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30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14차 아시아안보회의(일명 샹그릴라 대화)에서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의 연설을 듣고 있다.


‘소파’ 고쳐 한국이 관리·감독해야
시민단체 미대사관 옆 시위

주한미군 오산 공군기지에 살아있는 탄저균이 배송된 사고를 계기로 미군이 한국 정부에 통보할 의무 없이 위험물질을 들여올 수 있게 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 정부가 주한미군으로부터 위험물 반입을 사전 통보받고 이를 관리감독해야 주한미군이 한국 내에서 세균전 무기 개발 등 무분별한 위험물질 개발에 나설 가능성을 원천차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장희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평화통일시민연대 공동대표)는 29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세계 3대 미군 주둔지인 한국·일본·독일 중에 미군 병력 규모·무기체계 변화, 위험무기의 반입이 있을 때 사전에 통보하고 협의하지 않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며 “한국인의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미군의 탄저균을 관리감독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와 관련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 내용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한-미 주둔군지위협정 9조(통관과 관세)는 “미합중국 군대에 탁송된 군사화물”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가 세관 검사를 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미국이 해외 주둔 미군기지이긴 하지만 타국에 생화학무기로 사용될 수 있는 위험물질을 보낸 것이 국제법을 위반한 것은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미국이 생화학무기로 사용되는 탄저균을 다른 나라로 이동시키는 것 자체가 생물무기금지협약(BWC)에 저촉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 국방부 관계자는 “북한군이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탄저균에 대응 역량을 향상하기 위해 미군에선 탄저균을 확인하고 대응 절차를 숙지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탄저균은 인체에 침입하면 독소를 생성하고 면역세포를 손상시켜 사망에 이르게 하는 위험한 물질로 치사율이 95%에 이른다. 현행 국내 감염병예방법상 탄저균 등 고위험 병원체는 한국 질병관리본부에 신고해야 하지만, 미군은 비활성화 상태라는 이유로 탄저균 표본을 들여오면서도 사전 통보는 하지 않았다는 게 질병관리본부 쪽 설명이다.

1997년에는 걸프전 이후 방사능 오염 등의 문제로 논란을 낳은 미군의 열화우라늄탄이 주한미군에도 배치됐던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다. 당시에도 주한미군 쪽은 처음에 ‘우라늄탄을 보유한 적이 없다’고 했다가 나중에 ‘보유하고 있으나 지금까지 사용한 적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김지훈 기자, 싱가포르/박병수 선임기자>



[1500자 칼럼] 너구리에게 배운 한 수

● 칼럼 2015. 5. 29. 16:39 Posted by SisaHan

포근한 봄빛이 잔잔하게 퍼져가는 아침녘, 모처럼 눈 먼 시간이 아주 조금 주어졌다. 연중 가장 좋아하는 오월을 제대로 느끼지 못해 아쉽던 참인데 끝자락이나마 잡을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모카커피 한 잔을 찐하게 내려서 창가에 앉았다. 연초록 화사함으로 치장한 뜰 안 풍경이 프레임 가득 들어온다. 보랏빛 향기를 뿜어내는 라일락 군락, 가지마다 꽃술을 늘어뜨린 떡갈나무, 잔잔하게 깔린 야생화 무리 등등, 내가 늘 동동거리며 무신경하게 드나드는 사이 자연은 성찬을 준비하고 있었나보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던가. 멀리 있는 자연만을 동경하면서 쫒아 다닌 내 자신이 좀 미안하다. 조그만 텃밭과 쭉쭉 뻗은 전나무 숲 그리고 그 사이로 이웃들의 통나무 헛간이 얼기설기 자리 잡고 있는 풍경이 한 폭의 수채화다. 우리의 삶속으로 들어온 자연, 자연 속으로 들어 간 삶, 자연과 삶의 잔재들이 자유롭게 조화를 이룬 광경이 오늘따라 정겹게 다가온다. 최근에 겪은 너구리와의 전쟁을 떠 올리며 야생동물들과도 이런 관계가 유지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은 해 본다.


얼마 전부터 침실 머리맡 천장에서 수상한 움직임이 감지됐다. 잠이 들 만 하면 무언가가 바스락 거려 어렵게 청한 잠을 깨워놓기 일쑤더니, 얼마 안가서 묵직한 발자국 소리를 내며 천정 안을 휘젓고 다녔다. 처음엔 지붕 위에 있는 공기 정화용 팬 사이로 침입한 새나 다람쥐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다가 점점 커져가는 움직임에 긴장하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면 너구리가 분명했다. 녀석은 이웃집 지하실에 들어서 말썽 피우는 스컹크 보다야 낳겠지만 사람과 동거하기엔 거북한 존재임은 말해서 무엇 하랴. 우리 부부는 이 대책 없는 무단 침입자를 내 쫒기 위해 수시로 천장 안을 살펴보았다. 천장과 지붕 사이, 한 길도 안 되는 캄캄한 공간에는 온열재로 뒤덮인 석면과 아래 위에서 뿜어대는 더운 열기뿐 별다른 기미를 찾아낼 수 없었다. 틈만 나면 랜턴을 비추며 답답한 공간 뒤지기를 한 지 며칠째, 큼직한 움직임 속에서 재재거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아마도 그 사이 새끼를 낳은 게 틀림없었다. 순간 귀밑머리가 쭈뼛 섰다. 얇은 널빤지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부부의 가장 은밀한 침실이 너구리에게로 향하고 있었음에 모골이 송연해짐은 물론, 우리가 곤히 잠들었을 엊그제 밤, 어미의 산통과 출산이 머리 위에서 이루어졌음을 상상하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며칠 후, 너구리 일가를 퇴출시키고야 말겠다는 짝꿍의 의지 끝에 들려나온 새끼 세 마리, 아직 세상을 향해 눈도 못 뜬 채 머리를 처박고 서로 엉켜있었다. 막상 단서를 잡고 나니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게 아니었다. 새 생명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가 첫 관문이었다. 정부에서는 너구리 개체수가 너무 늘어나서 예산을 들여 줄이고 있다지만 우리의 영역 안에 들어 온 새 생명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고민 끝에 어미가 다시 새끼를 이끌고 본가로 회귀하기 불가능한 곳에다 유기시키기로 작정하고 집에서 먼 숲에다 놓아주었다.


문제는 그날 밤, 초저녁부터 어미가 새끼를 찾느라 천장에선 난리가 났었다. 공범인 짝꿍과 나는 새끼 찾아 헤매는 어미의 처절함에 밤잠을 설쳤다. 모성 본능은 인간 뿐 아니라 미물도 다를 바 없음을 절실히 느낀 긴 긴 밤이었다. 어미와 새끼를 갈라놓은 장본인 짝꿍에겐 어미의 거친 숨소리까지 들렸다니 그 죄책감이 나보다 훨씬 더 했나보다. 유기한 새끼들을 데려다가 어미가 잘 다니는 통로에 놓아줌으로써 우리들의 전쟁은 종지부를 찍었다. 평온해진 지금도 자리에 누우면 온몸을 던져 새끼들을 구해 낸 어미의 모성애가 천장에 느껴진다. 너구리에게 배운 한 수가 나의 지난날들을 돌아보게 한 사건, 그래서 자연은 위대하다고 하나보다.
향긋한 커피 향에 연둣물을 입힌 나의 망중한은 막 개화하기 시작한 송화(松花)를 보며 종지부를 찍는다. ‘송홧가루 날리는 유월이 오면 솔잎주를 담궈서 내 좋은 사람들에게 달려가리라’ 다짐하며.

< 임순숙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에세이스트’로 등단 >



[사설] 한-일 외교 정상화의 조건

● 칼럼 2015. 5. 29. 16:38 Posted by SisaHan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왜곡 중단을 촉구하는 일본 역사학자들의 성명이 25일 발표됐다. 최근 한-일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어서 더 뜻깊다. 아베 신조 일본 정부는 이를 계기로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과거사 해결에 적극 나서기 바란다.
성명에 참여한 단체는 역사학연구회 등 4개 대형 역사단체를 비롯해 16개 역사 연구·교육 단체를 망라한다. 반년 정도의 준비기간 동안 ‘일치를 본 의견’을 모았다고 하니 성명 내용에 무게가 느껴진다.


핵심은 위안부 강제연행은 역사적 사실이며 일본 정부는 이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은 인정하면서도 강제연행을 부정하거나 교묘하게 책임을 회피해온 아베 정부의 태도가 잘못이라는 얘기다. 이 성명은 지난 6일 지구촌 역사학자 187명이 낸 위안부 관련 성명과 맥락을 같이한다. 아베 정부는 자국 학자들도 인정하는 사실에 대해 애써 눈감으려는 자세에서 빨리 벗어나야 마땅하다.
아베 정부의 ‘과거사 뭉개기’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말 미-일 정상회담 등을 계기로 한-일 외교관계를 정상화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23일 일본 도쿄와 필리핀 보라카이에서 두 나라 재무장관 회담과 통상장관 회담이 열렸다. 둘 다 2년 이상 중단됐던 회담이다. 특히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박근혜 정부의 부총리급 이상 고위관료로는 처음 일본을 찾았다. 오는 30일에는 싱가포르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를 계기로 한-일 국방장관 회담이 열린다. 언뜻 보면 두 나라가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수순을 밟는 것 같기도 하다.


일본은 한-미-일 삼각 협력 강화를 추구하는 미국을 등에 업고 한-일 관계 개선을 밀어붙인다. 하지만 아베 정부가 과거사 해결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한 진정한 한-일 외교 정상화는 있을 수가 없다. 부분적으로 정경분리나 실용외교가 시도되더라도 일본의 진의에 대한 의심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가 과거사 문제에서 중립적인 듯하면서 사실상 일본 편을 드는 것도 잘못이다. 2차대전 이후 역사를 돌아볼 때 미국은 진실에 근거한 과거사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할 의무가 있다.
역사에 묶여 아무것도 못하면 안 된다는 말은 맞다. 과거보다 현실과 미래가 중요하다는 주장도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역사의 진실은 그 자체로 현실과 미래를 규정한다. 편법으로 구축된 관계는 사상누각처럼 기반이 취약하기 마련이다.



북한발 신호가 혼란스럽다. 5월 들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사실상 러시아의 전승 7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기로 했다가 갑자기 취소한 것을 비롯해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 사출시험 보도와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의 숙청설, 국방위와 조평통 등 각급 기관과 매체를 동원한 대남 비방 공세 강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개성공단 방문 돌연 취소 등 남북 대결과 국제적 고립을 불러올 만한 북한의 예측불허 행동이 잇따랐다. 남북관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북한이 뭔가 내부적인 속사정으로 대남·대외 정책의 기조를 강경한 쪽으로 잡은 것 아니냐며 남북관계 개선이 당분간 쉽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론이 널리 퍼지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주말을 기해 긍정적인 신호들이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하나는 세계 15개국 30여명의 국제여성평화운동가들이 참여한 ‘위민 크로스 DMZ’ 참가자들이 24일 경기도 파주시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 북에서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으로 온 것이다. 이들이 애초 바란 대로 판문점을 통해 걸어서 넘어온 것은 아니지만, 남북 사이에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국제여성평화운동가들이 군사분계선을 ‘돌파’한 것은 역사적 의미가 크다. 전쟁이나 분쟁이 일어날 경우 가장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는 여성들이 남북을 잇는 물꼬를 튼 것은 다른 어떤 집단이나 개인이 한 것보다 상징성과 파급력이 클 수밖에 없다. 이들의 상상력과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다만, 정부가 형식논리에 사로잡혀 판문점 통과 및 군사분계선 도보 횡단을 허용하지 않은 것은 아쉽다.


이에 앞서 임금인상을 놓고 2월부터 갈등을 빚어온 개성공단 문제가 22일 해결된 것도 좋은 신호다. 북쪽은 ‘남북간 별도 합의가 있을 때까지 기존 기준에 따라 임금을 지급한다’는 남쪽의 주장을 전격 받아들임으로써 갈등을 해소했다. 이에 따라 개성공단은 임금 갈등으로 인한 조업 중단이나 축소의 위험은 피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위민 크로스 DMZ나 개성공단 임금 갈등 해소를 북의 정책 기조가 다시 유화 쪽으로 돌아선 것이라고 성급하게 진단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신호가 너무 약하다고 가볍게 봐서도 안 된다. 대결보다 화해와 협력으로 가는 것이 한반도 문제 해결 과정에서 남북의 목소리를 키우는 가장 쉽고 강력한 방법임을 남북 당국자는 알아야 한다. 남북 모두 이번의 작은 신호를 적극적으로 살려 남북 화해와 협력의 계기로 만들어 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