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열왕기상(3:16~28)에 기록된 두 여인의 아기 다툼에 대한 재판은 솔로몬 왕의 탁월한 슬기를 보여주는 일화로 널리 회자된다. 아울러 억울한 처지의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붙잡는 희망의 등대요 정의의 보루인 법의 심판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명쾌하게 가르쳐주는 소중한 에피소드다.
한 아이를 두고 서로 자기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여인들 사이에서 재판관이 “네 아이라고 해줄테니 내 요구를 들어라”라고 말한다면 그 재판은 어떻게 될까. 아이의 진짜 어머니가 감당할 절망감은 상상하고도 남는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영화를 누린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거래와 농단 사례들이 양파껍질처럼 드러나면서 그런 비슷한 절망과 분노들이 치밀고 있다. 설마하니 국가사회의 정의를 지키는 최후의 성채인 대법원이 그랬을 리가, 대한민국 최고의 재판관인 대법관들이 그렇게 비루했을 수가…하는 배신감에 탄식이 절로 난다.

어릴 적 학교 뒷골목을 지나다 험상궂은 선배들에게 용돈 빼앗기고 얻어맞을 뻔 했던 위기의 순간에 ‘구세주’를 만난 아이들이 있다. 마침 장터를 다녀가시던 할아버지의 호통 한마디에 기가 살아나서는 ‘너희들 까불지 마’란 듯 의기양양 해졌던 학동들의 추억이다.
들판을 뒹굴며 한적을 즐기던 아기 곰이 갑자기 덩치 큰 퓨마의 공격으로 위기를 맞는 동영상도 겹쳐진다. 굶주린 퓨마가 입맛을 다시며 전속력으로 쫓아오는데 아기 곰은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치지만 이내 외나무다리에서 부러진 나뭇조각과 함께 급류에 떨어지고 만다. 물살에 휩씁려 가는 아기 곰을 퓨마는 끈질기게 따라 붙는다. 마침내 바위에 걸린 아기 곰이 코앞에 아가리를 벌린 퓨마에 먹히지 않으려 저항하며 절규하는 절체절명의 순간, 돌연 퓨마가 슬금슬금 꽁무니를 뺀다. 저 뒤편에 포효하는 어미 회색곰이 나타난 것이다. 어린 곰의 울부짖음은 달아나는 퓨마를 향해 기세등등한 일갈로 바뀌고, 다가온 어미곰은 새끼를 끌어안고는 마구 핥아주며 이제 안심하라고 다독인다.


연출된 작품인지, 생생한 동물의 세계 다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슬아슬한 생과 사의 스릴과 배후에 등장한 막강 구원투수, 진한 모성애 등 감동을 주는 단막 영상물의 하나다.
국민들에게 법원, 특히 대법원은 그런 존재가 아닌가. 아니 그래야 하지 않을까. 힘들고 어려운 백성들이 마지막으로 기대고 호소할 곳, 삶의 풍랑에서 피난처요 구원투수이기를 바라는 심정은 당해 본 사람들은 다 같을 것이다.
양승태 대법원이 거래 대상으로 삼았다는 재판 사안마다 억울하게 고통을 겪은 서민들의 애끓는 간절함과 피눈물이 배어있는 것을, 최고의 엘리트 율사들이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국민을 개·돼지처럼 무시하고’ 자기들 허욕의 제물로 삼으려 했다니 그들은 진정 영혼없는 법관들이었고, 양심도 자비도 내팽개친 금수(禽獸)나 다름없는 법비(法匪)들이었음에 틀림없다.

일제에 강제징용 당해 가시밭길 인생을 살았던 피해자 9명이 전범기업을 상대로 낸 배상소송까지도 농단의 희생물이 됐다는 소식에는 할 말을 잃는다. 민족의 아픈 상처를 외면하고 이권을 다루듯 정권 비위를 맞추느라 일본을 위한 논리를 개발해 마치 일본 법원이나 늘어놓을 궤변을 내세웠다. 징용피해자들 가슴에 못을 박고 이미 노령의 원고 대부분이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에는, 분노와 구역질이 날 정도다. 민족혼은 커녕 매국노들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듯 싶다.
대한제국의 매국역적들은 백성들의 ‘기댈 언덕’을 빠앗아 갔다. 일신의 영달에 눈먼 고관대작들이 일제에 영합하며 자국민을 혹독한 식민통치 수탈의 암흑기로 몰아 넣었다. 젊은이들은 전쟁터로, 탄광과 군수공장으로 노예처럼 끌려갔다. 꽃다운 처녀들은 일제군대의 성노리개로 소중한 인생들이 망가져갔다.


그 때 한줄기 실낱같은 희망을 준 게 상해 임시정부였고, 야멸차게 이어진 독립투쟁이었지만, 해방과 새 시대가 왔음에도 독립투사들은 일제에 부역했던 자들에게 다시 탄압을 받고 목숨을 잃기까지 했다. 친일 매국의 후예들은 간교하게도 여전히 백성 위에 군림하며, 독재권력과 족벌의 중추로 명맥을 이었다. 그 적폐들이 탄핵에 내몰려도, 사법에 은거한 뿌리깊은 인맥은 여전히 애꿎은 국민위에서 매국적 농단으로 서민의 피눈물을 자아낸 것이다.
법원은 정의로운 재판으로 국민의 권익을 지켜야 한다. 더구나 최고법원은 국가정의와 국리민복의 마지막 수호자이며 국민이 최종적으로 기댈 언덕이고 나라의 든든한 자존심이기도 하다.
법과 공의와 인권의 보루이며 민주주의 최후의 파수꾼여야 할 법원의 타락은 청산되지 못한 친일 매국의 못된 잔재들이 여전히 살아서 꿈틀대고 있다는 또 하나의 반증이며, 우리에게 진정한 광복은 아직 멀었다는 사실을 되새겨 주는 것이기도 하다.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