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뿌린대로 거두는 경기

● 칼럼 2018. 7. 11. 14:47 Posted by SisaHan

러시아 월드컵에서 한국대표팀은 16강에 오르지 못하고 일찌감치 보따리를 쌌다. 세계랭킹 1위 독일을 격파하는 역사적 이변을 연출해 전세계 축구팬의 환호를 샀지만 귀국인사를 하던 공항 레드카펫에는 계란이 날아들고 베개가 여럿 던져졌다.
물론 세계랭킹 57위가 1위를 무너뜨린 독일전의 통쾌한 반란에 찬사를 보내고 투혼을 높이 사며 잘 싸웠다고 격려하는 소리가 훨씬 많았다. 앞선 두 경기의 졸전과 16강 불발이 아쉽기는 해도 나름 유종의 미는 거뒀다는 위안과 카타르시스의 너그러움이었을 것이다.


지난 호 시사 한겨레 1면에는 월드컵 소식을 전하면서 ‘몸값으로 치면…월드컵 무대도 과분’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발행 다음 날 예정된 한국 대표팀의 독일과 16강 최종전 결과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한국팀의 ‘패배에도 불구한 선전’을 예측한 기사였다. 당시는 한국이 독일을 이길 확률은 1%인 반면 독일이 한국을 7대0으로 이길 확률이 더 높다는 그럴 듯한 ‘예언’이 나돌 정도였다. ‘어떻게 세계 1위 독일을?’이라는 패색이 짙었기에, 한국팀이 ‘예상대로’ 패해도 ‘한국팀 23명 전체 몸값이 독일 선수 1명 몸값과 같기에’ 그들과 대적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 아니냐는 위안과 변명의 재료를 제공하는 의도가 없지는 않았다.
그런데 99%의 예상을 깨고 골리앗을 제압했으니, 앞선 경기들의 실망을 날려버린 것이다. 비록 계란이 날아들긴 했어도, 한국팀은 역시 기죽지 않는 전통의 ‘깡 축구’로 더 큰 비판을 막아낸 셈이 됐다.


하지만, 그럼에도 많은 축구팬들은 허전하고 찜찜하다. “왜 한국축구는 항상 16강 문턱에서 좌절하나?”. “개인기가 왜 그렇게 시원찮나?”, “매번 경우의 수를 따지는 대진운의 소설을 언제까지 써야 하나?”… ‘희망고문’이니 ‘월드컵 스트레스’라는 ‘축구 후진국병’을 앓아야 하느냐는 원성이 터진다. 평소 축구장은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월드컵이나 국가대항전만 있으면 엄청난 민족주의로 무장해 승패에 격하게 반응한다는, 늘상 나오는 비판은 여전히 들은 체 만 체다. 그럴 때마다 생각나는 말이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격언이다. 성경구절에도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갈 6:7)는 경종의 말씀이 있다.


실제 따지고 보면 ‘월드컵 무대도 과분’하다는 말이 맞을 수밖에 없다. 팀 전체 23명의 몸값이 독일 선수 1명분과 맞먹는다는 비유는 한국축구의 현실과 꿈의 괴리를 실감나게 증명해 주고도 남는다. 투자도 여건도, 그간 쏟아부은 정력도 미미한데 어떻게 엄청난 성원과 땀을 흘린 팀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으며, 승리를 기대할 수가 있겠는가 하는 말이다. 그렇다고 선수들과 감독·코치진이 한가하게 놀기만 했다거나 필승노력을 게을리 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가령 감독과 선수를 능력이나 기량보다 연줄로 선정하는 졸속행정과 전략부재를 질타하는 말이고, 일본이나 중국의 프로리그에 비해 현저히 뒤지는 K리그 흥행현실 등을 보며, 평소의 ‘관심과 투자’가 부족하다는 지적인 것이다. 그런데 무조건 이기기를 바라고 16강에 못갔다고 한탄하는 것은, 그저 팥을 심고는 콩을 기다리는 격이요,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려는(緣木求魚) 모습과 다를 바가 없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다.
8강이 확정된 현재까지의 이번 월드컵 성적과 기량을 보면, 역시 ‘영원한 승자는 없다’는 말과 정상을 지키기 위해서는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를 다시금 일깨워 준다. 독일을 비롯해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아르헨티나 같은 쟁쟁한 팀들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린 것이 그걸 웅변해준다.


아울러 호날두나 메시 등 맥없이 고개 숙인 대형 스타들이 말해주듯 출중한 몇몇 선수만으로 승전고를 울리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역시 끈끈한 팀웍과 세트플레이가 보여주는 훈련된 조직력이 승리의 관건임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고 있다. 축구는 개인전이 아니고 11명이 일사분란하게 포지션을 감당하며 뛸 때 최대의 성과를 내는 경기다. 단체전은 글자 그대로 단체라는 정체성에 충실할 때 이길 수 있음을 일깨운다.
계제에 우리들 삶에 주는 성경의 훈계 몇 구절을 더해본다.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눅 6:38) 라고 했고, 고린도후서 9장 6절에서는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라고 명확하게 규정했다. 그리고 시편(126: 5~6)에서는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라고 깨우쳤다.

< 김종천 발행인 겸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