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어느 정당의 회의실 뒷 벽면에 ‘정신 차리자, 한 순간 훅 간다’는 문구가 등장한 적이 있다. 얼마 후 선거에서 참패하면서 써 붙인 그대로 되었으니, 적중한 ‘백보드의 명 예언’으로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그 정도는 ‘약과’였던 것이, 미투 운동이 활발한 요즘 ‘한 순간 훅 간다’는 말을 새삼 실감하고 있어서다.
차기 대통령 후보군으로 촉망받던 인물이 절제를 못한 ‘욕망의 덫’에 걸려 그야말로 하루 아침에 날아갔다. 서울시장을 하겠다고 의기충천하던 한 인물은 7년 전의 ‘입맞춤 미수사건’으로 졸지에 ‘자연인’이 되어버렸다. 학생들에게 ‘제왕같은’ 존재였다는 잘 나가던 연예인 교수는 돌연 목숨을 끊어버렸고, 평생을 조연에 머물다 ‘근검한’ 일상이 알려진 덕에 겨우 주연급 반열을 넘보게 된 한 방송인은 10년 전의 추행 한 건에 치명타를 먹고 갑자기 조연조차 못하게 되어 동정을 사기도 한다.

‘급전직하’의 반전은 ‘미투’에서만 보고 느끼는 게 아니다. 겨우 석달 만에 한반도는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급변의 소용돌이를 연출하고 있다. 폐쇄와 은둔의 왕국, ‘벼랑 끝 전술’로 생존을 담보하던 북녘의 돌변은 비단 남북간 소통뿐 아니라 미국과 마주앉게 되고, 중국을 전격 방문해 놀라게 했다. 부인을 동반한 북의 지도자가 언제 국제무대에 등장한 적이 있던가, 현란하고 요염한 걸그룹의 공연을 보고 싶었다며 그들과 손을 맞잡고 사진도 찍는 모습과, 취재 방해를 정중히 ‘사죄’하는 전례없는 일까지, 달라진 저들의 파격은 언제 핵무기와 유도탄으로 위협하던 때가 있었나 가물가물할 지경이다.
사람들 뇌리에 ‘한방에 훅 간다’ 혹은 ‘전혀 예상못한 급변사태’ 라는 느낌으로 와닿는 이들 현상은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미투운동이나 첨예한 대결구도였던 북핵문제 등 비상한 관심을 끄는 사안들이어서 더욱 강렬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런 돌연변이적 현상은 우리들 일상 도처에 널려있고, 쉴 새 없이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기도 하다. ‘밤새 안녕’이라는 말이 공연히 생겨난 조어인가. 지난 밤 건강한 모습으로 잠자리에 든 사람이 아침에 일어나 보니 저세상으로 가버린 충격적 경우의 수는 결코 제로가 아니다. 예고를 하고 찾아오는 지진은 없다. 느닷없는 천재지변으로 빈털터리가 되고 목숨까지 잃는 사례가 드문 일은 아니다.

내일 일을 미리 아는 사람은 없다. 아니 몇 분 몇 초 후의 일도 잘 모르는 게 우리들 인간이다. 갑자기 졸도하기도 하고, 화장실을 달려갈 일도 생기고,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화재로 폭망하는가 하면, 주식 폭락으로 패가망신하는 일도 있다… 생각해 보면 ‘날벼락’ 같은 일들은 ‘미투 돌풍’ 같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어도 항상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들 사람이란 얼마나 나약하고 허망한 존재들인가. 전혀 알지 못하고 대비도 할 수 없는 눈 깜짝할 사이에 인생이 180도 달라질 수도 있고, 낭떠러지를 구를 수가 있고, 저세상으로 건너갈 수도 있다. 물론 거꾸로 추락만이 아니라 급상승하는 벼락출세나 횡재의 인생역전이 찾아오기도 한다지만.
성경에도 ‘한 순간에 훅 간’ 사례가 등장한다. 구약 에스더서의 하만이라는 인물의 이야기다. 그는 권력도 재물도 감히 대항할 자가 없는 글자그대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총리대신이었다. 왕권을 넘볼 정도로 등등한 권세에 자만한 나머지 그는 왕을 살린 숨은 공신인 줄도 모르고 왕후 에스더의 인척인 모르드개를 매달고 유대인을 말살하려는 무리수를 꾀한다. 그의 교만과 이기심, 안하무인의 악행은 에스더를 통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순식간에 급반전, 다음 날 모르드개를 매달려고 준비한 나무에 오히려 자신이 매달려 죽는 비참한 멸족의 참화를 당한다.

하만의 일화에서 떠올리는 반전도 요사이 빈번한 ‘한 방에 가는’ 사례들에서 느끼는 공통의 인생무상과 허욕의 결말이다. 너도나도 성공에 목을 매달고 출세하겠다며 발버둥치는 세태, 남 보다 위에 앉으려 깔아뭉개고, 더 갖고 더 벌고 더 즐기려고 기를 쓰며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욕망과 가식과 이기의 끝은 어디인가. 한 순간 하루 아침에 안개처럼 사라질 수 있는 인생들임을 잊은 채… 그렇다고 기 죽어 무기력하게 요행수만 바라며 살 일도 아닐 터인즉, 공연히 과욕을 부리거나 허세를 좇지 않고 언제든 호사다마(好事多魔)에 청천벽력도 있다는 심적 여유와 평상심(平常心), 그리고 비움의 각오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저 바르고 겸허하게 늘 삼가며 안분지족(安分知足)을 받아들이는 삶의 지혜가 절실한 것 같다.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