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문예] 갈대꽃, 가을 소리로

● 교회소식 2017. 9. 27. 16:18 Posted by SisaHan

가을 바람 화가 붓되어
오늘 이민자 마음에 벽화 그리는
첫 새벽 축복 기도가 하늘로 오르고

야곱아, 야곱아
애굽 이민 길 두려워 말라, 계시 주시고
디아스포라 한인 올망 졸망 자녀 손잡고
캐나다는 가나안, 꿀이 강수로 흐르는
언제나 풍요로운 꿈들이 미래를 향하여
노벨상 빛날 끈기있는 민족되어
오래참아 사랑 완성 예언서 씁니다

갈대꽃 피우는 가을 바람 동무삼아
지나온 세월 길목마다
마디 마디 이렇게 참고 참아도
사랑아, 바람이 흔드는 갈대
상자로 엮어 모세는 강물에서
왕궁 왕자로 속량되었고
우리가 서로를 향하여 나누는
갈대 상자는 황금 꿈 그릇으로
이민 삶이 풍요로 채워지고

가을 나르는 우체부 발길에
추수 열매가 향기로 익고
성경에서 길을 찾아
오늘도 펼쳐 읽고 있으니
영원토록 홀로 사는 법
세상에서 제일은 사랑입니다

< 박심 - 목사, 문협회원 >


적은 소유를 가진 가난한 자도 그 적은 가운데서 구제를 해야한다 (막12:42). 우리는 많은 경우에 있어서 우리 자신을 절제하여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공급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이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가진 것을 요구하시지, 가지지 못한 것을 요구하시지 않으시는 것이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경건과 자선을 위해 사용할 수있도록 무엇을 드리나를 보고 계시는 것이다. 우리가 가벼운 마음으로 드리나,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나, 아까운 마음으로 드리나, 인색한 마음으로 드리나를 보시는 <주님>이시다. 곧 <주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보시는 것이다> 누구를 위하여 <안식일>이 있는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막 2:27). 그러므로 우리는 <안식일>을 하나의 과제나 고역으로가 아니라 하나의 <특권>이나 <은총>으로서 영접하고 환영해야만 할것이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사람이 <안식일>이 제정되기 하루 전에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즉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창조 되었다. 즉 주 하나님께 영광과 섬김을 위해 창조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그의 생활에 필요한 보급을 받는 일조차 <안식일>의 율법에 의하여 제지를 받도록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창조된 것이 아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은 그들의 신앙초기에 부담이 되었던 경건 생활과 헌금 강요에 대해서 어두운 선입감을 가진다. 교회는 연약한 그리스도인들에게 과중한 부담을 갖지 않도록 주의하는 교회의 치리가 있어야 된다. 즉 주님의 영예가 그 본래의 목적대로 쉽고 즐거웁고 유쾌하게 하여야 된다. 그리고 우리 크리스천들은 <안식일-주의날>에 대해서 분명한 주 하나님의 뜻을 살펴 보아야 한다. 즉 주 하나님은 안식일이 우리에게 유익이 되도록 계획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안식일이 우리에게 유익이 되게하고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다. <주 하나님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도록 만드신 것이다>. 즉 우리의 심신도 힘들고 고달픔에서 자유케 하신 것이다(신5:14). <우리의 육체의 휴식을 위해서>. 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필요한 경우 몸을 위해 필요한 일용할 양식을 취하는 것을 <안식일> 규례(법령)가 억제케 하는 것을 확실히 의도 하시지 않으셨을 것이다.

<안식일>제도는 인간의 교화를 위함이지 인간의 파멸을 위함이 아닌, 그 자체 의도에 모순이 되게 해석 되어서는 <결코>안 된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다만 거룩한 일을 위한 날과, 주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기 위한 날이 되게 하기 위해 쉬는 날로 제정하시었다. “인자는 인식일에도 주인 이니라”. 안식일들(주일)은 인자의 날들 임을 주의하자! 주님은 그 안식일의 주인이시다. 그러므로 크리스천들의 안식일은 주의 날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계1:10). 그러므로 인자, 그리스도, 중보자는 언제나 <안식일>의 주인으로서 공경 받아야 한다. 모든 크리스천들은 그들이 받은 은사나 은혜를 받을 때에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활용하고 섬겨야 한다. 은사나 은혜는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등불>과 같이 되게하고 “여호와의 등불”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등불과 같이 빛을 받은 자들은 자기 자신들을 <등경>위에 놓아 빛을 잘 비추게 해야 한다. 이런 것들이 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잘 포착해서 활용해야 함으로, 우리들이 소속해 있는 공동체(교회)를 섬길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알자! 우리는 우리 자신들만을 위해서 빛을 내어서는 안 된다. <만일 내가 주 하나님께 진실한 종이 된다면, 주 하나님께서도 나에게 진실하신 <주>가 되어주실 것이다>.

좋은 땅에 심겨진 씨처럼, 주 하나님 나라와, <복음>도 인간의 마음에 뿌려지고 받아들여질 때에 그와 같이 말없이 큰 성과를 내게 된다. 우리는 <복음>이 우리의 심령 속에 자리를 잡고 있게 하여 “위로부터 난 지혜”와 같이 “선한 말을” 하여 우리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나타내 보여 주어야 한다. 정당한 <복음>의 원리를 따라서 솔직한 마음으로 주예수 그리스도를 섬길 때에 “주님”은 이를 달게 받아주시며, 인간의 심령에 자리를 잡고 역사하시며 무르 익어가는 복음의 열매를,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러운 추수때에 <주님>에게로 거두어들이는 것이다(요4:35). <복음>을 올바로 받아들이고 그 과정을 올바로 거쳐 완전히 성숙하였을 때에 추수가 이루어지는 것이며, 그때에 그들은 익은 곡식과 같이 주 하나님의 곡간에 모아 들여지게 되는 것이다.(마13:30).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이(딤후3:5) 흔히 형식에 대하여는 세심하며, 그들의 형식을 따르지 않는 자들에게 대해서는 극히 비판적이었다.

만일 우리가 <복음(성서)>에서 읽은 말씀을 회상하게 된다면 우리의 많은 잘못이나, 올바른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그릇된 비난들이 고쳐지게 될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에 의한 호소는 가장 설득력이 있게 된다. <사역자>가 되고져 주 예수님께 나오기를 원하는 자들은 자기들 자신의 만족의 겉옷을 내어 던지고 모든 자만의 옷을 벗어버려야 한다. 목회와 사역위에 가장 달리기에 간편하도록, 즉 거추장스런 겉옷이나 자신들을 넘어지게 할 만한 것들이나 주님께 나아오는데 방해가 되는 것이나 자기의 행동을 둔하게 할 만한 것들을 집어 던져 버려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기도하시기 위하여 조용한 곳에 계셨다>. <복음> <사역자>들은 교회가 졸고 있지 않도록 골방에서 <기도>의 본을 보여야 한다. 할렐루야! 아멘.

< 김진규 - 밀알교회 장로 >


[기쁨과 소망] 압도(壓倒)

● 교회소식 2017. 9. 27. 16:14 Posted by SisaHan

지난 3년간 여름에 가던 가족캠핑을 가지 않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그 중 가장 큰 이유는 깨끗하지 못한 캠핑사이트 환경이었다. ‘화장실 샤워장’이 아이들에게 있어서 불편했고 굳이 그 불편함을 참으면서 캠핑을 하는 것이 서로가 말은 하지 않았지만 부담이 되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캠핑하는 것을 좋아했던 터라 조금은 아쉬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던 중 금년 여름이 돌아오기 전부터 왠지는 모른지만 아이들에게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먼저 캠핑을 가자고 하는 것이다. 반갑기도 하고 약간의 불안감도 있어지만, 어찌되었든 먼저 간다고 하니... ^^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웹사이트 검색, 마침내 피터보로 지역에 있는 주립공원 캠프사이트를 예약했다.


출발 당일 오랜만의 가족캠프 여행에 흥분이 되기도 했지만 걱정 또한 되었다. 또 다시 좋지않은 환경으로 가족들이 실망하고 영원히 캠프를 포기하게 되지는 않을까..!!하는 걱정이었다. 여하튼 두 시간 여를 달려 도착한 캠프사이트. 입구에서부터 우리 가족은 ‘압도’되고 있었다. 걱정은 사라지고 관리사무실에서부터 묻어나는 ‘정결함과 깨끗하게 정돈된 분위기, 그리고 향긋한 커피향’에 압도되고 있었다. 이전에 가 봤던 여느 캠핑사이트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함께한 모든 가족은 입구의 분위기에서부터 알아버리게 된 것이다.
조금의 과장도 없이 말하자면.. 우리집 아이들 화장실과 샤워장 그리고 방보다 깨끗했다. 입구에서 압도되었던 깨끗함의 기대, 그대로 였다. 첫날 아이들과 함께 온 종일 물가에서 시간을 보내고 샤워장에서 샤워를 마친 후 나도 모르게 내가 사용한 샤워장을 청소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왠지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았다….” 2박3일의 짧지 않은 시간을 보낸 후 집으로 출발하는 아이들은 합창을 하고 있었다. “내년에 또 와요...!!^^” 캠핑사이트에 완전 ‘매료’된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지난 2박3일의 경험과 내가 섬기고 있는 교회 현실이 ‘오버렙’ 되었다. 교회 입구에서부터 그리스도의 순수함과 정직 그리고 사랑으로 ‘압도’되는 교회...!!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순간 누군가 강요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기도와 찬양·사랑’이 아닌 ‘왠지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아 행해지는 자연스러움’이 있는 교회.. 그래서 “다시와야 겠다”는 마음이 드는 교회. 운전대를 붙잡고 앞을 보고 있지만, 나는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어릴 때 기억에 교회문화가 세상 문화를 압도할 때가 있었다. 여름이 되면 교회 오지않던 친구들도 ‘성경학교와 수련회’에 오곤 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것보다 재미있는 것이 없었다!.” 믿음이 없는 부모들도 허락했다. 그 이유 또한 단순했다. “그래도 교회 친구와 교회 프로그램이 안전하다”는 것이다. 물론 “재미도 있었고 안전도 했다.” 그러나 그 재미와 안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순수함과 사랑, 그리고 영혼을 향한 열정’이 그들을 압도했기에 가능했다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추억이 되어 버린 오늘, 교회를 섬기는 한사람으로 비참함을 느낀다. 하루가 멀다 하고 ‘목회자의 타락과 교회의 비리, 그리고 다툼’이 ‘평범한 뉴스’가 되어버린 세대…교회가 세상을 압도하기는커녕 부패한 세상이 말하는 ‘순수와 정직에 비교당하고 압도되는 세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르신 자에게 충성하며 사역자로 살아가야만 하는 나의 인생이 답답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확신한다. “압도해야 한다”고…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지도를 봐야하는 큰 건물이 아닌, 수많은 선교사 파송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빼곡하게 적혀있는 게시판이 아닌, 세상이 흉내도 낼 수 없는 ‘순수함과 정직,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과 영혼에 대한 열정’의 회복으로 교회는 세상을 ‘압도(壓倒)’해야 한다고…

< 민경석 목사 - 한울교회 담임목사 >


[긴급 제언]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 칼럼 2017. 9. 27. 16:10 Posted by SisaHan

한인요양원 우리 누구나 관계될 일
인수모금 운동 모든 가정 동참했으면

며칠 전 모 신문 광고를 보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더 이상 남의 일로만 생각하고 모르는 척 할 수가 없었다. 그토록 절실하게 한인요양원의 필요성을 깨달았던 경험은 어디로 사라지고 벌써 그 때를 잊고 있는 내 자신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나의 노년은 요양원과 관계가 없으리라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이미 수 년 전에 돌아가신 시어머니께서는 생의 마지막 일년을 요양원에서 지내셨다. 심장마비를 겪으신 후라 일반 가정에서는 돌봐드리는 일에 한계가 있어 결국 요양원으로 모셔야 했었다. 자식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죄송함에 영어로만 소통이 되는 곳이었기에 자식들의 마음고생이 어머니 당사자 못지 않게 만만치 않았다. 당시엔 무궁화 요양원이 없었기에 캐슬뷰 양로원을 택했다. 비록 외국인 시설이라 해도 3층은 한인 노인 70여명이 수용되어 있어 전혀 한인이 없는 곳보다는 나았다. 24시간 한국어 TV 방송을 시청할 수도 있고, 가끔 한국음식도 접할 수 있고, 주말마다 예배도 보고, 머리도 자르고, 손톱 발톱도 잘라주는 한인 자원봉사자들의 따뜻한 손길이 있어서 가족들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주었다. 비록 그렇다 해도 내 집을 떠나 사는 외로움과 불안, 그리고 불편함을 충족시킬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언어와 음식문화가 달라서 누구나 몸이 아프고 외로움 때 찾게 되는 음식은 가족이 사랑으로 만든 따뜻한 한국음식이 아니겠는가. 게다가 육신의 고통을 간호사들과도 소통할 수 없었으니 매사에 얼마나 답답했을까 싶다.


몇 년이 더 흘러 한인 전용의 무궁화 요양원이 문을 활짝 열었다. 작년에 그곳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곳은 비록 작은 규모일지라도 한국어로 간호사와 소통하고 한식이 삼식 제공되고, 각종 예능 프로그램이 모두 한국어로 진행되는 걸 보니 가족 같은 분위기에 마음이 따뜻해지고 안심이 되었다. 그때서야 외국인 요양원에서 한인 노인 한 분이 겨우 3개월 만에 한국어를 모두 잊어버렸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절실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언젠가 오타와에 사는 손주들의 수영레슨을 같이 간 적이 있다. 그 수영장은 웅장한 시설에 보안까지 철저했는데 외형으로만 보아도 규모가 대단했다. 아들에 의하면 유대인 커뮤니티 소속 건물이라고 하는데 근처에는 그들만의 학교, 은행, 요양원, 도서관 등등 모든 공공시설이 함께 모여있다고 한다. 가슴이 멍멍할 정도로 감동에 젖어, 과연 우리는 언젠 이런 커뮤니티 시설을 모두 갖출 수 있을지 잠시 생각해본 적이 있다. 물론 그들이 이 땅에서 축적한 부와 명예는 우리와 비교할 수 없겠다. 헌데 우린 천신만고 끝에 세운 기존의 작은 한인요양원조차도 지켜내지 못한 상태이니 부끄럽지 않겠는가. 기실 노년기에 들어선 한인노인 인구에 의하면 우리에게는 한인요양원이 더 필요한 실정인데 말이다.


한인요양원 건립은 일찍이(1993년) 동포들의 노력과 성금으로 시작하였으나 어려움에 봉착하면서 오랜 시간에 걸려 어렵게 우리에게 다가온 곳이 무궁화 요양원이다. 겨우 60 침상의 작은 규모로 개원(2011년)한지도 몇 년 안 되었는데 잠시 법정관리에 들어갔다가 끝나면서 다시 법원명령으로 공개입찰에 의한 매각절차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으니 안타깝기 짝이 없다. 그것도 온주 정부가 소수민족 복지정책의 하나로 한인사회에 제공 되었던 것이니, 우리가 끝까지 우리 힘으로 지켜내야 할 명분이 거기에 있다고 본다.


이제 우리 부모님 세대는 거의 떠나시고 이민 1세들이 서서히 노년기에 접어들었다. 이곳에서 30-40년을 살았어도 아직도 한국말, 한국음식을 먹으며 작은 한국을 이루며 살아가는 우리이기에 무궁화 요양원이야말로 바로 백세 시대를 살아가야 할 우리 미래의 마지막 거주지인 것이다. 다행히 1.5세와 2세 전문인 중심으로 인수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9월말까지 모금을 한다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미 뜻있는 동포들 중 큰 마음으로 앞장을 선 분들이 많으나 아직도 입찰주정 금액 600만불 중 필요한 최소 금액 350만불(나머지는 대출)을 모금하려면 갈 길이 멀다는 소식이다. 우리 속담에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하지 않던가. 각 가정당 200불씩 범교민 모금운동이 9월말까지 계속되니 가족 외식이나 각종 야외행사를 줄여서라도 모든 가정이 참여하길 바랄 뿐이다. 이는 우리의 프라이드를 지키는 일이며, 부모님 사랑을 위해서 아니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실천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라 생각한다. 결코 불구경하듯 남의 일로만 여기지 말자. 동포들의 동참을 진심으로 호소한다.

< 원옥재 - 전 문협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