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 IT 한국, 미래는?

● 토픽 2012. 6. 9. 16:40 Posted by SisaHan

최고 인프라·괴상한 규제… 두 얼굴 IT 한국, 미래는?
인터넷 30년 … 전망과 과제

2020년 98% 신 정보‥ M2M 고도 네트워크화
개인 탈사회화 심각, 정보 독점 ‘스마트 군주’ 나올 것

지금은 일상이 된 인터넷쇼핑이나 온라인뱅킹도 한때는 공상과학(SF) 소설에나 나옴직한 일이었다. 30년 전인 1982년 5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와 경북 구미 소재 전자기술연구소의 중형컴퓨터가 1200bps 전용선으로 연결되면서 시작된 이 땅의 인터넷은 이런 가상을 현실로 만들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빅뱅이 일어났다. 편지가 사라지고 전자우편이 보편화했으며, 전자상거래, 온라인 주식거래, 전자정부, 온라인게임, 인터넷 텔레비전, 이(e)-러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인터넷에 기반을 둔 다양한 서비스가 생겨났다. 각종 여론이 온라인을 통해 형성돼 정부와 정치인들이 인터넷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정보기술(IT) 산업은 어느새 우리 경제의 주역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았다. 
미래는? 예측 자체가 어렵다. 시간이 갈수록 변화 속도가 빨라지고, 변화의 폭도 커지기 때문이다. 분명한 사실 가운데 하나는 정보의 폭증이다. “2020년엔 지금 인터넷에서 유통되는 정보가 2% 정도의 비중으로 떨어질 것이고, 나머지 98%는 새로 만들어진 정보로 채워질 것이다. 현재 20억개인 인터넷 접속점(노드)도 1000억개로 늘어날 것이다.”(서울대 컴퓨터공학부 최양희 교수)
 
불과 8년 뒤 지금보다 수십배 많은 정보가 넘쳐날 것이라는 얘기다. 이는 고도로 네트워크화된 사회가 도래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최근 주목받기 시작한 사물인터넷과 클라우드 서비스를 보자. 사물인터넷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 도구라는 기존의 인터넷 개념과 대비되는, 기계와 기계(M2M) 사이 인터넷을 가리키는 말이다. 버스에서 운행신호가 버스정류장으로 보내져 도착시간을 알리고, 계량기에서 전기나 수도 사용량이 사업자에게 자동으로 전송되는 게 대표적이다. 이런 사물인터넷이 보편화하면 인간의 삶은 더욱 편리해질 것이다. 네트워크상에서 컴퓨터(서버) 기능을 제공해 기업이나 개인은 단말기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는 클라우드 서비스도 효율적인 네트워크 사회 구축을 앞당길 것이다. 아마도 그때가 되면 개인은 스마트폰(또는 다른 간편한 휴대용단말기) 하나로 직장일, 집안일, 운전, 건강체크 등 온갖 사회·경제적 활동을 영위하게 될 것이다. 
그즈음엔 경제 지형의 격변도 불가피하다. 인터넷에 기반을 둔 IT산업의 영역이 크게 확장될 것이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한NFC칩이나 QR코드 결제가 일반화되면, 별도 비용을 줘가며 밴(VAN) 사업자가 제공하는 결제 단계를 거쳐야 하는 신용카드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 애플과 구글이 기존의 업종 경계를 허물며 글로벌 기업으로 일어섰듯이, 수많은 IT기업들이 금융 등 전혀 색다른 영역에 진출해 강자로 떠오를 것이다.
 
정치와 사회 영역에서의 여론 형성, 정책 집행 방식도 변할 것이다. 태생적으로 수평적인 인터넷은 정보의 차이 및 그에 따른 권력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수직적인 관계를 거부한다. 구체제를 유지하려는 기존 권력과 이를 거부하는 평범한 다수 사이의 충돌 및 긴장 속에서 인터넷은 진화하고, 시간은 결국 ‘변화’ 쪽의 손을 들어줄 것이다. 
이 대목에서 짚어봐야 하는 점은 미래 인터넷 세상에서 정부의 구실이다. 웹브라우저 다양성 운동을 펼쳐온 고려대 김기창 교수(법학)는 한국의 인터넷 30년 역사를 ‘이중성’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네트워크 인프라와 세계 어떤 나라에도 없는 괴상한 규제가 공존해왔다”는 것이다. ‘괴상한 규제’로는 인터넷 실명제와, 인터넷상의 게시글을 임의로 내릴 수 있도록 한 정보통신망법의 임시조처를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비정상적인 규제들은 표현의 자유 위축뿐 아니라 우리나라 정보기술 산업의 퇴보를 불러왔다. 하루 평균 방문자 10만명 이상 사이트의 게시판 등에 적용되는 인터넷 실명제(제한적 본인확인제)에서 그 확인 수단은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주민등록번호다. 어떤 사이트(사업)가 인기를 끌게 되면 한국 고유의 규제 대상이 된다는 얘기다.
 
정부는 정보화 터전 닦기(1980년대), 이동통신 혁명(1990년대), 인터넷 혁명기(2000년대)를 거치며 적극적으로 IT산업 부흥 정책을 펼쳐왔다. 우리나라가 지난해 초고속인터넷 가입자 1위, 유엔 평가 전자정부 1위, 국제전기통신연합(ITU) 평가 정보통신기술(ICT) 이용도 1위를 기록한 배경이다. 정부가 이런 촉진책에서 나아가, 괴상한 규제를 주된 역할로 고집한다면 미래의 한국 인터넷 세상은 암울할 수밖에 없다. 
관련 업계와 학계에서는 미래 인터넷 세상에서 정부의 역할에 관한 논의를 시작했다. 지난달 방송통신위원회 주최로 열린 ‘미래 인터넷 콘퍼런스 2012’를 한 예로 꼽을 수 있다. 이 자리에서 정보통신정책연구원 김사혁 부연구위원은 “정부는 공급 및 기술 주도의 산업촉진 정책에서 벗어나 참여와 협력을 통한 가치창출을 촉진하는 생태계 활성자 역할로 전환해야 한다”며 “인터넷 대·중소기업간 불공정거래 개선 등에 역점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은 괴상한 규제를 고집하는 후진적 마인드를 고치는 일이다. 규제의 이면에는 정치권력의 이해관계가 자리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또 그런 정치권력은 주기적으로 유권자의 선택과 심판을 받는다. 결국 인터넷을 실제 꾸려가는 사용자(유권자)들의 의지와 참여가 큰 틀에서 규제 여부와 그 수준을 좌우한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