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에 관해서 특별히 연구하는 학문이 있다. ‘영의 이치’ 즉 영리학(靈理學)이라는 학문이 있다. 하나님의 영! 영을 그림으로 그리면 동그라미다. 수학으로 말하면 동그라미를 영(零)이라 한다. 모든 숫자, 하나에서 아홉까지 이 모든 숫자를 담고 있는 그릇이 영이다. 모든 근거가 영인 것이다. 그러므로 영이 없으면 수가 성립되지 못한다.
이 영이 제일 발달된 곳이 인도이고, 그 다음 영이라는 생각이 아랍 사람들에게 들어와서 아라비아 숫자에 비로소 영이라는 동그라미가 생겼으며, 그것이 서양에 들어와서 서양 수학의 기초가 되었다.


영은 철학적인 개념으로는 자유라는 말이고 수학적으로는 영이고, 성경에서는 진리의 영, 성령이라고 한다. 이것을 키에르케고르(Soren A, Kierkegaard)의 말로 하면 “시간적인 것과 영원한 것의 종합”이다. 영이란 말 대신 사랑이라는 말로도 쓸 수 있다.
즉비(卽非)의 논리가 영이라는 말인데 수학적으로 말하면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Zero) 라는 말이다. 즉(卽)이라는 것은 플러스이고, 비(非)라고 하는 것은 마이너스이고, 그래서 논리학에서는 A= -A 로 표시한다. 이것을 우리 말로 표현할 때는 A는 A가 아닌 것이 된다. 이 말을 쉽게 말하면 “나 아닌 것이 나다” 그러니까 나 아닌 것이 될 때 그 때 진짜 나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자기 자신이 아닐 때 어머니라고 말할 수 있다. 어머니가 자기 자신만 생각한다면 어머니가 아니다. 자신이 아니고 어린애를 생각할 때 그 때가 어머니다. 예수가 예수 일 때는 예수가 아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일 때 예수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개념은 정반대의 개념인데 이 두 개념이 합쳐져서 예수 그리스도란 말로 표현되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나 아닐 때 나라는 걸 확실히 믿게 되면 이것이 믿음이다.


그러므로 나는 나 아닐 때 나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면 절대로 내가 잘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요”라는 말도 내가 나 아닐 때 나라는 말이다. 바울의 말로는 갈라디아서 2장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 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산 것이라”… 이 말은 바울이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산다. 그리스도는 바울에게는 나 아닌 거라는 것이다.
내가 나 아닌 것이 될 때 그 때 진짜 나다. 그리스도가 살아서 바울이 되는 것, 그것이 진짜 바울이다. 그래서 내가 잘났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사람은 겸손해야지 교만하면 사람이 안 된다. 기독교에서는 교만한 것을 제일 나쁘다고 지적한다. 실존주의란 나를 조금이라도 내 놓지 말고 자꾸 나를 감추는 것이다.


믿음의 시작이 무엇인가? 졌다는 것이다. 모세는 호렙 산에서 하나님께 졌다. 모세는 졌고 하나님이 이겼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에게 졌다. 나는 종이라고 했다. 이 종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졌다는 말이다. 나는 노예다. 이긴 건 누구인가? 그리스도다. 그러니까 이제 당신은 나의 주님이다. 나는 제로가 되었다. 바로 나는 나 아닌 것이 나라는 말이다. 지식이 많은 사람들, 돈 많고 명예가 있는 사람들이 나 아닌 내가 될 때 이 세상은 더욱 밝아질 것이며 하나님으로부터 더 큰 사랑과 은혜를 받게 된다. 오늘부터라도 나 아닌 내가 되어 보자. 그리스도가 살아서 내가 되는 신비로운 삶을 체험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란다.

< 정태환 목사 - 한인은퇴목사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