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봄날 맞은 정상회담들

♠ 칼럼 & 시론 2018.04.24 04:11 Posted by SisaHan

북한이 남성의 머리는 일정한 길이를 초과해선 안 된다는 지시를 내린 게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심지어 북한 텔레비전은 2005년 ‘사회주의 생활양식에 따라 머리를 자르자’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을 방영하기도 했다. 일부 외국인들에게 이런 것들은 전체주의 정권이 개인 삶의 세부사항까지 통제를 확대하려는 증거들로 보일 뿐이었다.
그러나 당시 이 지시에는 매우 구체적인 목적이 있었다. 한국이나 중국에서 밀수입된 영화와 음악은 북한 젊은이들 사이에서 은밀히 인기를 얻고 있었고, 이들은 남한의 패션을 모방하기 위해 머리를 더 길게 기르고 있었다. 북한은 이런 소리없는 영향에 대해 걱정했다.
김정은 노동당 중앙위원장이 이달 초 평양에서 공연한 남쪽 예술단과 함께 찍은 사진과 당시의 머리 길이 지시를 비교해보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우리 인민들이 남쪽의 대중예술에 대한 이해를 깊이하고 진심으로 환호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벅차고 감동을 금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많은 것은 북한 젊은 지도자에게 달려 있다. 김정은은 한반도 현상유지 상태를 흔들기 위해 세가지 방향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불편한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베이징으로 첫 해외순방을 했다. 이달 말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첫 남북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다. 그리고 이후엔 불가능할 것 같았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도 마주앉을 예정이다.
북한 지도자는 왜 갑자기 외교에 관심을 갖게 됐을까? 트럼프와 워싱턴의 강경파들은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경제제재와 다른 조처들을 통해 김정은의 팔을 더욱 강하게 비틀면서 그가 비명을 지르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김정은의 가장 핵심적인 반전 이유들은 북한 내부 상황과 관련이 있다. 우선, 제재로 북한 경제가 무릎을 꿇은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쌀과 옥수수 등 생필품 가격은 안정적이며 평양은 건설 붐이 일어나고 있고, 2016년 경제는 4% 가까이 성장했다.


김정은은 미국의 봉쇄정책에 굴복하기보다는 유리한 위치에서 협상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이라고 자신있게 주장할 만큼 핵프로그램을 고도화시켜왔다. 또한 김정은은 국내의 잠재적인 정적들을 모두 제거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그는 고모부인 장성택 등을 포함해 관리들을 가차없이 숙청했다. 분명히 젊은 지도자는 국내 기반이 약화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지지 않고도 해외에서 협상을 할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현재 ‘정상회담의 봄’은 문재인 대통령의 분투가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청와대에 보수적인 지도자가 있었다면 1월 초 북한의 제안에 적극적으로 화답하지 않았을 것이다.
김정은은 미국 외교정책을 자신만이 이끌 수 있다고 믿고 있는 미국 대통령과 대면함으로써 이득을 볼 수 있다. 적어도 잠시 동안 트럼프는 북한과의 전쟁을 선호하는 외교정책 참모들을 무시하기로 결정했다. 트럼프는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에 동의하는 것 자체가 선전전에서 이미 북한에 승리를 안겨준 것이라는 외교정책 엘리트 집단의 공감대도 거부하고 있다. 트럼프의 예측 불가능성, 그리고 워싱턴의 전문가층이 좋아하지 않는 입장도 취할 수 있다는 그의 의지는 돌파구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북-미 정상회담이 현실화되지 않거나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해도 다가오는 남북 정상회담은 현재의 모멘텀을 기반으로 논의될 것이다. 문 대통령은 중재자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북-미 간 포괄적인 데탕트의 한 부분인 비핵화를 위한 올바른 방식을 찾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남북간 실질적인 경제교류는 미국의 제재 축소에 달려 있다. 그러나 남북간 문화교류 확대나 추가적인 군사적 긴장 완화, 이산가족 상봉 같은 공동사업들은 진행할 수 있다. 현재 한반도 안팎에서 일어나고 있는 외교환경 변화는 아직 단단하지는 않지만 조짐이 좋다.

< 존 페퍼 -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