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과 소망] 값진 금메달

● 교회소식 2018. 2. 27. 20:46 Posted by SisaHan

23회 동계올림픽이 대한민국 강원도 평창에서 열리고 있다. 92개국에서 2,925명이 참가하는 역대 동계올림픽중 최대이다.
개막전부터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한 단일팀 참가로 세계의 관심이 뜨거웠다. 남북한 선수들의 공동입장으로 평화분위기가 조성되었다. 평창올림픽이 디딤돌이 되어 평화통일까지 이어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에 첫 금메달을 안겨준 선수는 남자 쇼트트랙 1500m에서 우승한 임효준 선수이다. 그의 스토리가 감동적이다.


부상으로 7차례 수술을 하고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뛰었던 그는 마침내 금메달을 차지하였다.
임 선수는 강릉선수촌 교회 주일예배에서 참석해 “대한민국 첫 금메달을 부족한 제게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간증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신앙을 갖게 되었다는 그는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지만 성도들의 기도 덕분에 큰 힘을 얻었다.”고 했다. “중학교 때 이후 발목 인대 파열, 발목 골절, 허리 골절 등 치명적인 부상을 당할 때 마다 하나님께 치료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여 고침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시상식에서 오른손 검지를 위로 들어 올렸는데, 이것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을 돌린다는 나만의 표시였다. 모두 하나님이 하셨다.”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다.
임 선수의 기사를 보고 마음이 뭉클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22세의 젊은 대학생의 믿음이 자랑스러웠다. 어머니가 믿음으로 잘 키웠고, 교회 성도들의 중보기도가 오늘 날의 임 선수를 만든 것이다.


임 선수는 태릉이나 진천에서 훈련할 때 선수촌 교회 수요예배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 효준이가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 선수의 간증은 금메달보다 더욱 값지다. 그는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전하였다. 최고의 행복한 삶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임 선수의 믿음이야말로 진정한 값진 금메달이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 박헌승 목사 - 서부장로교회 담임목사 >


[1500자 칼럼] 닫히며 열린 창

● 칼럼 2018. 2. 27. 20:44 Posted by SisaHan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활짝 웃으며 “안경을 안 쓰니 썼을 때보다 훨씬 예쁘네” 한다. 듣기에 좋아 정말 그런가 싶어 마음이 흡족해졌다. 어느 날 다른 친구가 “안경을 벗으니 전혀 너 같지가 않아. 안경 쓴 네 모습이 훨씬 보기가 좋아”하는 게 아닌가. 혼란스러웠다. 기실 내 생애 반세기 동안 안경을 써왔으니 당연한 코멘트라 여기면서도 왠지 안경을 써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마음이 복잡해왔다.
불현듯 이솝 우화 ‘당나귀를 팔러 가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가 떠올라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남의 말만 듣고 당나귀 등에 아들을 태우고 아버지는 걷다가 다시 아들은 걸리고 아버지만 당나귀를 타고, 또 다시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당나귀 등을 타고 가다가 끝내 당나귀를 그들의 등에 짊어지고 장터로 가던, 줏대 없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 말이다.
작년에 백내장 수술을 했다. 4년 전부터 시작한 백내장으로 시간이 갈수록 사물이 뿌옇게 보이며 시력장애가 심해졌다. 워낙 약시인데다 설상가상으로 백내장까지 있게 되어 더 이상 안경으로 내 시력을 조절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 백내장 수술 시 근시를 조절하는 인공렌즈를 삽입하게 되었다. 오른쪽 눈을 먼저 수술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창 밖의 불빛마다 빛 무리가 큰 원처럼 매달려 번쩍번쩍 강한 빛을 발하였다.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대신 여태 안경을 끼고도 읽을 수 없었던 TV 화면글씨를 읽을 수 있었고, 창 밖 먼 거리에 있는 희미하던 집과 숲도 선명하게 보여서 마치 딴 세상 같았다. 단지 아직 수술을 안 한 왼쪽 눈과 인공렌즈로 바꿔 낀 오른쪽 눈의 시력차이로 초점 맞추기가 힘들었다.
다행히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 다른 쪽 눈의 백내장 수술을 2주 만에 신속하게 해줘 그나마 견딜 수 있었다.
문제는 전과 달리 돋보기 없이는 책을 읽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수술 전에는 근시가 아무리 심했어도 가까운 거리는 안경만 벗으면 작은 글씨도 읽을 수 있었는데, 수술 후 그 반대 경우가 된 것이다. 불편하고 난감했다. 전에 잘 보이던 글자를 돋보기를 껴야만 읽을 수 있고, 전에 못 보던 먼 곳은 안경 없이도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잘된 일이라 해야 할지 잘못된 일이라 해야 할지… 신문과 책을 자주 읽는 내겐 마치 재난처럼 느껴지기만 했으니 말이다.

흔히 신체의 창을 눈이라고 비유한다. 나도 이 창을 통해 세상을 보고 즐기며, 일하며 살아가는데 그 창에 문제가 생긴 셈이다. 백내장 수술 후 검안을 하니 한쪽 눈에 난시까지 생겨 두 시력차이로 돋보기를 새로 맞춰야 했다. 50년이나 써온 돗수 높은 안경 없이도 돌아다닐 수 있게 된 점은 분명 신기하나, 한편으론 작은 글씨 하나라도 읽으려면 돋보기를 찾아야 하니 마음이 편하지 않다.
이제 보니 각종 서류 글씨는 어찌나 작은지 아예 읽으려는 시도도 할 수 없다. 나이와 함께 온 퇴행성 증세의 하나로 알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는데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다. 마치 더 이상 쓸모 없는 사람이 된 무력감이 느껴질 때가 더 많으니 말이다. 그래서 삶 속에는 새로 얻은 것이 있으면 반드시 잃는 게 있기 마련임을 일깨우고 있다.


새 창으로 바깥 풍경을 바라본다. 안경 없이도 하늘과 숲이 선명하게 보인다. 불현듯 내 젊은 날에 먼 거리를 볼 수 없었던 것 같이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며 도우며 살았던 적이 없었던 점이 떠오른다. 오로지 나, 내 가족, 내 교회, 내 친구들만 챙겼지 싶다. 얼마나 근시안적인 행동이었는지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어쩌면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더 늦기 전에라도 새 창으로 바꿔 끼워야 했던 게 아닐지. 이제부터라도 나 아닌 이웃들에게 관심을 갖고 바라보며 도우라고, 또 그들의 처지와 입장을 돌아보며 나 자신만을 보듬지 말라는 충고로 이해하고 싶다면 지나칠까. 그래서 멀리 볼 수 있는 창은 넓게 열리고, 더 이상 나만 보지 말고 이기적이지 말라고 가까운 창은 닫혀 버리는 게 아닌가 싶다. 참으로 공평한 처사가 아닌지…이제부터라도 젊은 날에 잘못 생각하고 행동한 것들을 고쳐 나가라고 새 창은 내게 그리 충고하는 것으로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닫히며 열린 세상, 바로 이것이 백내장수술 후 내가 깨달은 세상이치다.

드디어 새 안경을 맞췄다. 수술한지 일년이 되면서부터 조금씩 난시가 생기긴 하였으나 마침내 내게 익숙한 안경 낀 내 모습을 되찾았다. 다만 전과 달리 가끔은 안경을 벗고도 세상을 바라보며 즐길 수 있게 되었고, 점차적으로 돋보기 사용도 익숙해가고 있다. 열린 창에 가득 채운 밝은 빛으로 활기찬 오늘을 맞는다.

< 원옥재 - 수필가 / 캐나다 한인문인협회원, 전 회장 >


[칼럼] 적폐는 한판 승부가 아니다

● 칼럼 2018. 2. 27. 20:42 Posted by SisaHan

이재용 항소심 선고가 나던 날은 종일 머리를 얻어맞은 듯 몽롱했다. 정신없이 기사를 마감하고, 이튿날 판결문을 뜯어봤다. 화가 치밀었다. 판결 비판 기사로 며칠을 보냈다. 그로부터 보름이 지났으니, 명절 때 받은 가족의 따사로운 기운에 기대어 찬찬히 생각해보기로 했다. 법조팀이 썼던 기사도 다시 살펴봤다. 감정이 뚝뚝 묻어났다. 누구를 향한 분노였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이 수감되고 이 부회장이 1심에서 실형을 받는 걸 보면서 내 딴엔 그림을 너무 크게 그렸던 것 같다. 대한민국의 근대를 주물렀던 ‘박정희’와 그가 고속성장의 적토마로 키운 ‘재벌’. 두 존재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기대했던 것 같다. “그래도 박정희가 안 굶게 해줬다”는 기성세대의 부채감과 “삼성이 대한민국을 먹여 살린다”는 실체 없는 두려움. 이런 걸 던져버리게 되길 바랐던 것도 같다.
과도한 의미부여였고, 호들갑성 자가발전이었다. 고백하자면, ‘박정희 왕조’의 최후가 빚은 노을에 취해 있었다. 그들이 낳은 더 강력한 ‘삼성 왕조’에 나라가 단단히 덜미 잡혀 있다는 걸 믿고 싶지 않았다. 판결문이 ‘삼성 왕조’의 우위를 확실히 일깨워준 뒤에야 애써 외면했던 몇 장면이 떠올랐을 뿐이다.


“아버님께 야단을 맞은 걸 빼고는 야단맞은 기억이 없는데, 여자분한테 싫은 소리를 들은 게 처음이어서 당황했다.”
1심 재판 때 이 부회장은 법정에서 박 전 대통령과의 독대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싫은 소리’라고 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대통령의 겁박’으로 포장했다. ‘상왕’ 외엔 누구도 못 건드린 그가 대한민국 대통령을 ‘여자분’이라고 칭한 대목도 인상적이었다.
그 ‘여자분’은 5개월 뒤 자필로 쓴 탄원서를 이 부회장 재판부에 내는 놀라운 장면을 보여줬다. 자신 때문에 줄줄이 옥살이하는 참모들 재판에 탄원서 한장 낸 적이 없는 그였다. 그때 ‘우주의 기운’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봤어야 했다.
그 기운은 판사들에게도 미친 듯하다. 삼성의 해외 송금 당시엔 뇌물 공여 의사가 없었다는 ‘관심법’이 등장했다. 송금한 돈은 최순실이 ‘쓸’ 돈이어서, 뇌물로 ‘쓴’ 것은 아니라는 헷갈리는 말로 형량을 줄였다. ‘삼성 합병’ 등의 청탁은 1, 2심과 최순실 1심을 거치며 ‘세상에 없는’ 일이 됐다. 동시에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으로 손해가 난 서민 노후자금 1300억원은 우주로 사라졌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이 부회장을 풀어준 정형식 재판장은 다음날 <조선일보>에 판결문에 담지 못한 말을 했다.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 생각이 정리되면 판결에 대해 담담히 얘기할 수 있을 때가 올 거라 믿는다.” 역시 그는 탁월했다. 판결 직후 느꼈던 막연한 분노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그와 판결을 감싸고 나선 동료 언론들. 박씨 왕조를 버리고 “판결에 경의를 표하는” 보수정당들. “1년 감방 살았으면 됐다”는 주변의 수많은 정형식들. 십자포화를 퍼붓고도 어쩌면 속으로 ‘할 만큼 했다’며 돌아서고 있는지도 모르는 우리.
이 모든 게 맞물려 저렇게 부끄러움을 모르는 판결이 나왔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담담히 얘기”하자는, 망각을 강요하는 듯한 조롱도 그래서 가능했을 것이다.
역시나 수십년 켜켜이 쌓인 부조리를 깨부술 ‘한판 승부’는 없었다. 한 방에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인정하고, 다시 공허한 마음을 추스를 수밖에.
쓸쓸하고 스산한 2월이 가면 꽃피는 춘삼월이 언젠가는 올 테니.

< 석진환 - 한겨레신문 법조팀장 >


사상 최초의 올림픽 남북 단일팀인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들이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세계인들 앞에 큰 감동을 전해주며 20일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스웨덴과의 7~8위 결정전에서 단일팀은 14일 일본전에 이어 두번째 골을 성공시키는 등 막판까지 최선을 다했다. 종료 휘슬이 울리자, 북쪽 황충금 선수가 남쪽 최지연 선수에게 달려가 포옹했다. 관중석엔 한반도기가 나부꼈다. 선수들은 링크 중앙에 함께 둘러서 “하나 둘 셋, 팀 코리아”라는 구호를 외치며, 짧았지만 큰 울림을 준 ‘팀 코리아’ 일정을 모두 마쳤다. 돌아보면, 숨가쁜 순간의 연속이었다. 대회를 한 달 남겨두고 급작스레 단일팀이 결정돼 선수들은 당혹스러워했다. 여론도 찬반양론으로 나뉘어 마음고생이 심했다. 그러나 남북 선수들은 함께 훈련하며 금세 ‘언니, 동생’이 되어 서로 돕고 감싸안았다. ‘승리’라는 같은 목표를 향해 함께 질주하며 울고 웃었다. 여기에는 세라 머리 감독의 리더십이 큰 역할을 했다. 논란 초반에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자’며 선수들을 다독이는 한편, “선수를 고르는 건 내 권한”이라며 중심을 잡아 남북 선수들이 모두 믿고 따를 수 있게끔 했다.


단일팀을 바라보는 시선은 각자 다를 수 있다. 누군가는 ‘우리는 하나다’라는 외침 속에 ‘작은 통일’의 감격을 누렸을 수 있고, 또 누군가는 정치와 이념을 떠나 젊은이들이 스포츠를 통해 하나 되어 땀 흘리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을 수 있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은 “남북 단일팀은 평화의 메시지를 전파했다”며 “이것이야말로 올림픽 정신”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앞으로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다시 만들어질지는 알 수 없다. 애초 단일팀을 제안했던 르네 파젤 국제아이스하키연맹 회장은 “2022년 베이징 올림픽 때도 단일팀이 출전할 수 있다면 돕겠다”고 말했다. 2021년 겨울 아시아경기대회의 남북 공동개최가 성사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는지 모른다. 그러나 만일 단일팀 논의가 다시 이뤄진다면, 이번 사례를 본보기 삼아 관계 당사자들과 일찍부터 깊이 있게 논의하는 등 차근차근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혼신의 힘을 다한 ‘팀 코리아’ 모두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이들이 안긴 감동은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