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에 잠든 고인 15주기‥ 추모 음악감상회 열려

신학 거두·탁월 설교가·찬송 등 작곡도
박재훈 목사 등 고인 기리며 창작곡 감상

“김홍전 박사. 이름은 그렇게 안 났지만 기독교 역사에서 10대 학자를 뽑으라면 이분이 낄 것입니다 그 정도로 대단한 분입니다. 바울 이후로 어거스틴, 칼빈 이렇게 꼽아 나가다보면 김홍전 박사가 낄 것입니다. 이를테면 우리나라에서 내로라 하는 신학자들을 다 제치고 이 분이 낄 정도로 신학세계가 방대하고 웅장한 분입니다.”
합동신학대학원 교수와 개혁주의 성경연구소 이사장을 역임한 강해설교의 대가 박영선 목사(서울 남포교회 원로)가 그의 명저 ‘설교자의 열심’에서 김홍전 목사에 대해 언급한 대목이다.
고 김홍전(金弘全: 1914~2003) 목사는 그의 삶과 업적 만큼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으나, 한국 기독교사에 독보적인 발자취의 거목으로 인정받는 개혁주의 신학자다. 김 목사는 1950년대 한국 교계의 신학사상 노선 혼란기에 개혁주의 신앙 강설을 통해 바른 신학노선 정립에 큰 영향을 끼친 목회자이며 신학박사였고, 철학박사·음악박사이기도 하다. 최근까지 100권이나 되는 그의 강설집은 누적 판매량이 40만권에 달할 정도다.


김 목사는 미국 버지니아 리치몬드 유니온신학교에서 신학석사를 받은 후 1년 만에 이스라엘 히브리대학에서 ‘사해축서’로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시카고 센추럴 컨서버토리에서는 음악박사와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무려 77권에 달하는 저서를 남긴 김 목사가 1982년에 펴낸 ‘찬송’에는 그가 작곡한 133곡의 찬송가와 오라토리오 ‘루디아’도 수록돼 수준높은 음악적 달란트를 보여준다.
그가 여생을 캐나다 토론토에서 보내다 2003년 소천해 Mount Pleasant Cemetery에 잠들어 있는 사실도 모르는 이들이 많다. 그의 유족이 토론토에 살고 있지만, 고인의 품성을 이어받아 드러내 놓고 고인을 알리거나 추모행사를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로교 분열 이후 신앙신조에 따라 독립교회를 섬겨온 데도 기인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런데 15주기(7월5일)를 맞은 올해 비로소 고인을 기리는 뜻깊은 추모행사가 열렸다. 널리 공지하지는 않았어도 지난 14일 오전 11시, 토론토 제일한인장로교회에는 알음알음 입소문으로 모인 목회자들과 성도 등 2백여 명이 모여들었다. 고 김 목사의 사위인 최등영 가정의를 중심으로 은퇴목사회의 정태환 회장과 김용출 목사, 김 목사의 토론토지역‘유일한’후배(유니온 신학교)인 밀알교회 노승환 목사 등이 준비위원회를 꾸려 마련한 ‘김홍전 목사 창작 찬송 음악감상회’가 열린 것이다.
이날 사회를 맡아 진행한 최등영 박사는 “아상(我相)을 버리라는 그 분 뜻을 따라 내세우지 않았지만 이제 알릴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 알리고 추모하는 행사로 조촐하게 준비했는데 이렇게 많이 참석해 주셨다”고 감사를 전했다. 이날 행사에는 거동이 불편한 박재훈 목사(큰빛교회 원로)도 휠체어를 타고 직접 참석해 맨 앞에서 진행을 지켜보며 고인을 추모하고 동영상 연주곡을 모두 감상해 자리를 빛냈다.
박재훈 목사가 예전 ‘김홍전 목사는 한국교회 예배 찬송의 정도를 열어준 분으로 두고두고 기억해야 할 표준적 사도(使道)’라고 평가한 말을 전하기도 한 최 박사는 장인인 김 목사가 특출한 성경신학자였고 탁월한 설교가, 예배찬송에도 업적을 남긴 음악가요 시인이며 작곡가였다고 소개하며. “한국 교회음악의 원로인 박재훈 목사와 ‘우리의 소원’을 작곡한 고 안병원 선생까지 한국 음악계의 3대 거두가 이 곳에 거주했으니, 토론토의 자랑이고 영광”이라고 강조했다.


오라토리오 「루디아」등 창작곡과 육성 영상감상

이날 추모 음악감상회는 김 목사가 29살(1943) 때 시편 1편을 소재로 작곡했다는 ‘복 있는 자’를 미국 LA에서 2017년에 초연한 동영상을 시작으로, 고인의 육성이 남아있는 곡들로 19살 때 괴테의 시를 소재로 작곡해 직접 피아노를 치며 부른 ‘길손의 밤’과 시편 125편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는’,‘Last Night’ 등과 히브리어로 부른 노래도 육성녹음으로 들려주었다.’후일에 생명 그칠 때’찬송은 고인의 음성을 들으며 테너 유인 장로와 함께 3~4절을 참석자들이 합창했다.
이어 후반부에는 1943~44년에 작곡한 오라토리오 ‘루디아’전곡을 2016년 12월3일 LA 사랑의 교회가 창립 10주년 기념음악회로 초연한 연주회 영상이 그대로 감동을 전하며 큰 박수 속에 상영됐다. ‘루디아’는 구약 룻기를 배경으로 지은 작품으로, 김 목사가 룻을 한국적으로 표현해 루디아로 명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보잘 것 없는 과부 나오미와 두 며느리 오르바와 루디아의 이야기를 통해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선택하는 여인의 믿음이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는 영예로 이어지며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이루는 내용을 작품화했다. 이 곡은 특히 암울했던 일제치하 온 민족이 수탈에 고통당하던 때 신사참배와 창씨개명을 거부하며 사촌 형인 독립투사 김인전 목사(상해임정 의정원 의장)의 영향 등으로 고난 중에 작곡한 곡이어서 작품의 의미가 각별하다는 평가다.


이날 음악회 참석자들은 영상을 통한 연주로 2시간을 훌쩍 넘겼음에도 진지하게 감상하며 실 연주에 못지않은 감동과 은혜를 나눴다.
앞으로 토론토 교회에서도 연주할 계획이라고 전한 사위 최등영 박사는 김 목사의 가족들만 아는 일화도 들려주며 지루하지 않게 이끌었다. 그 중에는 석사학위를 6개월만에 받고, 박사학위는 갓 발굴된 ‘사해문서’를 심사위원들이 해석하지 못해 김홍전 학생이 쓴 논문에 탄복하며 이견없이 1년 만에 신속 수여했다는 사실, 그리고 미 군정지사 보좌관으로 일하며 달러 급여를 받을 때 생활이 어렵던 목회자들을 도운 일, 장로교단이 분열할 때 합동교단의 고문역할을 하게 되고 통합측 대전신학교 학장을 사임해버린 일, 한국전쟁 때는 대통령 특사로 제네바 국제기독교공의회에 파견됐는데, 당시 여권도 없이 맥아더장군의 추천서한만 들고 갔다가 공항에서 격은 일화, 미국에서 사역하며 구호물자를 제공받아 고국에 보낸 일 등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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