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오바마 제재해제 번복여부 주목… 라울은 실용적

쿠바 공산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이 지난 25일 타계했다. 향년 90.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에 이은 카스트로의 사망으로 쿠바의 앞날도 안갯속으로 빠져들었다. 쿠바는 지난해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로 오랜 경제제재 해제와 경제개발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었으나,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이후 양국 간 해빙 분위기가 갑자기 다시 얼어붙고 있다. 또 피델의 뒤를 이어 집권한 동생 라울(85)이 형 없이도 쿠바 국민의 세대 간 견해차를 극복하고 실용주의적 개혁·개방 정책을 성공적으로 지속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나온다. 피델은 2008년 공식 직책에서 물러났으나, 쿠바 국민들의 정신적 지주로 남아 상당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다.

■ 미-쿠바 데탕트 물거품 되나?
미국은 카스트로가 이끈 게릴라 혁명군이 쿠바의 풀헨시오 바티스타 친미 독재정권을 몰아내고 공산주의 정부를 세운 지 2년 뒤인 1961년 1월 쿠바와 전격 단교했다. 미국은 이후 54년 동안 쿠바를 철저히 봉쇄하고 고립시키는 경제제재를 주도했다.
그러나 지난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관계 정상화에 합의하면서 대사관을 재개설하고, 미국 민항기와 크루즈선의 쿠바 운항이 재개됐으며, 금수 조처도 부분해제됐다. 미국 기업들의 쿠바 투자도 허용됐다. 그러나 트럼프의 당선은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릴 수도 있다. 트럼프 당선자는 선거운동 중 양국관계 개선을 추진한 오바마의 행정명령을 모두 무효화하겠다고 수차례 공언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단순히 이념적 이유로 경제효과 등을 무시한 채 쿠바와의 관계를 이전으로 완전히 되돌리진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카스트로 타계 소식이 전해진 26일 트럼프 쪽은 성명을 내어 “카스트로가 야기한 죽음과 고통이 지워지진 않겠지만 차기 정부는 쿠바 국민이 마침내 번영과 자유를 향한 여행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 ‘일’이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제재 지속’이나 적대 정책과는 다른 뉘앙스다. 컬럼비아대 국제관계학자인 크리스토퍼 사바티니도 “피델 사망으로 쿠바계 미국인들의 분노의 상징이 사라졌다”며 “오바마의 (미-쿠바 관계 개선) 정책을 바꿔보려는 기운도 사그라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 내정…개방·개혁은 어떻게?
피델의 사후 명실상부한 쿠바의 최고 권력자가 된 라울은 상대적으로 실용주의적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국가평의회 의장직을 물려받은 뒤, 비대한 관료조직을 줄이고 민간부문의 자력갱생을 장려했다. 개인이 기른 농산물의 시장거래, 소기업 창업, 주택 매매 등 부분적인 시장주의도 허용했다. 지난해에는 형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밀어붙였고, 지난 5월 공산당 전당대회에선 ‘젊은 피’ 수혈을 정부 기구 전체로 확대하겠다고도 했다.
<뉴욕 타임스>는 “라울은 피델이 쌓은 공산주의 버팀목을 조금씩 허물면서, 군부를 확고하게 장악하고, 민간기업들이 핵심적 역할을 맡는 새로운 경제노선을 관철하고 있다”고 했다. 쿠바 정치조직인 ‘쿠바 포시블레’의 로베르토 베이가 대표는 <뉴욕 타임스>에 “라울 정부는 안정적”이라며 “피델 사망이 쿠바에 정치적으로 정서적으로 깊은 영향을 미치겠지만 국가통치 방식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교회 역사가인 엔리케 로페스 올리바는 “한 시대의 끝이자, 새 시대의 시작”이라고 말하며 쿠바의 미래에 변화가 닥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구시대를 상징하는 ‘피델’이 떠남으로 인해, 쿠바의 개방·개혁에 더욱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 조일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