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한인 사회에 공식 등장했다. 추진중인 사업을 영상자료도 준비해 설명하고, ‘교민사회를 위해 기여도 할 생각’이라고 다짐까지 했다. 참 역사적인 일이다. 반세기에 가까운 이 땅의 한인이민사에 대기업 삼성의 ‘신고식’은 지금 껏 없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기업으로 세계 유수의 기업군 반열에 오른 삼성은 자랑스럽게도 한국기업이다. 하지만 한인 동포사회에서 삼성은 세계적 기업의 하나일 뿐 동포들과는 별로 연관이 없는, 신문이나 방송에서만 보고 들어온 기업체였을 뿐이다.
캐나다 사회에도 삼성의 휴대폰이 유행하고 TV 냉장고 등의 삼성 가전제품을 매장에서 볼 수 있지만, 또 삼성의 캐나다법인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 삼성맨들이 한인사회 공식 석상에 등장해 얼굴을 내 보이고 동포들의 이해와 협조를 구하는 장면은 사상 처음 ‘발생’한 것이다.

지난 9일 저녁 한인회관에서 있었던 ‘동포단체장 간담회’ 자리에서다.
이날 참석한 1백여명의 동포사회 각계인사들은 처음에 덕담들을 주고받았다. “동포사회 발전을 위해 단체장과 원로 등을 초청해 간담회를 갖겠다“고 한인회가 나서기는 근래 드문 일이었기에,  “새 회장단이 좋은 일을 하셨다. 고맙다” 한 원로는 그렇게 칭찬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농반 진반의 이야기였지만, “지금 껏 한인회 행사에서 나온 뷔페로는 최고급이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차려진 성찬을 마친 뒤였다. 한인회는 음식을 삼성측이 준비했다고 나중에 알렸다. 삼성은 이날 참석자들에게 휴대용 USB를 일일이 선물하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행사가 끝난 뒤에는 자리를 뜨는 인사들의 볼멘소리가 튀어나왔다.  삼삼오오 주고받는 말들은 “한인회 발전을 논한다더니 이렇게 끝나면 어떡하나? 결국 삼성설명회를 포장한 거였구먼!” “한인회 지붕이 새서 야단인데 그런 문제들은 언제 얘기 할려고!”…
참석자들의 불평 그대로 이날 행사는 ‘제주 7대 경관 캠페인’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제외하고는 ‘삼성 프로젝트 설명회’에 머물렀다. 사전에 20분을 약속했는데 너무 길어졌다‘고 한인회는 해명도 했다. 하지만 삼성 설명회가 끝난 뒤에 진행 예정이던 ’동포사회 발전 간담회‘는 기조연설에 나선 조성준 시의원도 삼성을 성원하는 말과 함께 ”한인사회가 뭉쳐야 한다“는 선에 그친 뒤로는 다른 발언자 하나 없이 곧바로 끝나버려 애당초 구색 맞추기였음을 드러냈다.

삼성은 이날 부사장, 법인장 등 고위 직원들이 나서 최근 온타리오에서 정치적 논란대상이 된 주정부 발주 신재생 그린에너지 프로젝트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온주의 야당인 보수당이 정치적으로 근거없는 트집을 잡고 있고, 그래서 공연히 불안한 상황이 되면 은행융자 등에 차질이 생겨 사업추진이 어려워진다는 점 등을 동포들에게 알려 협조를 구한다고 했다. 사업이 잘 추진되면 앞으로 고용대상에 동포들도 포함시킬 예정이라고 밝혔다.
참석자들은 어떻든 박수로 이들을 환영했다. 모국의 세계적 기업이 하는 일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다를 수가 없었다. 우리가 사는 이민 땅에도 한국의 대기업이 세계적인 프로젝트를 성공시켜 기술과 명성을 빛내면 더 이상 가슴 뿌듯할 일이 있겠는가.
그러나 자리를 뜨며 여기저기서 투덜거린 것처럼 참석자들은 왠지 찜찜하고 뒷맛이 개운치 않은 표정들이었다. ‘대 삼성’의 사업과 설명을 직접 접하고 대접도 받으니 싫지는 않다지만, 관심 밖이던 그들의 돌연한 등장이, 뭔가 뻔한 계산 속인 것만 같아서 일 게다.
지난해 체결했다는 대규모 프로젝트가 지역 정가에서 논란을 빚고, 그 사실이 주류언론에 보도되면서 정치문제로 비화하자 당황한 삼성의 눈에, 비로소 한인이민자들도 한 표를 행사하는 유권자들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아닌지, 그래서 부랴부랴 “내용을 알려드리고 협조를 구하겠다”고 나선 것이 다급한 첫 등장의 배경이 아니었느냐는 것이다.

캐나다에는 한국의 대기업들이 대부분 나와있다. 그들은 지상사협의회라는 모임으로 뭉쳐있다.그러나 한인사회와는 거리를 두고있고, 동포들을 대하는 그들의 평소 시선은 ‘해달라는 것만 많은 귀차니즘’으로 통칭된다. 
다수 동포들은 한국기업과 상품도 모국의 일부로 생각하며 애정을 보낸다. 해외진출 기업들이 잘 되면 모국도 부국이 되려니 염원하며-. 
그런데 그들의 행태를 보면 짝사랑일 뿐이라는 자괴감에 빠지고 만다. 이웃 일본·중국의 기업들과 너무 대조된다는 지적과 함께.
모국의 기업들이 동포사회를 따뜻하게 뒷받침 해주고, 동포들이 모국기업의 든든한 애용가, 후원자, 홍보그룹이 된다면 서로가 시너지효과를 거두지 않겠는가. 그 것이야말로 ‘나눔과 함께 가기’의 작은 동족애 실천일 것이다. 삼성의 동포사회 첫 데뷔는 그래서 씁쓸한 상념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