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이민사 프로젝트 논란

● 칼럼 2012. 5. 31. 15:56 Posted by SisaHan
이진수 토론토 한인회장은 합리적인 성품에 무리수를 두지 않는 스타일이라는 평을 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 그가 ‘이민사 편찬 프로젝트’를 나름대로 밀고 나가려다 쏟아지는 비판에 적잖이 당황했던 것 같다. 
서둘러 마련한 첫 공청회 자리에서 그는 “몰라서 용감했던 것 같다”고 여론수렴에 소홀했음을 인정하고, 시사 한겨레 보도를 언급하며 “지적이 고마웠다. 사실상 지면을 통해 공청회를 한 셈이었다”고 실토했다. 이 회장은 특히 “이번 호엔 무슨 내용이 실렸는지 시사 한겨레를 찾아 식품점을 뒤졌는 데, 정기휴간이라더라”고 솔직히 털어놓아 많은 인사가 참석한 좌중에서 웃음도 나왔다. ‘당황’과 진지함의 속내를 그 답게 꾸밈없이 털어놓은 셈이다. “사실 무관심이 제일 걱정이었다. 여러분의 염려를 유념하면서 좋은 작품을 만들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에는 박수도 터졌다. 진솔한 그의 비판수용과 궤도수정 뜻을 평가한 것이다.
하지만 이진수 회장의 전향적인 자세가 앞으로 어떻게 가시화 될지는 두고 봐야한다는 유보적 견해가 많았다. 이미 ‘프로젝트’ 화살이 시위를 떠난 상태에서 다양한 수정의견이 나왔기 때문이다. 또 공청회에서 쏟아진 의견들을 듣기는 했어도 해명에 무게가 실려, 명시적으로 변경된 사항은 나오지 않아서다.
 
사실 한인회의 이민사 편찬작업 윤곽이 드러나면서 여러모로 부실하다는 인상은 누구라도 조금만 살펴보면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밀실 작업처럼 알리기를 꺼려하며 몇몇이서 입맛대로 디자인하고, 지인과 관계사 위주로 사람들을 선정한 뒤 연내에 신속히 끝내겠다는 야심 아래 성급히 시행에 들어간 무리한 프로젝트』라는 이구동성의 심증과 공감대가 번졌다. “동포들 수준과 한인사회를 경시한 게 아니냐”는 불만도 나왔다.
그런데 더욱 답답하고 아쉬웠던 것은, 중요한 사안을 여론 수렴 없이 일방추진하면서도 아무런 문제의식을 갖지못한 한인회와 이사회의 무신경에 대한 지적이었다. 또 ‘필진으로 선정됐으니 참석하라’는 통지를 받고 나간 첫 회합에서 일방적 집필통고를 받고 계약서에 사인까지 한 다수 필진들이 현장에서 단 한가지도 프로젝트의 ‘외화내빈’을 지적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한 성토였다. 더욱이 그들이 속한 일부 언론 또한, 연이어 분출하는 문제제기에도 모른 척, 꿀먹은 벙어리처럼 모르쇠로 일관한 모습이 한심하다는 비판이었다. “‘필진에 들어갔으니 만사 OK’ 라면 문제다. 아무리 그렇다해도 ‘이런 식으로는 무리가 아닌지?’라는 의문을 표하는 것이 프로젝트 자체의 성공을 위해서나 필진으로써의 양식에 비추어서도 타당한 게 아니냐”는 한 전직 한인회장의 지적이 귀에 생생하다.
한인 밀집지인 미국 LA의 오렌지 카운티 동포들이 몇해 전 한인이민사를 편찬했는데, 고급 양장으로 비싼 돈을 들여 아주 멋진 책자를 만들어 냈지만, 나오자마자 비난에 휩싸이며 ‘쓰레기통 신세’가 돼 버렸다고 했다. 재임 중 이민사 편찬을 모색하며 사례를 알아봤던 이상훈 전 한인회장이 전해준 실화다. “기대를 걸고 재원을 모아줬는데, 몇몇이서 자기들 입맛대로 만든 결과였다”는 것이다.
 
“과거 어느 한인학자가 캐나다 정당사를 펴냈는데 자료 번역도 잘못하고 검증도 안돼 신민당의 전신이 ‘공산당’이 돼서 망신을 당한 일이 있다. 그런 책이 도서관에 비치되고 다른 나라에도 가니 무슨 창피인가. 역사는 객관과 공정을 기하려 노력하는 게 필수다. 역사기록은 어려운 일이다. 신중을 기해야 한다. 진실이 기록되지 않으면 후세까지 문제가 된다. 그래서 필진은 품격있고 공정하며 객관성을 지녀야 한다.” (이경복 북한인권협의회장) 
이같은 타산지석의 비판과 충고들은 이민사편찬 작업이 졸속으로 추진 중이라는 시사 한겨레 보도로 널리 알려지면서 사방에서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특히 한인사회 경륜이 오랜 원로들과 전직 한인회장 등에게는 직접저인 이해가 없지 않아 예민한 문제이기도 했다. 
한인회가 이런 격앙된 분위기의 진화에 나선 것은 늦게나마 천만 다행이다. 서둘러 전직 한인회장들을 초치해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쓴소리를 들은 데 이어, 공청회를 개최하는 성의도 보였다. 조직을 보완하고, 제작기간도 신축성을 두겠다고 다짐했다. 갈등과 말썽의 소지를 방치하기보다 일단 ‘여론청취’의 자세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지적된 문제점들을 얼마나 보완하고 개선할지는 여전히 남은 과제요 현안이다. 보완하겠다는 ‘기구’의 인적구성과 실질적인 운용부터가 그렇다. 
모든 일이 ‘시끄러우니 일단 피하고 보자’는 식이라면 잠시 문제는 덮일지 몰라도 나중 틀림없이 뒷탈이 나게 되어있다. ‘시끄러움’의 핵심이 지혜를 모아 최선의 작품을 만들자는 것일진대, ‘최선의 작품’, 즉 ‘공동의 선(善)’은 다중의 의지와 양식과 역량의 집산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