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서울대 교수가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과 대선 가상대결에서 박 의원을 앞서는 여론조사 결과들이 나왔다. 또 안철수-박원순 단일화 이후 안 교수 지지층의 움직임이 궁금했는데 새로운 여론조사 보도를 보면 박 변호사로 옮겨가는 효과가 꽤 나타나고 있다. ‘안철수 바람’에 깃든 시민들의 여망이 무엇인지를 정치권이 제대로 살피는 게 더욱 긴요해지고 있다.
시민들이 안철수 바람을 통해 정치권의 철저한 각성과 변화를 주문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특히 안 교수가 보여준 공익에 대한 헌신적 자세와 희생정신, 겸손함 등을 시민들이 높이 평가하고 있음도 의심할 나위가 없다. 이런 터에 대변인 등 한나라당 일부에선 안철수-박원순 단일화를 강남좌파의 야합쇼라고 깎아내리고 나섰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원인을 제공한 책임을 인정하고 자숙해도 부족한 마당에 이해하기 어려운 태도다.
야3당과 시민단체들은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하기 위해 2단계 경선을 한다는 원칙에 합의했다. 야권 각 주체는 후속 논의 과정에서 기득권에 집착하는 태도를 버려야 하며, 시민단체나 작은 정당 쪽도 능력 범위를 넘는 지나친 요구를 해선 안 될 것이다.

아울러 우리 사회에 가뜩이나 깊게 자리잡은 정치불신 정서가 차제에 더욱 증폭되지 않도록 경계할 필요도 있다. 기성 정당들이 제구실에 미흡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날 국정과 시정 난맥상의 원인 제공자인 이명박 대통령과 오세훈 전임 서울시장이 바로 ‘탈정치의 정치’와 ‘탈여의도 지도력’ ‘기업가형 지도력’을 자처했음도 잊어선 안 된다. 정책 개발과 실천을 담보하는 사회적 약속의 틀을 무시하고 인물 위주로만 흘러서는 정치를 제대로 바꾸기 어렵다. 가령 야권의 경우 통합이나 연대의 틀을 세워나가는 노력은 오히려 더욱 필요해졌다.
안철수 바람을 진보-보수의 세력대결 정치에 식상한 결과라거나, 심지어 정당들이 진보 선회(좌클릭)에 열중하다 닭 쫓던 개가 되었다는 일부 보수언론의 해석도 근거 없는 제 논에 물 대기 주장일 뿐이다. 민주당보다도 진보성향이 강한 박 변호사한테 안철수 바람의 상당 부분이 옮겨가는 것만 봐도 이 점은 분명하다. 만약 정치권이 보수언론의 주문처럼 복지 담론 등을 후퇴시킨다면 그것은 대표적으로 ‘안철수 민심’을 거꾸로 읽는 결과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