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용 무인기 시대

● 토픽 2013. 9. 30. 10:50 Posted by SisaHan

생활용 무인기 시대
본격 ‘이륙’ 채비

군에서 정찰이나 소규모 공격용으로 쓰여온 원격조종 무인항공기(unmanned aircraft 또는 drone) 드론이 실생활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전장에서 살상용으로 쓰여온 공포의 물건이 미래의 생활용품으로 변신해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엔 <역사의 종언>으로 잘 알려진 미국의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직접 드론을 만들어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가 만든 것은 카메라를 장착한 ‘쿼드콥터(quadcopter·프로펠러가 4개인 헬리콥터)’인데, 그는 이 드론으로 자신이 몸담고 있는 스탠포드대 야구장을 찍어 유튜브에 동영상으로 올리기도 했다.
미국 통신의 피터 스벤슨(Peter Svensson) 기자는 이번 여름휴가 때 팬텀(Phantom)이라 불리는 헬리콥터 형태의 무인 항공기를 직접 시험해 본 뒤 체험기를 기사로 썼다. 스벤슨은 팬텀에 설치된 비디오카메라로 어린 시절 지냈던 집 풍경을 공중에서 촬영했다.
 
이 팬텀은 DJI라는 중국기업이 만든 것으로 가격이 700달러다. 사방 30cm 크기에 4개의 프로펠러로 이루어진 이 무인기는 가격이나 활용도면에서 현재 미국에서 무인기 대중화의 최전선에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스벤슨은 전했다. 항공사진에서부터 짐 배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과거 애플의 애플2가 개인용 컴퓨터 시대를 연 것처럼 팬텀도 무인기 시장에 그런 이정표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고 예상한다.
팬텀은 내장 카메라를 기본으로 제공하지 않지만, 고프로(GoPro)라는 초소형 액션 캠코더(action camcorder)를 위한 거치대를 갖고 있다. 200달러만 더 주면 액션 캠코더도 설치할 수 있다.
 
사실 원격제어 항공기는 수십년 전부터 있어 왔다. 팬텀은 이전 제품과 어떠한 차이가 있길래 주목을 받을까? 우선, 이 무인 항공기는 배터리 기술, 전자장치 및 위성 위치 확인 시스템(GPS) 덕분에 비행하는 것이 훨씬 더 쉽다. 심지어 바람이 불어도 비행 중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위성 위치 확인 시스템(GPS) 칩을 사용하며, 스마트폰에 쓰이는 것과 같은 배터리를 단 한 번 충전해 거의 10분 동안 비행할 수 있다.
두 번째 혁신은 1인칭 시야(FPV: first-person view)이다. 이것은 무인 항공기가 비행할 때 설치된 카메라를 이용하여 볼 수 있는 것으로, 사용자는 시계를 벗어난 곳으로 무인 항공기를 자유로이 보낼 수 있으며, 양질의 비디오를 쉽게 포착할 수 있게 한다. 예컨대 미군 조종사라면 이 기술을 이용해 무인 항공기로 수천㎞ 떨어진 아프가니스탄 상공을 순찰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무인기가 대중화할 경우 그 용도는 실로 다양하다. 화재나 붕괴 등 재해 현장에서의 수색 작업은 물론 오지나 생태 관찰 등 연구 목적용으로도 요긴하게 쓸 수 있다. 법적으로 허용되기만 하면 기업들은 피자나 우편물 등 매우 다양한 용도에 당장 써먹으려고 할 것이다. 맥도날드나 페덱스는 실제로 이런 홍보 동영상을 제작해 미래 고객을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드론 저널리즘’ 탄생도 예상된다. 기존 카메라로는 접근하기 어려운 오지나 빌딩 사이사이를 다니며 생생한 현장 취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격도 갈수록 저렴해지고 있다. 스벤슨 기자는 팬텀을 700달러에 구입했지만, 아마존닷컴에서는 현재 679달러(약 70만원)에 할인 판매되고 있다. 레크레이션용으로 쓰이는 프랑스 패럿의 에어드론(AR.DRONE)은 40만원대다. 가격이 낮아지면서 벌써 미국에서만 이런 소형 드론이 4만개 이상 팔려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군사용 드론이 1만여개로 알려져 있는 것과 비교해보면 대중의 관심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소형 개인용 드론이 향후 10년간 미국 GDP에 10억 달러를 보태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물론 걱정스러운 면도 무시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이제까지 접근하지 못했던 곳까지 촬영이 가능해짐에 따라 곳곳에서 사생활 침해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물론 파파라치들에게는 요긴한 장치이지만 말이다. 또 전자신호를 방출하지 않기 때문에 추적이 불가능해 범죄나 테러용으로 사용될 경우 끔찍한 결과를 빚을 수도 있다.
따라서 무인기가 실제 생활에 사용되려면 이런 장벽들을 넘어야 한다. 9.11테러를 경험한 뉴욕에서는 현재 허가 없이 어떠한 형태의 비행체도 허용되지 않는다. 이런 규제는 시민들의 안전을 위한 것이므로 사회적으로는 규제에 따른 이득이 훨씬 클 수 있다.
사고의 위험성도 있다. 팬텀과 같은 무인 항공기가 사람을 향해 추락한다면 부상을 입힐 수 있으며, 고속 회전하는 프로펠러 날개는 사람의 눈에 실제로 큰 손상을 입힐 수 있다.
 
현재 미국은 군사 훈련, 순찰, 재난구조, 학술 실험 등 공익 목적 무인기에 대해서만 고도 122미터 이내 운항을 허용하고 있다. 공항 주변은 무인기 운항을 금지하고 있다. 미 의회는 2015년까지 상업적 용도로도 무인기를 띄울 수 있도록 해줄 것을 연방항공청(FAA)에 요청했다.
프로펠러 진동시 화면이 흔들리는 현상이나 프로펠러가 물체와 충돌시 망가질 수 있는 가능성 등 기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도 아직 여럿 있다.
스벤슨 기자는 자신이 체험한 팬텀에 대해 “접근성은 좋아졌지만 성능면에서는 아직은 제1세대처럼 느껴진다”며 “그래서 마니아층은 좋아할 수 있지만, 순전한 아마추어는 당황스러울 것”이라고 총평했다. 현재로선 가정용 드론은 아직은 진정한 소비자 제품이라기보다는 취미 애호가용 제품에 더 가까운 수준이다. 그러나 드론 앞에 열린 무궁무진한 시장을 기업들이 그냥 두고볼 리는 없으니, 정식 소비자제품으로 등장할 날도 그리 멀지는 않은 듯하다.
< 곽노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