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영의 <천둥소리>라는 소설로 기억한다.
때는 한국전쟁 당시. 달도 안 떠 칠흑같이 어두운 밤 정적 속의 산간마을에 갑자기 정체불명의 무장괴한들이 닥쳐 총부리를 겨누며 묻는다. “좌면 손등을, 우면 손바닥을 내보이라.”
고단한 일상에 쫓겨 자신이 좌익인지 우익인지 가늠할 여유조차 없었던 이 땅의 수많은 양민들은 실로 어처구니없게도, 단지 물음과 답변의 어긋남만으로도 죽음을 맞아야 했다.
소설 속의 이야기지만, 소설 같은 실제 이야기다. 따지고 보면 총알이, 포탄이, 공중폭격이 어디 좌우 이념 따져 사람을 죽이고 살리고 했던가. 스스로 좌 또는 우여서 당해야만 했던 운명이었다면 그리 억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들(주류든 비주류든 이들은 ‘완장’이다)의 필요와 요구로 좌 또는 우라는 굴레를 뒤집어쓰곤 영문도 모른 채 죽어야만 했던 사람이 무려 100만명에 이른다.
그렇게 죽어간 사람들에게 이념과 사상이란, 그저 화려한 장식장 속의 귀금속처럼, 감히 넘볼 수 없는 고가의 사치품이나 다름없었으리라. 좌우? 그게 어느 나라 짬뽕이던가?

주류든 비주류든 권력을 위해 쟁투하던 엘리트들에게는 좌우의 문제가 사상적 순결성과 정치적 생사존망을 다투는 중차대한 문제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싸움판에서 죽어나간 건 정작 그들이 아니라, 그야말로 무고한 양민들, 바로 우리의 부모형제, 친척, 이웃들이었다.
평생 사상은커녕 권력의 언저리에도 가보지 못한 이들 말이다. 그러나 주류든 비주류든 완장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패권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양민들에게 어느 편인지 캐묻고, 줄 세우고, 자기편이 아니라고 처단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1980년 5월. 학살의 비보를 접하고 차마 방구석에만 있을 수 없어 광주로 잠입(?)을 시도하던 시인 황지우는 끝내 계엄군의 불심검문을 받는다. “너 뭐야?” “넷, 저는 시인입니다.” “시인? 웃기고 자빠졌네. 이 빨갱이 새끼!” 돌아온 건 쌍욕과 개머리판과 발길질이었다. 그는 그래도 요행히 생명은 부지했다. 살이 발리고 피가 튀던 때였다. 권력의 불심검문은 종전 30년이 지나도록 이 땅에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다.
광주의 소박한 민주화 요구는 아직도 권력의 완장이 설치한 이념의 덫에서 헤어나오질 못한 채 구중산천을 헤매고 있다. 그들은 묻는다. “너는 뭐냐”고. “좌냐, 우냐”고. 어느 편인지 캐묻고, 줄 세우고, 자기 편이 아니라고 처단한다. 이도 저도 아닌 건 없다. 뭐라? 시인? 민주주의? 그런 건 안드로메다에나 있는 것이다.
다시 또 30여년이 흐른 2011년 오늘, 권력의 완장들은 여전히 캐묻는다. “너는 뭐냐”고. “좌냐, 우냐”, “진보냐, 보수냐”고. 이 우스꽝스럽고 살벌한 줄 세우기 앞에 양심의 자유란 한낱 휴짓조각이 되어 쓰레기통으로 처박힌다.

개인이 가진 내면의 신념에 대해 정체를 밝히라고 추궁하는 건 적어도 문명사회에서라면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하는 점잖은 항변은 한마디로 묵살된다. 묵살을 넘어 예의 그 올가미가 또 동원된다. 뭔가 켕기는 게 있으니 답하지 못한다고 몰아세운다.
이런 물음은 그 자체로서 혐의를 덧씌우고 진영을 가른다. 파시즘적 프레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지겹고 난폭한 진영논리 앞에 너무 피로하다.
이제 그만 좀 물으라. 언제까지 ‘그들만의 리그’에 평범한 사람들이 패가 갈리고, 동원되고, 단죄되어야 하는가. 독립군 때려잡던 친일반민족행위자를 전쟁영웅으로 둔갑시켜도 좋다. 군사독재 세력을 ‘한강의 기적’을 이룬 산업화 세력으로 미화해도 좋다. 다만 진실을 가려 거짓을 세우는 데에 더 이상 애먼 사람 몰아붙여 잡지는 말아 달라.
새 출범에는 의례 과한 기대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일단 나팔을 불었으면 최소한의 열의와 존재감은 동포들에게 보여줄 일이다. 그저 기를 꽂는데 만족하거나, 모국정치권에 선을 대 ‘재수 좋으면 한자리 노리고’ 식의 계산 속만 엿보인다면, 머잖아 힐난에 직면할 것이다.
원래 야당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영광보다는 가시밭길이다. 그만큼 정력과 결기가 필요한 길이다.

<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