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전쟁 말기에 일본군이 ‘조선인 위안부’를 집단학살한 장면이 담긴 충격적인 영상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27일 열린 ‘한·중·일 일본군 위안부 국제콘퍼런스’에서 공개된 19초 분량의 흑백영상은 1944년 중국 윈난성 텅충에서 패주하는 일본군에게 위안부들이 총살당한 뒤 버려진 참혹한 모습을 담고 있다. 영상은 당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인 미·중 연합군이 촬영했다고 한다. 이런 영상을 앞에 두고도 일본은 계속 ‘위안부 책임’을 회피할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일본군이 ‘위안부’들을 성적인 도구로 사용하다 학살했다는 증언과 보고는 다수 있었지만 관련 물증은 충분히 확보되지 못했다. 이번 영상을 발굴한 서울대 인권센터 정진성 교수 연구팀은 2016년 위안부 학살 현장 사진를 찾아낸 뒤 발굴 작업을 계속해 사진 속 주검과 옷차림이 똑같은 여성들의 학살 영상을 찾아냈다고 한다. 미·중 연합군 기록 문서에는 “(1944년 9월13일 밤) 일본군이 조선인 여성 30명을 총살했다”는 내용도 들어 있어 이 영상을 뒷받침한다. 영상이 공개된 이상, 이제 일본 정부가 답해야 한다.


일본 정부는 위안부 학살은 말할 것도 없고 위안부 강제동원조차 부인하다가 관련 증거가 나오면 마지못해 사과하는 수준에서 사태를 무마하려 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12·28 위안부 합의’ 때도 형식적인 사과와 면피성 태도로 일관했다. 지난해 말 문재인 정부가 ‘12·28 합의 검토 결과’를 발표해 합의 내용과 과정의 문제점을 밝혀낸 뒤에도 일본 정부는 ‘전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우리 정부에 오히려 합의를 지키라고 윽박질렀다. 이런 적반하장식 태도는 지난 26일 강경화 외교장관이 유엔인권이사회 연설에서 12·28 합의에 ‘피해자 중심적 접근이 결여됐다’고 밝혔을 때도 그대로 되풀이됐다.


위안부 문제는 외교 문제이기 이전에 인류 보편의 인권 문제다. 전쟁범죄의 책임을 묻는 일은 소멸 시효가 없으며, 국가 간의 적당한 정치적 타협으로 끝날 수도 없다. 일본 정부가 진솔하게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공식적인 사죄와 함께 배상을 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올바른 시작이다. 그러지 않는 한 위안부 문제는 가해국 일본의 멍에로 남을 뿐이다. 충격적인 학살 영상까지 드러난 마당에 일본 정부는 이제라도 태도를 바꿔 인류 양심의 목소리에 응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