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방문하면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검사 시절부터 언론 이용해온 ‘플레이어’
비판적 언론에는 철저한 무시 전략


“참 못된 놈들이다. 특히 <○○○> 이놈의 XX들. 내가 오자마자 두 번이나 허위 방송을 해서 사장이 내게 싹싹 빌고. 두번이나 빌었다. <△△△>도 허위 보도하고. <△△△>가 제일 심하고 <○○○>가 다음이다. <□□□>만 좀 중립적이고 (나머지는) 완전 적대적이야. <한겨레>보다 <○○○>가 제일 심하고. 아침에 신문 보면서 이놈들 진짜…. 저녁 자리에서 한 이야기를 내 동의도 안 받고 녹음을 해서 야당 도의원에게 싹 건네주고. 그게 기자야? 그건 기자가 아니지. 통신비밀보호법상 그건 범죄자다. 그런 기자하고 어떻게 식사를 합니까. 식사를 하는 도중에 앉아서 허심탄회하게 한 이야기. 그걸 녹음해서 야당 도의원에게 전달해서 홍준표가 어제 한 말이라고. 그게 기자야? 범죄자지.”

2013년 4월 <한겨레>와 인터뷰 과정에서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자신에게 비판적인 기사를 쓴 언론에 대해 쏟아낸 말이다. 이 발언에는 홍 지사의 언론관과 그의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자신에게 불리한 기사를 쓰면 ‘놈’으로 분류하고 그렇지 않으면 ‘중립적’이라고 평가하는 식이다. 사실관계 확인 없이 기자를 ‘범죄자’로 몰아붙이기도 한다. 이날 홍 지사에게 ‘범죄자’로 낙인찍힌 기자는 홍 지사에게 사실이 아니라며 항의의 뜻을 전달했고, 결국 그는 해당 기자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별다른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공식적인 자리에서 언론을 거리낌 없이 폄훼하는 그의 행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홍 지사를 오랜 기간 가까이서 지켜봐온 몇몇 언론사 기자들을 만나거나 전화 통화했다. 기자와 인터뷰한 기자들은 낱낱이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그들이 겪고 느낀 바를 토대로 홍 지사의 언론관과 내면을 들여다봤다.


기자에게 사건 흘리고 대통령 친형 구속

“자신이 너무 똑똑하고 잘났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눈 아래 있다고 생각한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언론과의 관계를 공적인 관계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통제의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2006년부터 약 10년 동안 새누리당을 출입해온 A기자의 말이다. 실제로 홍 지사가 검사 시절부터 ‘언론을 이용해’ 자신의 뜻을 관철해왔다는 것은 대부분의 기자들이 동의하는 부분이다. 이 가운데 유명한 뒷얘기는 이렇다. 검사 시절인 1980년대 후반 홍 지사는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 경영권 탈취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권력 실세와 부딪치게 된다. 수사를 막으려는 윗선에 저항하기 위해 그는 친한 기자에게 사건 내용을 일부러 흘려 특종을 터뜨리게 하고 이를 이용해 수사를 끝까지 마무리한다. 이 수사로 홍 지사는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친형을 구속시켜 이름을 떨쳤다. ‘언론플레이’에 상당히 능했던 그의 검사 시절을 보여주는 사례다.

문제는 이런 언론플레이가 습관화되다보니 언론을 공적 대상이 아닌 자신이 언제든 이용할 수 있는 ‘수단’으로만 여기게 됐다는 점이다. B기자는 “홍 지사가 ‘로열 패밀리’였다면 굳이 언론을 이용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여건이 불리하니까 사고를 치는 방식으로 살아왔다. 위에서 누르면 언론을 통해 반전시키고 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방식이다. 그것이 사회적 정의를 위한 것일 때는 박수를 받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너무 습관화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젊었을 때부터 ‘모래시계 검사’ 등으로 알려지면서 언론을 많이 탔고 그 속성과 생리에 많이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홍 지사는 1996년 정치계에 입문한 뒤로도 기자들과 상당한 친분을 유지해왔다. 그를 오랫동안 봐온 기자들 가운데는 그의 솔직하고 직설적인 성격을 좋아하는 이도 꽤 많다. 문제는 그가 기자들을 대하는 태도에 공과 사의 구별이 없다는 점이다. 기자들은 홍 지사가 공적인 자리에서 민감한 질문이 들어오면 역정을 내는 스타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친한 기자일수록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2011년 당대표 시절 저축은행 불법 자금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은 홍 지사에게 한 기자가 사실관계를 묻자 “너 진짜 맞는 수가 있다”고 발언한 것은 당시 상당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홍 지사가 해당 기자에게 사과하면서 사건은 마무리됐지만 이후 사적인 자리에서 홍 지사는 이렇게 얘기했다. “모르는 기자가 그랬으면 ‘나 그런 적 없어요’ 그랬을 텐데 뻔히 아는 애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너 나한테 이럴 수 있냐. 너 나 모르냐. 말을 해도 그따위로 해’라고 한 것이다.” 이 말에는 자신과 친한 기자라면 자신을 무조건 믿어줘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언론을 통제의 대상으로 여기다보니 권력자의 비리 의혹을 캐는 것이 기자의 공적 역할이라는 사실마저 간과한 것이다.


소신보다 욕망… 이름을 알릴 이슈라면

자신에게 우호적인 언론은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것이 그의 전략이다. C기자는 “홍 지사의 언론관은 철저히 보수 언론 중심이다. 당대표 시절에도 보수 성향의 기자를 당대표실로 불러 같이 점심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들려주는 등 많이 활용해왔다”고 전했다. 반면 비판적인 기사를 쓰는 언론에 대해서는 ‘무시 전략’을 쓰기도 한다. 2007년 11월 대통령 선거 당시 이명박 후보 대선 캠프에서 클린정치위원장을 맡았던 홍 지사는 이명박 후보의 약점이던 BBK 사건을 방어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BBK 사건을 집요하게 보도하던 언론사의 기자가 질문을 하자 “식사하셨어요?”라며 엉뚱한 말을 던졌다. 재차 질문이 이어지자 그는 다시 한번 “식사하셨어요?”라며 대답을 회피했다. 경남도지사가 된 이후인 2013년 4월에도 홍 지사는 공식 기자회견 자리에서 <한겨레>와 <내일신문> 기자의 질문에 “거기에 답변 안 하겠습니다. 알아서 쓰십시오. 내가 어떤 답변을 하더라도 마음대로 쓰니까”라며 답변을 거부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나온 기자의 질문을 직접적으로 무시하는 것은 다른 공직자들에게서는 보기 힘든 행동이다.

언론을 자신의 발밑에 두고 이용하려는 홍 지사의 습성은 그가 ‘포퓰리스트’ 정치인으로 불리는 것과도 맥이 닿아 있다. 홍 지사는 2011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 시절 스스로 “우파 포퓰리즘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는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국가재정을 파탄시키지 않는 친서민적인 인기 영합 정책은 필요하며, 그것이 바로 정치다.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의 ‘무상 시리즈’처럼 국가재정을 파탄시키는, 나쁜 좌파 포퓰리즘과는 다르다”고 했다. 홍 지사의 말대로 포퓰리즘은 그것이 공익에 반하지 않는다면 무조건 나쁘다고 볼 수만은 없다.

그러나 홍 지사의 ‘포퓰리즘’적 행동이 일관된 철학을 기반으로 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국회의원 시절의 홍 지사는 이중국적을 가진 이들이 특권을 누리지 못하도록 하는 ‘국적법’을 발의했고, ‘반값 아파트’ 정책을 추진하기도 했다. 특권층을 견제하고 서민을 위한 행보를 걸었던 셈이다. 반면 도지사 취임 이후엔 진주의료원 폐쇄와 무상급식 중단 등에 주력하고 있다. 반서민 정책이라는 비판이 많다. 일관된 철학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 있을 만한 이슈를 주로 따라왔다고 볼 수 있다. 이때문에 기자들은 홍 지사의 포퓰리즘을 ‘소신’보다는 ‘욕망’에 가까운 것으로 평가했다.

D기자는 “무상급식 중단은 경남 주민들에게 지지를 받는 결정이 아니다. 그런데 잘하고 잘못하고를 떠나서 이 사건으로 전국적인 인물이 됐다. 당장 야당 대표가 직접 찾아와서 만나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홍 지사의 무상급식 중단 결정은 경남도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차기 대권주자로서 전국적인 인물로 부상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라는 분석이다. E기자는 “홍 지사는 머리가 굉장히 비상하다. 뭔가 대중에게 먹히겠다 싶으면 그것을 딱 포착해서 언론을 통해 잘 띄운다. 그러나 특별한 이념이나 자기 철학을 가진 사람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입당 권유 받았지만…

그가 정치적 철학이 확고한 정치인이라기보다 권력지향적 인물이라는 것은 1996년 그가 정계에 입문할 때의 상황을 봐도 알 수 있다. 홍 지사는 당시 꼬마 민주당 소속이던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부터 입당 권유를 받았지만 이를 뿌리치고 여당인 신한국당에 입당했다. 서민 출신에 대학생 시절 학생운동에 가담한 전력이 있어 야당 성향과 더 잘 맞았음에도 끝내 여당을 택한 것은 결국 주류에 편입하려는 욕망의 투영이라는 것이 기자들의 분석이다. E기자는 “본인이 살아왔던 궤적으로 보면 야당에 더 어울리지만 검사에 영남 출신이다보니 여당으로 가는 게 당선에 더 유리하다고 봤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4년 <한겨레>와 했던 인터뷰 내용에는 이런 대목도 있다. “모래시계 이미지에 맞을 것 같았던 꼬마 민주당이 먼저 확실히 도장을 찍었더라면 아마 이회창 저격수가 됐을 거라 답하는 그에게, 정치는 이념이나 소명이 아니라 두 번째 직업이다.”

홍 지사가 어떤 계파에도 속하지 않은 정치인이라는 것도 그의 포퓰리스트적 습성과 맞닿아 있다. F기자는 “계파를 거느리거나 정치적 자원을 동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기자들을 만나서 자신의 얘기를 하고 곧잘 기자회견장에 나와 직접 자기의 철학을 강력하게 설파하는 등의 행동은 직접적인 개인 언술을 통해 대중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아 권력의 정점에 서려는 포퓰리즘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G기자는 “주류에 대한 불만과 원한이 비주류(야당)을 통한 개혁이 아니라, 결국 주류 내부에서의 출세를 지향하는 것으로 나타나다보니 포지션이 꼬이는 것이다. 검사 시절도 그렇고 국회의원이 돼서도 마찬가지다. 속으로 반감을 갖고 있는 주류 세력 내부에서 성공하기 위한 방편이 일종의 ‘튀기 전략’이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가 과거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누구는 숨을 헉헉거리며 가랑이 찢어지게 뛰어도 결승점이 아득한데, 누구는 손수건 살랑살랑 흔들며 우아하게 걸어가도 바로 눈앞이 결승점”이라고 표현한 것도 일종의 주류에 대한 반감으로 볼 수 있다.


의협심의 독불장군 또는 정치적 야욕의 무리수

‘비주류’라는 그의 삶의 궤적 속에서 비롯한, 주류에 대한 본능적 반감으로 ‘스타 검사’ ‘스타 정치인’으로 등극했으나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주류를 지향하는 모순을 보이는 홍 지사는 그래서 ‘이중적’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사회부와 정치부를 오가며 홍 지사의 검사 시절과 정치인 시절을 오랫동안 지켜봤던 H기자는 이렇게 평가했다. “굉장히 복잡하고도 다기한 인물이다. 함부로 나쁜 사람이라고 매도하긴 어렵다. 살아온 인생에 상처가 많았고 그것을 자신의 동력으로 삼을 줄 안다. 그러다보니 주류와 충돌이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의협심 있는 독불장군이 되기도 하고 자기 이름을 날리려는 정치적 야욕 때문에 무리하는 이상한 사람으로 볼 수도 있다.” 
<송채경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