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태’ 지적한 재일 강상중 교수 인터뷰


▶ 광복절 68돌(15일)이다. 우리는 과연 일본 식민지배의 유산을 얼마나 청산했는가.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친일 부역이 더 큰 문제일까, 박근혜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르는 것이 더 큰 문제일까. ‘귀태 논란’을 보면 해답이 보일지도 모른다. 한국 국적의 재일동포로는 처음 일본 종합대학 총장으로 선임된 강상중(62: 사진) 일본 세이가쿠인(성학원)대학 교수가 한국의 식민지 청산과 일본의 우경화를 진단하고 자신의 책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를 통해 한국에 처음 소개했던 ‘귀태’ 논란에 관해 견해를 밝혔다.
1998년 4월 한국 국적자로는 처음 도쿄대 정교수(사회정보연구소)로 임용됐던 강상중교수는 지난 4월 16년간 몸담았던 도쿄대를 떠나 일본 사이타마현 아게오시에 있는 세이가쿠인대로 옮겼다. 강 교수의 전공 분야는 일본 근대와 식민지 지배 역사였다. 도쿄대 재직동안 그는 전공 분야를 넘나드는 활발한 저술 활동과 TV출연 등을 통해 지식인으로는 드물게 폭넓은 인기와 대중적 영향력을 함께 얻었다. 특히 에세이집 <고민하는 힘>은 100만부가 넘게 팔리기도 했다. 그가 최근 일본에서 출간한 소설 <마음>은 먼저 떠나보낸 그의 아들에 관한 이야기다. 

한·일 가교 되려 옮긴 세이가쿠인대
-재일동포로는 처음 일본 종합대 총장 자리에 올랐다. 소감을 듣고 싶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제2의 인생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남은 인생을 보낼 수 있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었다. 잠시 ‘작가로서 글에 파묻혀 지내볼까’ 하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 가운데 역시 젊은이를 가르치고 싶다는 쪽이 더 강했다. 마침 지난 4월 옮겨온 세이가쿠인대의 모든 구성원이 만장일치로 나를 학장으로 맞아줬다.(학장은 한국 대학교의 총장에 해당한다) 새로운 곳에서 맡게 된 새로운 일에 큰 의욕을 갖고 있다.”

-내년 4월부터 5년간 총장 임기를 시작한다. 목표나 계획은 뭔가?
“아직 구체적으로 가다듬지는 못했다. 이 대학은 기독교 정신에 뿌리를 둔 독특한 대학인데, 우선 일본 전국의 학생이 모이는 대학으로 만들고 싶다. 한국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여러 나라의 유학생도 받아들이고 싶다. 한국과 일본의 교류 강화에 기여하는 대학을 만들고 싶다는 게 포부다.”

보통국가의 길은 개헌 아닌 과거사 반성
-지난 7월21일 일본 참의원 선거는 자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강 교수는 지난 1월인터뷰에서 일본 헌법을 개정해 ‘전범 국가’가 아닌 ‘보통 국가’로 나아가고자 하는 아베 정부의 구상이 참의원 선거를 기점으로 본격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는데,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나?
“자민당이 압승했다는 분석은 정확하지 않다고 본다. 득표수를 기준으로 하면 자민당이 지지자를 많이 늘린 것이 아니라 야당이 약했던 것이다. 투표율이 52%대에 그쳤다는 점도 중요하다. 일본 국민의 거의 절반은 투표를 하지 않았다는 건데, 이는 곧 뽑고 싶은 정당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한국에서도 이 지점을 정확히 봐줬으면 좋겠다. 다만 일본에서는 그동안 참의원과 중의원의 다수당이 다른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 선거로 자민당은 참의원과 중의원을 모두 장악했다. 다음 중의원 선거가 3년 뒤에나 치러질 텐데, 아베 정부가 매우 유리한 정국 운영 조건을 갖춘 것은 사실이다.”

-아베의 ‘레짐 체인지’도 빨라질 수 있는 것 아닌가?
“자민당은 스펙트럼이 넓은 정당이지만, 아베 총리와 생각이 다른 자민당 내 다른 계파 반대가 없다면 레짐 체인지는 한걸음씩 나아갈 수 있다. 우선 헌법 해석 담당 부처인 내각 법제국 장관 인사 때 이 자리에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찬성하는 사람을 앉힌 것은 ‘레짐 체인지’의 포석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일본이 곧 다른 나라처럼 군대를 보유하고 교전권을 갖는 ‘보통 국가’라면, ‘레짐 체인지’는 보통 국가에 이르는 과정을 즉 헌법개정을 가리킨다.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방향으로 헌법 해석을 고치려는 의도는 어디에 있다고 보나?
“일본 헌법 9조에서는 육해공군 등 어떠한 전력도 보유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지만 실제로 일본 자위대의 전력은 세계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막강하다. 일본은 이를 실질적인 군사력으로 인정받아 다른 나라에서 운용하고자 하는 욕망을 품고 있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허용하자는 식으로 헌법 해석을 바꾸자’, ‘지금의 헌법에 따른 자위대의 이름을 국방군으로 바꾸자’ 등의 주장이 나오는 배경은 이런 욕망에서 비롯하고 있다.”

-아베 정부는 이번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헌법 9조의 개정에 앞서 개헌 절차를 규정한 헌법 96조의 개정 공약을 내세웠다. ‘평화헌법’으로 불리는 헌법 9조 개헌을 위해 헌법 96조부터 먼저 공략하겠다는 것인데, 가능하리라고 보나?
“간단하지만은 않다. 일단 헌법 개정 국민투표 발의에 필요한 참의원 3분의 2를 확보하지 못했다. 여론의 반대도 만만치 않아 국민투표를 통과할지도 의문이다. 물론 과거보다는 개헌을 위한 여건이 좀더 만들어진 것은 사실이다.”

-일본이 헌법 개정 등 보통 국가 구상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한-일 관계는 험악해질 수밖에 없다.
“일본과 같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가인 독일은 어느 정도 보통 국가라 할 수 있다. 독일이 일본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대규모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일본은 (비핵보유국 가운데 유일하게) 핵물질(플루토늄)은 물론 핵 재처리 시설과 핵연료 사이클(핵물질 추출·제조 공정) 기술을 갖고 있다. 과거사 청산과 관련해서도 독일은 일본과는 견줄 수 없을 정도로 이웃 나라의 신뢰를 얻었다. 과거사 문제로 한국이나 중국과 여전히 갈등을 겪고 있는 일본은 독일과 다르다. 일본이 보통 국가를 건설하고 싶다면 적어도 역사 문제만큼은 독일을 배워 한국과 일본의 신뢰관계를 구축했어야 했다.”

-일본 정부 각료일부가 일본의 종전기념일인 15일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한다고 한다. 아베 총리도 재임 기간 꼭 야스쿠니에 참배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알고 있다. 대다수 한국인은 일본 정부의 이런 태도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한-일, 중-일 정상회담은 열리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일본 정부 인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미국의 반발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A급 전범을 합사한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태평양전쟁에 대한 일본의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일본은 참배로 한국과 중국, 미국 등 모든 주요 나라의 반발을 살 수 있다. 야스쿠니신사는 일반적인 종교시설이 아니라 태평양전쟁 전몰자 추도 시설의 기능도 지니고 있다. 일본 국민 가운데에는 야스쿠니 참배가 이런 의미를 갖는지 잘 모르는 사람이 있다. 고이즈미 정부 이후 많은 일본 국민은 정부 인사가 8월15일에 맞춰 야스쿠니에 참배하면 한국과 중국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한국전쟁 없었다면 식민지 청산 됐을 것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한-일 양국 간 주요 현안으로 남아 있다. 이와 관련해 아베 총리는 위안부 강제동원의 역사를 부정하는 등 문제적 시각을 드러냈다. 심지어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 담화’(1993년)와 침략과 식민지배를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1995년)까지 뜯어고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고노 담화는 당시 일본 정부의 합의 아래에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이 발표한 공식 담화였고, 무라야마 담화도 무라야마 도미이치 당시 총리의 개인적 입장이 아니라 내각 전체의 견해였다. 무게가 있는 것이었다. 아베 총리는 이를 고쳐 아베 담화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적이 있다. 지금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 고노 담화를 수정한다면 예컨대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은 객관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등의 문구를 넣으려고 할 텐데, 이를 바꾸는 일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을 것이다.”

-과거사 인식은 일본만의 문제는 아니다. 광복절 68돌을 맞는 한국도 식민지 유산의 청산이라는 과제로부터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것 아닌가?
“일본이 한국 사회에 남긴 식민지 유산은 넓고 깊다. 특히 일본제국주의와 만주국의 인맥이 세대를 거듭하며 한국 사회에 영향력을 갖고 있다. 그들 인맥은 ‘표면적’으로 한국의 압축적인 근대화를 이끄는 구실을 했다는 인상을 국민에게 깊게 남기고 있는데, 그것이 커다란 유산이 되고 있다. 이는 물론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와도 관련이 된다.”

-식민지 유산의 청산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뭐라고 보나?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전쟁에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전쟁과 분단이 없었다면 식민지 유산의 청산은 상당히 이뤄졌을 수 있다. 프랑스는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나치 협력자에 대한 청산 작업을 강력히 추진했다. 이와 달리 한국은 식민 지배에 이은 전쟁과 분단이 결정적이었다. 식민 지배에 의한 피해를 회복하기에 앞서 대규모 전쟁을 겪는 과정에서 한국 국민의 피해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남북분단이 지금까지 해소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남북관계마저 험악하니 식민지 유산 청산보다 냉전 체제에 입각한 반공주의가 우선시될 수밖에 없었다. 이중의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의 식민지 유산 청산은 앞으로도 꽤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본다.”

-지난 7월 한국 정치권에서는 강 교수의 책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에서 나오는 ‘귀태’라는 표현을 둘러싸고 격한 논란이 있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나?
“귀태라는 용어는 한국과 일본에서 조금 다른 의미로 쓰인다. 일본보다 한국에서 좀더 안 좋은 표현으로 통하는 것 같다. 귀태라는 용어를 처음 쓴 사람은 일본의 유명한 작가 시바 료타로였다. 그는 자신의 책 <이 나라의 모습>에서 1905년 일본이 대한제국의 국권을 빼앗은 시점부터 (전쟁이 끝난) 1945년 8월15일까지를 ‘일본 역사의 귀태’라고 표현했다. 그에게 이 시기는 메이지시대 초기의 상대적으로 건전한 민족주의가 군국주의에 의해 왜곡된 시대였다. 나는 거기에서 영감을 얻어 귀태라는 표현을 썼다. 일본은 1905년 러일전쟁에서 이겨 만주로 진출했는데, 그렇다면 만주국이란 존재는 귀태의 소산이라는 뜻이었다.”

-실제 책에는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전 대통령 등 ‘만주 인맥’을 가리켜 ‘제국의 귀태’라고 표현한 대목도 나온다. 한·일 두 나라에서 ‘유신공화국 부활’, ‘군국주의의 부활’ 등의 우려가 나오고 있다.
“만주국이란 귀태의 한가운데에서 정치가로서의 기반을 닦은 사람이 기시 노부스케였다면, 박정희 전 대통령은 다카기 마사오라는 이름으로 만주의 군관학교에서 군인의 길을 걸었다. 두 사람의 청춘이 시작해서 끝난 곳이 만주국이었다.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 같은 시기에 두 나라에서 최고 권력자가 됐다는 사실은 우연일 수 있겠지만, 어떤 역사의 인연 같다는 느낌도 든다. 또한 일본에서는 전쟁 이전과 이후에 대해 노스탤지어(향수)와 반성이라는 흐름이 함께 나타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기시 노부스케와 같은 A급 전범이 다시 높게 평가되는 일이 있다. 이런 현상은 한국에서도 거의 유사하게 엿보이고 있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곳곳에서 ‘박정희 기념 도서관’과 그의 동상, 심지어 그의 부인 육영수씨 생가도 복원하고 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는가?
“거꾸로 생각하면 그런 현상은 민주화에 대한 한국민의 기대치가 지나치게 높았고, 그에 따른 실망도 컸다는 의미이다. 민주화 열망은 단순히 민주주의의 실현만을 바란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계층간의 격차를 해소하고 삶의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바란 것인데, 현실은 그와는 반대였다. 실업률이 높아지고 소득 수준이 떨어지니 결혼하지 못하는 젊은이도 늘었다. 앞서 말한 식민지 유산, 또 개발독재의 유산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금의 한국과 일본의 젊은이들은 하나의 정치세력을 형성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곳곳에서 희생양을 찾는 등 상당히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다. 한국에서는 그 창끝이 민주화 세력을 향하고 있다면, 일본에서는 리버럴(자유주의자)로 불리는 세력과 미디어, 재일한국인 등에게 꽂혀 있다. 프랑스에서는 극우파 정치인 장마리 르펜(국민전선 전 대표)이 등장했을 때 비슷한 지적이 나왔다. 나는 좋으냐 나쁘냐를 떠나, 이런 한국과 일본 모두 선진국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본다.”

-한국에서는 안보담론이 다른 모든 사회 이슈를 압도하는 현상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국가정보원의 대통령선거 개입 사건만 봐도 그렇다. 많은 한국인이 이런 현실에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 최근 한국의 상황은 어떻게 보나?
“역시 가장 큰 문제는 북한이다. 국제적으로 고립된 북한의 핵개발이나 공격적 태도가 점점 강하게 부각될수록, ‘국가 안보’는 다른 의제를 압도하는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이는 국가주의로부터 벗어나는 걸 어렵게 하는데, 여기서 무력감과 폐색감(꽉 막힌 기분을 뜻함)이 생길 수 있다. 이를 넘어선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과제다. 주류 언론의 폐해가 상당히 크고, 여러 대안 언론의 역량은 아직 미약하다. 시민사회도 안보지상주의에 물든 모습을 보이고 있다. 손쉬운 해법은 있을 수 없다. 다만 남북관계에 대한 해법은 남과 북 두 나라만의 문제로 접근하기보다 주변국과의 다자간 협력의 틀 속에서 논의돼야 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 안보지상주의도 누그러뜨릴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남북문제를 남북관계로만 접근해서는 풀기 어렵다.”
< 도쿄 정남구 특파원·최성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