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트럼프에게 노벨평화상을?

● 칼럼 2018. 3. 21. 14:44 Posted by SisaHan

인질로 잡힌 사람이 납치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스톡홀름 증후군’이 있다. 유명한 사례 중의 하나는 미국 언론 재벌이었던 허스트 가문의 상속녀 패티 허스트가 자신을 납치한 급진적 단체를 위해 무기를 들고 싸운 것이다. 허스트는 옛 친구들을 비난했고, ‘심바이어니즈 해방군’을 칭찬하는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일정 정도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세계를 인질로 잡고 있다. 트럼프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를 지휘하고 있다. 그는 핵전쟁을 시작할 수도 있다. 그의 트위터는 주식시장을 광란에 빠뜨린다.


인질 상황은 한반도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났다. 최근까지 트럼프는 대장 역할을 하며 대북 제재를 강화했고, 대북 봉쇄와 대규모 연합훈련에 동참하라고 한국을 압박했다. 북한 지도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과는 서로 모욕적인 말들을 주고받았다. 그는 전 세계를 괴롭히며 이러한 행동들이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도록 했다.
그러나 2018년 벽두에 상황이 바뀌었다. 김정은이 한국에 외교적 접근을 시도했다. 남북은 평창 겨울올림픽 때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이어, 남쪽 특별사절단이 평양에서 김정은을 만났다. 이제 판문점에서 처음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 논의가 진행 중이다.
남북 간 외교적 움직임 덕분에, 미국과 북한도 직접 대화를 재개할 수 있게 됐다. 심지어 트럼프는 5월 안에 김정은을 만나겠다고 약속했다. 이제 트럼프가 김정은을 만나 한국전쟁을 종식하는 평화조약에 서명하면, 트럼프에게 노벨평화상을 주자는 논의들이 일부 언론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나오고 있다.


트럼프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보다 더 훌륭한 대통령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데 사로잡혀 있다. 트럼프는 모든 지표에서 오바마뿐 아니라 대부분의 전임자들에 비해 형편없는 실적을 보이고 있다. 지지율은 물론이고, 수많은 스캔들이 트럼프 행정부를 휩싸고 있다. 트럼프가 노벨상을 받는다면 그간의 모든 실패들을 벌충하고, 일정 정도는 오바마와 비슷한 위치에 놓일 수 있다.
노벨상 수상에 대한 갈망은 북한 쪽에서도 나올지 모른다. 의심할 여지 없이, 김정은도 국제사회가 자신을 수용하고 존중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어 한다. 2000년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 뒤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대중 대통령과 공동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지 못했다. 현 북한 지도자는 자신의 아버지인 전임자보다 더 낫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할 수도 있다.


트럼프에게, 아니면 김정은과 공동으로라도 노벨 평화상을 수여하는 것은 세계 평화라는 대의를 위한 작은 제물로 여길 수도 있다.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처럼 수상 자격이 없는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것은 나쁜 생각이다. 트럼프가 국제무대에서 한 일로 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스톡홀름 증후군 증상이다. 위험스럽게도 그의 충격적인 행동들에 익숙해진 것이다. 독재자들과의 긴밀한 우정, 인권에 대한 경멸, 무차별 폭력 사용, 국제기구에 대한 혐오, 재임 기간 중에도 그의 기업이 취하고 있는 이익 등을 보라. 트럼프는 너무나 비정상적이어서, 그가 전쟁과 같은 더 나쁜 짓을 하지 않는 것으로도 전 세계가 안도의 숨을 쉬고 있다.
트럼프에게 노벨상을 주면 트럼프의 전반적인 외교정책에 확실한 정당성을 부여하게 되는 것이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서로 상대방을 협박해 결국 평화조약을 체결한다고 해도, 그에 대한 수상은 노벨위원회가 트럼프의 협박에 최고의 영예를 부여하는 최악의 선례가 될 것이다. 인질인 허스트가 총을 들고 납치범들의 구호를 외치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그럼에도 노벨위원회가 한반도 평화의 시동을 건 누군가에게 상을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면, 나는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이나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에 한 표를 던질 것이다. 그들은 비무장지대로 한반도를 갈라놓을 필요가 없음을 전 세계에 보여줬다. 아이스하키팀은 메달은 못 땄지만, 노벨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히 있다.

< 존 페퍼 -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