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결과 발표에 국민들 격앙

“어머니가 깜짝 놀라셨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씨 등의 각종 국정농단 행위를 ‘공모’했다는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20일 오전 중간 수사 결과 발표를 보고 대구에 사는 신동민(24)씨는 “나는 그래도 100만명이 모이니까 검찰이 수사는 좀 했구나 싶었다”라고 했다.

“이번엔 나도 깜짝 놀랐다.” 오후에 박근혜 대통령 법률 대리인인 유영하 변호사가 검찰 발표를 맹비난하며 “앞으로 검찰의 직접 조사 협조 요청에 일절 응하지 않겠다”고 밝히자 신씨의 반응도 바뀌었다. 그는 “어떤 식으로든 조사는 받을 줄 알았는데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마지막까지 참 나쁜 대통령이라는 생각이 들어 화가 났다”라고 말했다.

이날 검찰이 <한겨레>를 비롯한 언론들의 끈질긴 추적을 통해 보도된 의혹들의 많은 부분을 확인하자 시민들 대부분은 “그럴 줄 알았다”면서도 박 대통령의 구체적인 혐의에 새삼 놀라워했다. 경기도 안산에 사는 장희자(55·주부)씨는 “그동안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제껏 집회도 안 나갔다. 그런데 오늘 수사 결과를 보며 ‘저런 사람이 무슨 국정을 논하나’ 싶었다”며 “오는 토요일 집회에 꼭 나가야겠다”고 말했다.

검찰 발표 내용에 대해서는 온도 차가 있었다. 공공기관에 다니는 김아무개(34)씨는 “그 사람들의 죄에는 못 미치지만 어쨌건 박근혜 대통령이 피의자로 특정돼 수사가 진행되는 것은 다행이다”라며 “검찰이 예상보다는 좀 더 나아간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의류 자영업을 하는 송미숙(46)씨는 “검찰이 박근혜에 대해서 선을 긋고 싶어하는 것 같다. 면피성 조사 수준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검찰의 이번 발표 내용만으로도 박 대통령이 물러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김양래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정권의 우군인 검찰조차 박 대통령이 범죄를 지시하고 가담한 것으로 판단했다. 박 대통령이 계속 아무 잘못이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면 국민의 분노만 키울 뿐이다. 이제는 국민을 위해, 국가를 위해 서둘러 물러나야만 혼란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검찰이 최순실씨 등에 대해 ‘뇌물죄’를 적용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권력자와 재벌을 봐주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150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은 이날 성명을 내어 “이번 수사는 뇌물죄를 누락시켜 재벌들을 공범에서 피해자로 둔갑시킨 부실 수사임에도 박근혜 대통령이 물러나야 하는 범죄 사유가 넘쳐나고 있다”며 “끝끝내 버티겠다면 물러날 때까지 국민과 함께 광장에서 촛불을 들 것이다”라고 밝혔다. 참여연대는 “검찰 수사가 직권남용의 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뇌물죄 또는 제3자뇌물죄 적용과 다른 범죄 혐의에 대해서는 특검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한다”고 짚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국정농단이 청와대-최순실-재벌기업이라는 삼각동맹을 축으로 한 조직적 범죄였으며, 대통령이 그 모든 범죄의 기획자요 주도자(주범)임이 분명해졌다”며 “검찰은 특검 수사에 적극 협조하라”고 요구했다.

오후 들어 박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지 않겠다는 입장이 발표되자 분위기는 훨씬 격앙됐다. 대학원생 박준호(29)씨는 “국민이 검찰을 그렇게 불신할 때는 눈을 감더니, 자신이 임명한 사람들이 한 수사를 못 믿겠다고 오리발 내미는 건 너무 파렴치하다”며 “지금까지 집회 땐 우리의 뜻을 알리고 알아서 내려오는 걸 기다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끌어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학 시간강사인 정창조(30)씨는 “법률 위반 여부를 넘어서 헌법적 근본가치나 정치공동체의 근본가치를 깨뜨린 것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이럴수록 검찰이나 특검보다 국민 저항의 확산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안영춘 박수진 기자, 광주 대구/안관옥 김일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