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에 한 일본 외신기자를 만났다. 그는 올해 지방선거의 의미를 일본 독자들이 알기 쉽게 설명해 달라고 했다. 탄핵이나 대선, 개헌과 남북정상회담 이슈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지방’ 수준의 선거에 대한 관심이 적다고도 덧붙였다. 나는 이렇게 답했다. “일본 정치로 생각하면, 자민당이 정치 무대에서 사라지는 계기가 될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단순한 지방선거는 아니지요?”


<한겨레>라는 지면을 통해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이것을 무슨 바람 정도로 고깝게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진보가 역사를 발전시킨다면, 보수는 정치의 수준을 결정한다. 나는 진심으로 경쟁 없는 정치는 언제나 위험하며, 진보와 보수가 적절한 균형을 이루는 것이 정치의 발전과 국민의 삶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도 여기서 예외가 아니다.
4·27 정상회담에서 남북은 상호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단하기로 합의했다. 이것은 한반도에서 ‘냉전의 종식’을 의미한다. 세계적 시간대에서 냉전은 한 세대 전에 사라졌지만, 한반도에서는 그것이 지연되었다. 이 기이한 지체 현상이 가능했던 이유는 국제적, 국내적으로 그것을 바라는 정치 세력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환경이 변화했다.
국제적으로 미국과 중국은 패권적 대립보다는 상호 간의 경제적 이익을 유지하면서 자국의 문제를 선결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정세적으로 보면 미국은 시리아 전쟁이 보여주듯 복잡하게 얽힌 중동 문제의 해결과 러시아의 팽창에 버거워하고 있고, 중국은 심각한 불평등을 완화하고 소강사회를 이룩함으로써 중국몽으로 나아가는 초석을 마련하는 것을 우선으로 삼고 있다. 두 나라 다 한반도의 긴장이 높아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국내적으로는 국민의 시선이 변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포용정책은 전례가 없었다는 점에서 남남갈등을 유발하기도 했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이제는 상대를 옥죄기만 해서는 위기가 해소되지 않는다는 데에 많은 국민이 공감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세계사적 시간대와 한반도의 시간대가 매우 근접하게 되었다. 세계사적으로 한 세대 전에 종식된 냉전이 이제 드디어 한반도에서도 종료되려는 순간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남북의 표준시를 하나로 맞추겠다고 한 것은 이러한 변화의 상징처럼 보인다.
단 하나의 정치 세력만이 이러한 변화에 저항하고 있다. 비핵화 로드맵이 없기 때문에 위장평화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신념의 표현이 아니라 정치적 발언이라 문제가 된다. 남북이 비핵화를 합의하고 선언했다면, 로드맵은 북-미 정상회담의 의제라는 것을 보통의 시민들도 안다. 게다가 북-미 회담 일정이 지방선거 이후가 아니라 5월 말이다. 그때는 트럼프마저 김정은이 써준 대로 받아 적었다고 할 것인가?


지방선거는 원래 집권 세력에 대한 중간평가의 의미가 크고, 남북 간 이슈가 지방선거에 영향을 준 예가 드물다. 그런 점에서 홍준표 대표는 불필요한 정치적 승부수를 걸었다. 정상회담의 성과를 인정하되 확실한 북핵 폐기를 강조하는 것이 좋았다. ‘잘한 것은 잘했다고 해야지. 우리는 못한 것을 비판하는 거예요.’ 이편이 시원시원한 성격의 홍 대표에게도 어울리고, 보수도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나라를 통째로 넘긴 것은 박근혜가 최순실에게 한 일이고, 국민들의 뇌리에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자유한국당은 제대로 사과한 적이 없다. 후보들이 선거 구호를 감추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홍 대표는 보수를 통째로 넘길 셈인가?

< 김관후 - 서강대 글로컬 정치-사상연구소 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