것이다. 봄이 된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태양을 만난다는 뜻이다. 기독교로 말하면 그리스도를 만난다는 말이다. 그리스도를 만나면 거기에 믿음의 꽃이 피어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믿음이 있어야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으로 생각하는 데 그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만나면 믿음의 꽃이 피어나게 된다.


기독교의 죽음은 더 큰 일을 하기 위해 가는 것, 그것이 죽음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내가 이제 곧 영광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하신 그 말씀은 내가 이제 십자가에서 못 박혀 피를 흘릴 때 위대한 꽃을 피울 것이라는 뜻이다. 우리도 이와 같이 삶 속에 그리스도란 꽃을 피워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복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 정태환 목사 - 한인은퇴목사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